<황천우의 시사펀치> 내시도 웃겠다

2014.11.10 11:22:21 호수 0호

조선시대 14대 임금인 선조가 신임했던 내시 이봉정과 광해군 사이에 있었던 일화다. 선조를 모시던 이봉정의 모습을 회고하며 광해군이 질문한다.



“너는 선조 때에는 매우 여위었더니 지금은 살찌고 건강하니 그 이유가 무엇이냐?”

그러자 이봉정이 서슴없이 답한다. “이것은 전하의 은혜입니다. 선조 때에는 정사를 보는데 부지런하여 밤이 깊어서야 취침하고 닭이 울면 또 일어나서 정사를 돌보셨기 때문에 늙은 종의 무리들이 옷을 입은 채 그대로 자다가 방울만 흔들면 곧 일어났으니 어찌 여위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은 낮에는 시간에 맞추어 밥 먹고 밤에는 편안히 잠을 자니 어찌 살이 찌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역사에 폭군 중 한사람인 광해군에게 상기의 발언을 한 내시 이봉정은 지금으로 생각하면 그야말로 죽기를 각오한, 혹은 간이 배 밖으로 튀어 나온 이상한 인간으로 여길만하다.

아울러 당연히 동 발언에 대한 문책이 뒤따를 것으로 예견되지만 광해군이 이 일로 이봉정을 죽이거나 혹은 해코지했다는 그 어떤 기록도 남아있지 않고 그 직을 그대로 수행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를 살피면 광해군이 마냥 폭군만은 아님을, 또한 바른소리 한 사람에 대해 위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각설하고, 우리 역사를 살피면 상기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연유로 조선조에 임금이 조정의 중책, 특히 간관의 직을 제수하면 많은 사람들이 먼저 단호하게 고사를 표했다.


그 사유가 걸작이었다. 임금의 행위가 잘못되면 서슴없이 직언해야 하는데 ‘차마 임금과의 좋았던 관계가 어그러질까봐 나서지 못하겠다’는 변을 늘어놓는다. 하여 결국 임금으로부터 그를 용인하겠다는 확약을 받은 후에 그 직에 올라섰다.

이제 역사를 살피고 현실을 돌아보자. 지금 박근혜 대통령 주변을 살피면 이런 현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명백한 실책에 대해 그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고 그저 함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명백한 실책은 물론 공약파기를 의미한다. 최근에 불거진 전시작전권 환수를 포함하여 기초선거 정당공천 배제, 기초연금, 무상보육 등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공약에 대한 박 대통령의 원칙은 무엇인가. 이를 알기 위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이명박정권 시절 논란이 일었던 수도 이전에 대해 살펴보자. 수도 이전은 명백한 정략에 불과했다. 그러나 당시 박근혜 의원은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수도 이전에 적극적으로 나섰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심심풀이 땅콩 먹기 식으로 공약을 파기하고 있으니 바라보는 시선들이 편치 않다. 심지어 집권당 일부 의원들은 대통령을 속칭 ‘호구’로 간주하여 툭하면 반론을 서슴지 않고, 또 개헌논의로 국정운영에 발목을 잡고 있다.

상황이 이 정도에 이르는 데도 누구하나 나서서 잘못을 지적했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여 그 사유를 조심스럽게 유추해본다. 혹시 대통령과 척을 지고 싶지 않아 그런 게 아닌지, 아니면 씨알도 먹히지 않을 걸 알고 자제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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