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부당하게 구금당한 사람들을 위한 인신보호법은 구제 청구라는 벽 앞에 좌절됐다. 정신병원에 들어서는 순간, 권리는 사라졌다. 휴대폰은 압수됐고, 외부 세상과의 연결은 끊겼다. 제도는 존재했지만, 구제는 없었다.

인신 보호 제도는 국·공립병원, 기도원, 정신건강증진시설 등 수용시설에 부당하게 갇힌 사람들에게 외부에서 법적 구제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개인이 강제 입원·수용·감금 상태에 처했을 때,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다. 그러나 현실서 이 제도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구제 청구?
<일요시사>가 만난 A씨는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상태서 구제 청구의 유명무실함을 경험했다. 그는 가족 간 갈등 끝에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됐다. 정신병원 강제 입원은 현행법상 가족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진단만으로 가능하다.
A씨는 “가족이 경찰을 불러 신고했고, 119 구급차에 실려 정신병원으로 보내졌다”며 “의사는 나와 3분 정도 대화한 후 곧바로 정신병 진단을 내렸다. 정신 상태를 제대로 진단했다고 보기 어려운 짧은 대화였는데, 그걸로 입원이 결정돼 버렸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신병 진단이 이렇게 쉽게 나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억울해도 항의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진단은 빠르게 내려졌지만, 환자에게 주어진 대응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A씨는 “가족이 동의하고 의사가 판단하면, 입원은 순식간”이라며 “아무리 억울해도, 그 자리에서는 항변할 수 없었다. 의료진도 절차를 빠르게 마치는 데만 집중할 뿐, 환자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신병원 속 인권 사각지대
유명무실 인신보호법 실태
이론적으로 정신병원에 부당하게 입원된 경우, 구제 청구를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A씨는 “현실에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휴대폰은 압수당했고, 외부 연락은 철저히 차단됐다.
그는 “구제 청구를 하려면 혼자서는 어렵고 도와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인의 번호를 외우고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병원 전화로)국가인권위원회에 전화를 걸었지만, 병원 측은 통화 이후 즉시 하루 1회로 전화 횟수를 제한했다”며 억울해했다.
핸드폰, 인터넷 사용이 금지된 환경서 구제 청구는 쉽지 않다. 가족이나 지인이 환자를 대신해 청구를 해야 하지만, 외부와 연락이 끊긴 환자는 병원의 협조 없이는 외부와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허위 진단, 부당 입원 피해자들은 사실상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입원 이후 기다리는 것은 무조건적인 약물 복용이었다. A씨는 “약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 묶어서 억지로 약을 먹이거나 주사를 맞힌다”고 말했다. A씨는 리스페리돈(항정신병약) 처방으로 충분한 상황이었지만, 의료진은 인베가서스티나(장기 지속형 주사제) 주사를 맞으라고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이를 거부하자, 병실 이동 협박까지 받았다.
‘3분’만에 정신병 진단
퇴원 심사는 최소 3개월
“주사를 두 번 맞고 난 뒤 다리에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며 “밤에 눕지도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했고, 이 고통은 세 달간 지속됐다”고도 했다.
의료진에게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돌아온 답은 부작용을 완화하는 추가 약물 처방뿐이었다. 근본적인 약 변경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A씨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지 3개월 만에 가까스로 퇴원했다. 현행 정신건강법상, 입원 환자는 3개월마다 퇴원 심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조차 환자에게 유리하지 않다.
A씨는 “정신건강심사위원회 심사가 형식적으로 진행됐고, 실제 퇴원은 담당 의사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일부 환자들은 심사 탈락과 담당 의사의 판단으로 1년 혹은 그 이상 병원에 수용되기도 한다. 그는 “해외에서는 한 달 단위로 심사를 받아 조기에 퇴원할 수 있는데, 한국은 최소 3개월 이상 잡혀 있어야 한다”며 “강제 입원의 악용을 막을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정신건강법의 근본적인 개정을 요구했다. 그는 “첫 입원 후 1개월 이내에 구제 청구를 위한 휴대폰 사용이나 연락처 확인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약물 부작용이 우려될 경우, 환자에게 약물 복용을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가능”
한 인권 전문 변호사는 “청구권자가 극히 제한된 상황서 이 제도가 유효적절하게 작용할지는 의문”이라며 “강제 입원된 상황서 혼자서 구제 청구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인신보호법은 부당하게 입원한 피해자들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그 실효성은 피해자들에게 여전히 닿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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