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문재인정부의 국정원 적폐 청산이 매섭다. TF를 꾸려 환부를 도려내고 국정원을 ‘대외 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등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작 국정원 비리를 고발한 공익제보자에 대해선 눈길조차 주고 있지 않는 상황이다. <일요시사>는 국정원 전직 요원 황규한씨를 만나 국정원발 퇴직 공작 이야기를 들어봤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3월 국정원 직원인 황씨는 주이스라엘 대사관에 파견됐다. 파견 도중인 2007년 4월 집주인으로부터 전임자 이씨의 외교부 예산 주택임차료 횡령 사실을 제보 받고 국정원에 보고했다. 국정원 내부직원에 의한 최초의 공익제보였다.
공익제보 했는데…
황씨의 기대와 달리 국정원 본부는 은폐 지시를 내렸고 황씨가 불응하자 그해 6월 국정원은 고소장을 직접 써서 황씨에게 전달해 전임자를 고소하라고 압박했다. 이는 전임자와 공범관계를 만들어 황씨의 입을 막으려는 국정원의 계획이었다. 국정원의 공작 시도에 맞서 황씨는 사직서를 던졌다.
문제는 2007년 8월1일에 사직서를 내고 난 이후부터 벌어졌다. 국정원은 외교부에 2007년 9월6일 사직서를 수리했다고 통보했다. 해당 내용은 주이스라엘 대사관(총무) 및 국정원 파견관을 통해 그대로 황씨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이는 허위통보였다.
국정원은 황씨가 퇴직 처리가 정상적으로 이뤄졌다고 믿을 수 있도록 황씨에게 급여를 보내지 않았다. 알고 보니 급여는 기조실 및 황씨를 발령낸 부서가 임의 보관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국정원은 황씨 후임자를 시켜 다시 한 번 퇴직 사실을 알리고 공무원연금공단에 제출할 퇴직급여청구서를 받아갔다. 하지만 국정원은 퇴직급여청구서를 공무원연금공단에 발송하지 않았다.
황씨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 건 그해 12월이다. 국정원 감찰실은 황씨를 ‘귀임명령 거부 및 무단 직무이탈’이란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이미 사직 처리가 된 것으로 믿었던 황씨는 한국으로 복귀할 이유가 없었다.
국정원의 강제적 징계위원회 결정으로 그해 12월 황씨는 해임처분을 받았다.
일련의 과정서 퇴직공작이 들어간 부분은 사직서 처리 과정이라고 황씨는 보고 있다. 외교부와 황씨는 각각 2007년 9월6일, 7일부로 의원면직(본인이 원해 사직서를 제출해 면직) 됐음을 인식했다.
사직 처리는 당시 임면권자인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황씨의 사직서를 최종적으로 수리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2010년 9월 황씨와 부인이 김 전 원장을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서 김 전 원장은 수상한 이야기를 했다.
“당시 사직서를 받지 못했다”고 황씨에게 언급한 것이다. 이는 국정원 내부서 임면권자인 국정원장을 기망하고 외교부와 황씨에게 사직처리 됐다고 허위통보 했음을 의미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일요시사>는 김 전 원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외교부에 사직이 됐다고 보낸 공문이 원장 모르게 간 것이냐는 질문에 김 전 원장은 “완전히 사직처리가 됐다면 (나에게) 보고를 했을 것”이라며 “그때 기억은 내가 없다”고 말했다.
공문과 다르게 황씨는 퇴직이 되지 않았고 4개월 뒤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과정서 사직서를 수리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런 걸 원장이 알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며 “실무자가 ‘사직서를 냈습니다’하면 보는 것이고, 사직서를 안 냈으면 원장까지 올라오지 않는다”고 답했다.
김 전 원장은 황씨의 사직서를 ‘봤다’ ‘안봤다’를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만약 김 전 원장이 사직서를 보고 사인을 했다면 징계위원회에 회부된 책임은 김 전 원장에게 돌아간다. 반대로 김 전 원장이 사직서를 보지 못했다면 국정원 내부서 김 전 원장 모르게 황씨에 대한 ‘퇴직 공작’이 들어갔음을 뜻한다.
이스라엘서 비리 고발…공작 당해
해임 승소했지만…묵묵부답인 현 정부
김 전 원장은 황씨가 “징계위원회에 올라가도 원장이 모른다”는 말을 기자에게 하기도 했다. 이는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황씨가 기자에게 보여준 징계의결요구서에는 국가정보원장 김만복이란 이름과 도장이 찍혀있기 때문이다.
당시 고등징계위원장은 기조실장이었던 안광복 현 조폐공사 감사가 맡았다. <일요시사>는 안 감사에게 황씨 해임 과정에 대해 질의했지만 안 감사는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짧게 답했다.
당시 국정원 인사처장으로 징계위원회 간사로 활동해 황씨 징계의안을 작성한 현직 모의원에게 ‘2007년 8월1일 황씨 사직서 수리여부’를 묻기 위해 전화 통화를 했지만 받지 않았다. 이어 퇴직 공작과 관련한 내용을 문자로 남겼지만 답장이 오지 않았다.
국정원의 불법행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해임 처분에 반발한 황씨는 이듬해인 2008년 2월 국정원을 상대로 해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1·2심 재판부 모두 황씨의 손을 들어줬다. 황씨는 복직을 기대하면서 인사명령을 기다렸다.
하지만 2010년 7월16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황씨를 복직시키지 않고 '2007년 12월26일 부로 해임'⇒'의원면직으로 확인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12월26일을 의원면직으로 하는 명령을 내린 셈이다.
이에 황씨는 “2010년에 해임 취소가 됐는데 2007년으로 명령 낸 것 자체가 불법”이라며 “특히 해임날짜가 의원면직일로 동일시된 것도 불법”이라고 말했다.
2010년 말 황씨는 2010년 7월16일 국정원이 내린 의원면직 인사명령에 대한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국정원에게 당시 원 전 원장이 내린 인사명령이 ‘처분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각하를 선고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의원면직은 사의 표시만으로 공무원관계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고, 임용권자에 의한 '면직처분'이 있을 때까지는 공무원 관계가 존속된다’고 나와 있다. 즉 면직처분 자체가 없는 황씨는 불가피하게 국정원 현직 신분인 셈이다.
실상 현직도 전직도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황씨는 2012년 2월부터 국정원 측에 줄기차게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박근혜정부의 국정원장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황씨의 설명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공작으로 퇴직당한 황씨는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처분이 내려질 것이란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19대 대선 때는 더불어민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돼 공익제보 활성화에 힘쓰기도 했다.
황씨는 지난 6월 서훈 국정원장과 김상균 국정원 제1차장에게 처분을 내려줄 것을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지난 10월 황씨는 국정원 적폐청산TF에 퇴직공작을 벌인 직원들을 조사해 달라는 서류를 전달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국정원 및 국정원 TF는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처분은 도대체…
황씨는 “문재인정부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서훈 원장이 용기 있는 결단을 내려 더 이상 공익제보자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