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등골브레이커’ 열풍

2017.11.29 15:58:34 호수 1142호

떡볶이 코트부터 롱패딩까지 부모들은 허리가 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롱패딩 열풍이 심상치 않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굿즈로 제작된 롱패딩을 사기 위해 밤샘을 불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10명이 넘는 학생 전부 무릎을 덮는 검은 롱패딩을 입고 있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공개되기도 했다. 2017년 신(新) 등골브레이커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는 똑같은 옷을 입는 게 금기시됐다. 색깔만 비슷해도 놀림 가득한 시선이 쏟아졌고 아예 같은 옷이면 ‘부끄럽다’고 멀찍이 떨어져 앉기 일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너 왜 나랑 똑같은 옷 입었어?”라는 말은 “엄마, 내 친구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단 말이야”로 바뀌고 있다.

한국형 교복

무릎을 덮는 길이의 패딩, 돕바라고도 불리는 롱패딩 광풍이 불고 있다. 지난 22일 오전 6시30분 서울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2018평창동계올림픽 공식 라이선스 상품인 구스롱다운점퍼 이른바 평창 롱패딩을 사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 22일 재판매를 시작한 '평창 롱패딩'을 구입하기 위해 1000여명의 고객이 하루 전인 21일부터 밤샘을 하고 있던 것. 앞서 18일에는 평창 롱패딩 800장이 15분 만에 다 팔렸다. 초고속 완판이었다.

평창 롱패딩 열풍의 이유로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꼽히고 있다. 시중서 판매되는 브랜드 제품의 반값 수준인 15만원 선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비싼 제품 못지않게 착용감이 뛰어나고 따뜻하다는 평이다. 


또 올림픽 관련 물품이지만 로고나 후원사를 나타내는 표식 없이 평창올림픽 슬로건 ‘Passion, Connected(하나된 열정)’만 새겨져 있는 깔끔한 디자인도 인기몰이의 요인으로 꼽힌다.

평창패딩 구하려고 밤샘
전국적 유행 아이템으로

평창 롱패딩을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품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고제품 거래 사이트에선 평창 롱패딩을 사려는 사람과 팔려는 사람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자연스레 가격은 20만원 중후반대서 거래될 정도로 올랐다. 

평창 롱패딩이 희귀 품목을 잔뜩 구매했다가 웃돈을 붙여 되파는 ‘되팔이’들의 먹이가 되면서 가격이 30만원 정도로 치솟기도 했다. 평창 롱패딩은 3만장 한정으로 제작됐기 때문에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평창 롱패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반 롱패딩을 구매하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지난 20일 아이돌그룹 슈퍼주니어가 출연한 홈쇼핑 방송에서는 50분 만에 롱패딩 1만9000장이 팔렸다. 

심지어 모바일 접속자가 몰리면서 서버가 다운될 뻔했다. 운동선수와 감독이 경기장 벤치서 착용하는 벤치파카인 롱패딩은 지난해 겨울부터 연예인들이 즐겨 입으면서 유행을 타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고생과 20∼30대가 관심을 보이자 순식간에 대세로 올라섰다.
 

국내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롱패딩 인기몰이에 올해 본격적으로 발을 담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야상형 다운재킷이 유행이었지만 요즘에는 짧은 패딩을 입으면 아재라는 말이 돌 정도로 대세서 밀렸다. 

업체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올해 여름부터 20만원대 초중반 제품으로 할인 행사를 벌였다. 업체들의 예상대로 롱패딩은 불티나게 팔렸다.

평창 롱패딩으로 관심도가 정점에 오른 롱패딩은 이제 유행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는 ‘잇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2017년 신(新) 등골브레이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격대가 높다는 점이다. 고가의 브랜드 제품은 가격이 100만원까지 치솟았다. 학부모들은 높은 가격에 놀라면서도 자녀가 친구들 사이에서 무시 당할까봐 롱패딩을 사주고 있다.


등골브레이커는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할 정도로 비싼 상품을 일컫는 말이다. 원조 등골브레이커인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당시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선 노스페이스 패딩이 ‘준 교복’이나 다름없었다. 

2011∼2012년 전국의 중고생들은 교복 위에 노스페이스 패딩을 덧입고 학교와 거리를 활보했다.

노스페이스 패딩의 유행은 학생들 사이서 위화감을 조성했다. 노스페이스 패딩 가격대에 따라 계급을 나누는 노스페이스 계급도까지 등장했다. 

25만원대의 패딩은 ‘찌질이’ 30만원대는 ‘중상위권’ 60만원대는 ‘있는 집 날라리’ 70만원대는 ‘대장’으로 불렸다. 

입고 있는 옷에 따라 계급이 정해지다보니 학생들은 경쟁적으로 좀 더 비싼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롱패딩 열풍은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했을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이 때문에 위화감 조성을 이유로 롱패딩 착용을 제한하는 학교도 나왔다. 

서울 강북의 한 고등학교는 ‘롱패딩 금지령’을 내렸다. 

고가의 제품이 학생들 사이서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이유였다. 강남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도 위화감 예방 차원서 또 계단을 오르내릴 때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롱패딩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높은 가격에도 ‘우르르∼’
“한심하다” vs “따뜻하다”


2013년 노스페이스 패딩의 유행이 끝날 무렵 ‘캐나다 구스’ 패딩이 등장했다. 간판 상품인 익스피디션의 가격은 100만원이 훌쩍 넘는 125만원. 평범한 중고생들이 입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노스페이스서 캐나다 구스로 가격대가 한 번에 훌쩍 뛰자 비슷한 디자인의 패딩이 유행했다.

캐나다 구스와 묶어서 ‘캐몽’으로 불렸던 ‘몽클레르’ 패딩은 200만∼300만원을 호가할 정도로 가격이 비쌌다. 

온라인서 강남 교복이라는 별칭으로 불릴 정도로 강남 인근 학교서 유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스페이스 패딩에 시달렸던 학부모들은 급격하게 높아진 제품 가격 때문에 ‘노스페이스 때가 그립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이보다 앞서 1990년대에는 황색 더플코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반적인 단추 대신 작은 통나무 모양의 나무 단추가 달려 있다. 이 단추는 떡볶이와 모양이 비슷해 ‘떡볶이 코트’라는 별칭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떡볶이 코트는 다소 촌스럽고 투박한 스타일이지만 교복과 잘 어울려 겨울철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까지 갈까?

롱패딩 열풍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또다시 발동 걸린 우르르 문화' '애들 옷 사주느라 부모님 등골 휘겠다'와 '따뜻해서 입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롱패딩 열풍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롱패딩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노숙을 불사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심하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다른 쪽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것을 자기 돈으로 구입하겠다는데 왜 난리냐’는 반박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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