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인생의 저녁’ 강운구

2017.10.10 11:23:16 호수 1135호

시간의 여진, 그림자로 나타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강운구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사진가로서 자신의 의무 복무가 끝났다고 말했다. 그러고나니 사진이 더 재미있어 졌다고. 그때 이후 작품은 강운구 작가가 그동안 쌓아온 시간의 여진인 셈이다. 그의 후기 작품에는 오랜 기간 경험하고 축적한 생각이 녹아있다. 이번 개인전 ‘네모 그림자’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
 



둔탁한 손 그리고 사내의 손에 끼워진 짧은 담배,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아이와 함께 눈 속을 걸어가는 아낙네. 그의 사진 속에는 저마다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지 못한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강운구 작가는 외국의 사진 이론 잣대를 걷어내고 우리의 시각언어로 포토 저널리즘과 작가주의적 영상을 개척한 사진가다. 강 작가는 스스로를 내수 전용 작가라고 칭한다. 여기에는 국제적, 세계적이라는 명분으로 정체성 없는 사진들이 범람하는 현상에 대한 저항의 의미도 담겨있을 터다.

네모와 그림자

강 작가가 2008년 한미 사진미술관서 전시한 ‘저녁에’ 이후 9년 만에 ‘네모 그림자’로 돌아왔다. 강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그냥 주워 담은 사진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에 대해서만큼은 고집스러울 만큼 확고한 생각을 지켜오고 있다. 이번 개인전서도 그 날카로운 시선과 소신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강 작가는 이번 전시서 이 땅뿐 아니라 온 세상의 네모와 그림자를 흑백과 컬러,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진들로 보여준다. 다양한 형식과 색으로 오래도록 모은 사진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사진가의 반듯한 네모 화면 속에 차곡차곡 담겨있다.


스스로 내수용 작가라 칭해
날카로운 시선과 확고한 소신

빛과 그림자는 사진의 본질이다. 화려한 빛에 가려 드러나지 않던 그림자는 그동안 우리가 간과해온 진실이기도 하다. 그림자는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고 필연적으로 나와 동행한다. 그림자를 담기 위해선 돌아보고 멈춰야 한다. 그 순간을 위해 사진가는 한 발짝 뒤에서 산책자처럼 차근차근 빛을 관찰한다.
 

그림자는 사진가가 선택할 찰나 한쪽 구석에 수줍게 때로는 화면 가득히 길게 늘어서 실재의 일부가 된다. 강 작가가 포착한 그림자는 허상이 아닌 당당한 존재이자 그가 바라본 세상이며 자신이 살아온 풍경이다. 그의 시선은 이 땅을 일궈낸 깊은 주름의 손과 땀을 찾아 걷고 또 걷던 그때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낯선 세계와 부딪치고 대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실재와 동반하는 그림자
간결한 제목 현재 강조

바닥에 깔린 그림자는 모두 같아 보이지만 시간에 따라 변화한다. 오늘의 그림자는 어제와 내일의 그것과는 다르다. 마치 카메라가 포착한 순간이 현재라고 느끼지만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과거가 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지나간 매일은 돌아오지 않는다. 인생의 저녁을 지나고 있는 강 작가는 과장되거나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담지 않는다.
 

언제나처럼 발걸음을 옮겨 변화한 세상을 수집하고 서정적 분위기의 풍경을 담지만 간결한 제목으로 현존 그대로를 강조한다. 사각의 네모 속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구성된 화면은 사진가의 눈과 생각 그리고 삶이 여전히 변함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강운구표 사진

어떤 사람에게 인생의 저녁은 어두움이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여명의 시기는 달라진다. 강 작가는 “이제 나에게 필카나 디카 또는 폰카의 역할 구분은 의미가 없다. 다만 그것들로 한 ‘무엇’이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세상 여기저기서 필름과 디지털 사진술로 주워 담은 흑백사진과 컬러사진이 어우러져 강운구표 사진이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오는 11월25일까지.
 

<jsjang@ilyosisa.co.kr>

 


[강운구는?]

▲개인전

‘우연 또는 필연’ 학고재 갤러리(1994)
‘모든 앙금’ 학고재 갤러리(1998)
‘마을 삼부작’ 금호미술관(2001)
‘저녁에’ 한미사진미술관(2008)
‘오래된 풍경’ 고은 사진미술관(2011)
‘흑백판 경주남산’ 류가헌 갤러리(2016) 등

▲저서

<내설악 너와집>, 광장(1978)
<경주남산>, 열화당(1987)
<우연 또는 필연>, 열화당(1994)
<모든 앙금>, 학고재(1997)
<마을 삼부작>, 열화당(2001)
<강운구>, 열화당(2004)
<저녁에>, 열화당(2008)
<오래된 풍경>, 열화당(2011)
<흑백판 경주남산>, 열화당(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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