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계란’ 유통경로 추적

2017.08.21 10:27:00 호수 1128호

식탁에 오르기까지 ‘제대로 알고 먹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또 계란이 말썽이다. 올해 초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의 여파로 값이 폭등하면서 계란 대란이 발생했다. AI 파동이 채 가라앉기도 전인 지난 14일 이번에는 살충제 계란 파동이 불거졌다. 유통업계는 물론, 계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제과·제빵업계는 혼란에 빠졌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지난 14일 경기도 남양주와 광주, 전북 순창의 산란계 농장서 살충제 성분인 피프로닐과 비펜트린이 검출됐다. 16일에는 경기도 양주와 강원도 철원, 충남 천안, 전남 나주의 농가 계란서도 살충제 성분이 잇따라 나왔다. 

소비자들은 구입한 계란 껍데기에 각인된 문자와 기호를 식별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 16일 기준으로 농장과 난각 기호별 08마리, 08LSH, 09지현, 08신선2, 11시온, 13정화 등에서 살충제 성분이 발견됐다.

살충제 ‘충격’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6일 서울-세종간 영상 국무회의서 “계란 생산과 유통 과정은 완벽하게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에 조류인플루엔자(AI)보다 훨씬 더 쉽게 통제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농수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계란의 유통과정은 생산 및 출하, 도매, 소매 등 크게 세 단계로 나뉜다. 먼저 생산자가 계란을 일정 수준의 중량 규격과 품질별로 분류해 GP(Grading and Packing)센터를 포함한 식용란 수집 판매업체로 출하한다. 


GP센터란 선별과 포장이 가능한 집하장을 말한다.

여기서 ▲최종 소비자 ▲축산물 판매업체와 일반음식점 및 집단 급식소-최종 소비자 ▲알가공업체-축산물 판매업체와 일반음식점 및 집단 급식소-최종 소비자 등의 과정을 거친다. 계란은 소나 돼지, 닭 등의 축산물과는 달리 생산자가 축산물위생관리법에 근거, 식용란 수집 판매업으로 신고된 경우에는 도매처나 소매처로 직접 선별하고 포장해 유통이 가능하다.

등급제 ‘있으나 마나’
전체 가운데 8%만 등록

문제는 생산과 유통 단계서 잔류농약 검사 등 위생 점검 시스템이 체계화 돼있지 않다는 점이다. 

전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서 살충제 계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고 나서야 잔류농약 검사를 진행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당시 국감서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 확인 결과 계란을 대상으로 한 잔류농약 검사는 최근 3년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다”며 “상시적인 잔류농약 검사 시스템 확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정부는 국감 이후 60곳의 계란을 검사했는데 유해 성분이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올 봄 친환경 농장과 계란을 800곳 넘게 조사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하지만 최근 대대적인 조사가 시작되자마자 계란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면서 정부의 위생 점검이 허술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양계업계에선 소비자가 신뢰하고 구매할 수 있는 제도로 ‘계란등급제’를 들고 있다. 등급계란은 생산 및 유통 과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계란등급제는 계란의 품질 향상을 통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히자는 취지서 정부가 2003년 도입했다. 축산물품질평가원 홈페이지의 ‘등급계란 정보 확인하기’에 들어가면 계란의 생산자와 집하장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계란 껍데기에 표시된 숫자와 기호를 적고 포장지에 적혀있는 유통기한을 입력하면 된다.

크기별로 왕란과 특란, 대란, 중란, 소란 등으로 구분하고, 등급은 1+, 1, 2, 3등급으로 나눈다. 하지만 계란등급제는 강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 유통계란 중 8%만 등급 판정을 받았을 뿐이다. 나머지 92%는 생산자와 유통 과정을 추적하기가 어렵다.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닭 사육하며 살충제 살포

쇠고기와 돼지고기 등은 축산물 이력추적제가 시행돼 도축과정부터 유통까지 위생검사가 이뤄지고, 생산자와 유통과정을 모두 추적할 수 있는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비용부담을 우려한 양계농가의 반대로 이력추적제가 도입되지 않았다.

문제가 된 살충제 계란은 이미 식탁까지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경기 남양주와 광주, 양주, 강원 철원 등 4곳은 축산농가에 있는 계란서 살충제 성분이 나왔지만 충남 천안과 전남 나주의 산란계 농장서 생산된 계란은 대형마트 등 유통점서 수거해 검사하던 중 성분이 검출됐다. 

농가의 밀집 닭장에 대한 살충제 살포 행위가 이미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불투명한 유통 구조에 앞서 살충제 계란의 원인으로 닭의 사육 환경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관련법에 따르면 산란계 1마리의 최소 사육면적은 0.05㎡로 규정돼있다.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이다. 이처럼 좁은 공간서 닭을 사육하다 보니 살충제를 살포할 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
 

원칙적으로 살충제를 살포할 때는 닭장 안의 닭이나 계란을 다른 공간으로 옮긴 상태서 빈 공간에 뿌려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살충제를 사용할 때 닭을 옮겨놓을 공간을 확보한 농가는 많지 않다.

이미 식탁에?

전문가들이 말하는 해결책으론 방사가 거론된다. 닭이 스스로 흙바닥에 몸을 비비는 ‘흙목욕’을 할 경우 몸에 붙은 진드기나 벌레를 떼어낼 수 있기 때문에 살충제 살포 행위가 필요 없다는 것. 실제 우리나라에도 닭을 밀집 사육하지 않고 마당이나 야산 등지에 풀어서 키우는 방사 농장이 있다. 전문가들은 방사 농장을 늘리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끊이지 않는 먹거리 파동

살충제 계란 문제가 일어나면서 과거 전 국민을 놀라게 한 먹거리 파동이 재조명받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쓰레기 만두’ 사건이다. 2004년 25개 식품회사가 단무지 공장서 폐기되는 무 조각을 만두소로 사용했다는 경찰 발표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경찰의 명단 공개로 일부 중소업체들은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았고 한 업체 대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보다 앞서 1989년에는 라면을 공업용 쇠기름으로 튀긴다는 투서가 날아들어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일명 ‘공업용 우지 라면’ 사태로 라면 시장서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삼양라면은 큰 타격을 입었다. 

최근에는 가짜 백수오 사태로 건강식품계가 큰 영향을 받았다. 특정 회사 제품에 백수오와 비슷한 이엽우피소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대규모 환불 요구가 빗발치는 등 전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바도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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