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금고 이사장 ‘낚인’ 사연

2011.04.21 13:50:24 호수 0호

“구속” 협박에 홀라당…제발 저렸나

기막힌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공무원을 사칭한 ‘낚는’ 수법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범인이 조선족이라 사기 티도 팍팍 났다. 그런데 피해자는 일반인이 아닌 금융권 고위 인사란 점에서 실소를 자아낸다. 더구나 ‘구속’ 운운에 나자빠져 구린내를 풍긴다. 뭔가 ‘찔린’ 모양이다.

경찰 사칭 보이스피싱에 ‘화들짝’ 1억원 송금 
“뭐가 찔려서…” 주저 않고 거금 내준 이유 관심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수법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공공기관 사칭, 자녀 납치를 빙자하는 수법은 고전이 된지 오래. 짝퉁 홈페이지를 만들어 현혹하거나 피해자 몰래 공인인증서로 돈을 빼내는 등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기막힌 보이스피싱 사건이 발생해 시선을 끌고 있다.



A씨는 지난달 15일 오전 11시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상대방은 조선족 B씨였다. 자신을 서초경찰서 지능팀 직원이라고 신분을 속인 B씨는 섬뜩한 얘기를 꺼냈다.

“당신의 돈을 사기꾼들이 노리고 있으니 경찰이 지켜주겠습니다. 20명이 사기사건에 연루됐는데, 당신도 은행계좌와 비밀번호가 노출돼 돈이 범죄자에게 빠져나가고 있어 구속될 수 있습니다. 구속을 면하게 해줄 테니 1억원을 국가안전감식계좌로 입금하세요.”

금융인 맞아?

B씨는 속칭 ‘대포통장’ 계좌를 불러주며 “구속되지 않고 별도로 수사를 좋게 받게 해 주겠다. 국가안전감식계좌로 송금하면 걱정할 것 없다”고 A씨를 안심시켰다.

A씨는 주저하지 않았다. B씨의 전화를 받고 곧바로 돈을 보냈다. 무려 1억원이었다. B씨는 약 50분 후인 11시50분께 동대문구 장안동 농협 장한평역 지점에서 A씨가 입금한 현금 1억원 가운데 600만원을 인출하다 행동을 수상히 여긴 경찰관에게 덜미를 잡혔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지난달 16일 현직 경찰관을 사칭해 A씨에게 전화를 걸어 거액을 가로챈 혐의(사기 혐의)로 보이스피싱 현금 인출책 B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계좌에서 B씨가 빼낸 돈 외에도 이미 7300만원이 인출된 것으로 미뤄 공범이 2명 이상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찰은 “경찰 등 수사기관은 전화로 입금을 요구하는 전화를 절대 하지 않는다”며 “이런 전화를 받으면 바로 신고해야 된다”고 당부했다.

공무원을 사칭한 ‘낚는’ 수법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범인이 조선족이라 사기 티도 팍팍 났다.

그러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점은 피해자가 일반인이 아닌 금융권 고위 인사란 사실이다. A씨는 대표적인 서민금융회사인 새마을금고의 현직 이사장을 맡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발신자를 알 수 없는 보이스피싱 전화임에도 불구하고 1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기관 수장이 고객들의 전화사기 피해를 막아줘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보이스피싱을 당한 것이다. 새마을금고 임직원은 잇달아 고객들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아 훈훈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강원도 인제의 한 과장은 지난 3월 “경찰청인데 예금보호를 해줄 테니 돈을 보내라”는 전화를 받은 70대 할머니가 5000만원을 찾아 다른 계좌로 이체하는 것을 제지해 박수를 받았다. 올해 들어 부산과 경주, 영천 등에서도 직원들이 기지를 발휘해 수억원에 달하는 고객의 전화 금융사기 피해를 막은 바 있다.

경찰은 A씨가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주목하고 있다. 1억원의 ‘거금’을 선뜻 내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구속될 수 있다. 구속을 면하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돈을 보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일반인도 아니고 누구보다 보이스피싱 수법 등을 잘 알 만한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협박에 넘어가 피해를 봤다”며 “1억원이란 거액을 송금한 것도 썩 석연치 않다”고 귀띔했다.

‘구린내’ 진동

일각에선 ‘구린내’가 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뭔가 찔렸기 때문에 돈을 보낸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A씨가 당한 보이스피싱 사건을 접한 네티즌들은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당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것 아니냐”, “경찰은 보이스피싱 사건과 함께 그의 비리도 조사해야 된다”등의 의문을 쏟아내고 있다.

<일요시사>는 A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메모까지 남겼지만 어떠한 답도 오지 않았다. 다만 한 직원은 “이사장님이 그런 사건을 당했다는 것을 처음 듣는다”며 “우리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몇 년 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불륜 협박에 ‘찔린’유명 인사들이 줄줄이 낚인 것이다. 모 지방대를 중퇴한 C씨는 “당신의 불륜증거를 입수했다. 이를 돌려받고 싶으면 아래 계좌로 100만원을 송금해라. 아니면 증거를 뿌리겠다”는 내용의 협박 편지를 대기업 임원 250여명에게 보냈다.

결국 C씨는 경찰에 검거됐지만, 당시 C씨에게 돈을 송금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L그룹 L전무, H그룹 K부사장, D그룹 N전무, D그룹 H대표이사, H그룹 L이사, S그룹 H이사, J그룹 K전무 등이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대부분 제발 저려 순순히 돈을 송금했다”고 밝혀 평소 이들의 사생활이 어떤지를 추측케 했다. 이들은 신분 노출이 두려워 경찰 조사에도 불응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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