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글와글 net-세상]20대 자살 훈련병의 부치지 못한 편지

2011.03.08 10:56:25 호수 0호

“너무 답답해 죽을 것 같다”

지난달 27일 충남 논산 육군 훈련소 생활관 내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정모(21)씨가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가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 급성 중이염으로 고생하던 정씨를 ‘꾀병’으로 몰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방치했다는 유가족의 주장이 더해지면서 군 당국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못다 핀 꽃이 되어 잠든 정씨의 죽음을 두고 네티즌들의 의견 대립도 팽팽하다.

숨진 채 발견된 훈련병, 중이염 고통 호소 “약만 준다”
“개인의 문제”VS“군 시스템 문제” 네티즌 ‘갑론을박’


지난달 27일 오전 11시26분께 충남 논산시 육군 훈련소 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자살한 정모(21)씨가 발견됐다. 훈련병 퇴소를 일 주일여 남긴 시점이었다. 정씨의 시신은 휴일을 맞아 종교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온 뒤 한 시간쯤 지난 뒤 발견됐다.



자살 VS 타살 공방

군 당국은 유서나 외상이 발견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유족들은 정씨가 화장실에서 발견된 뒤 20여 분이 지나는 동안 응급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항의했다.

또 입소 뒤 여러 차례 심한 중이염을 호소했지만 입원 등 제대로 된 치료가 없었다며, 훈련소 측의 책임을 제기하고 있다. 설령 자살했다 하더라도 자살이 아니라 군 부대에서 정씨를 죽인 타살이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자살을 하기 전 정씨가 어머니에게 썼다가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면서 유족과 군 당국의 공방은 더욱 거세졌다.  지난달 28일 유족들에 따르면 이날 국군대전병원에 안치된 정씨의 옷 속에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워낙 고통스럽다. 식물인간이 되면 안락사를 시켜주고, 화장을 해달라”는 글이 적힌 메모가 발견됐다.

또 지난달 10일 정씨가 어머니에게 쓰고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됐으며 편지에는 “오른쪽 귀가 먹먹하고 물이 들어간 것처럼 들린다”면서 “훈련소에서는 항생제를 주고 의무실에만 있으라고 한다. 외부 병원으로 잘 안 보내주는데 약을 보낼 방법을 알아봐 달라”고 씌여 있었다.

또 정씨는 편지를 통해 “분대장과 소대장, 중대장에게 계급 순서대로 말했는데 이제와서는 (밖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면서 “훈련을 잘 받을 수 있는데 귀 때문에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유족은 “평소 운동신경도 좋았고 훈련을 받는 데 이상이 없는 체력의 아이였는데 중이염으로 고통받다 보니 훈련까지 힘들어져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의 이 같은 호소와는 달리 군 당국은 “꾀병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내용의 면담 기록을 작성했다고 유족은 주장했다. 유족들이 제공한 지난달 16일자 군 당국 면담·관찰 기록에 따르면 정씨는 ‘오른쪽 귀에서 이명이 들리고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상담했지만 담당 간부는 ‘귀에 전혀 이상이 없다. 꾀병 가능성이 농후하다.

군의관이 이상 없다고 말을 하는데 민간 병원에서 진료받고 싶어 한다. 더 큰 병원에 보내달라고 항의하고 우는 등 소란을 피웠다’고 기록했다. 이 간부는 같은 달 19일에도 ‘귀 내시경 검사 결과 아무 이상 없음’이라고 기록했으며, 21일에는 ‘일상 생활 관찰 시 아픈 기색 없고, 다른 훈련병들보다 먹을 것도 잘 먹음’이라고 기록했다.

정씨의 자살 소식이 알려지자 네티즌들도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지난해 10월 남자 친구가 논산 훈련소에 입대했다는 한 여성 네티즌은 “훈련소 위생도 더럽고 치료도 잘 안 해 준다던데 10월에도 기관지염에 걸려서 훈련소 마칠 때까지 고생했다”면서 “기관지염 약만 잘 먹어도 3~4일이면 낫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또 다른 네티즌 역시 정씨의 죽음에 대해 “꾀병으로 치부하고 묵살했다니 너무 불쌍하다” “무서워서 군대에 어떻게 보내겠느냐” 등의 안타까운 반응을 보였다. 유족에 이어 네티즌들의 이 같은 질타가 이어지자 이번 사건 수사를 담당한 육군 헌병 수사대는 지난달 28일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날 오후 국군대전병원에서 브리핑을 가진 군 관계자는 “정 훈련병은 입소 4주 동안 국군대전병원과 훈련소 내 의무대 등에서 10차례 진료를 받았다”면서 “일각에서 일고 있는 정 훈련병의 고통을 방치했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진료 기록 카드를 공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일부 네티즌들은 국군병원도 믿을 수 없다며 난색을 표했다. 아이디 ‘하루카엘’은 “이번 사건을 접하니 제가 군 생활 할 때 겪은 일이 생각난다”고 말문을 뗀 뒤 “훈련받다가 어깨를 다쳐서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의무대에서는 파스나 주는 게 고작이었고, 결국 2차 휴가 때 병원가서 진료를 받으니 꽤나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네티즌도 갑론을박

이어 그는 “훈련병이 아프다고 하는데 의무대랑 국군병원에서 꾀병 같다고 방치해 버리고 아프면 의무대는 물론 막사 내에서도 병신 취급 당한다. 그 훈련병이 정말 잔꾀를 부린 것일 수도 있지만 군대에서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조치했다면 자살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개인의 문제’라는 의견도 존재했다. 훈련병의 상태를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군의 특수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측면과, 어떤 단체든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고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훈련병들에 대한 처우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

논산 훈련소에서 조교로 생활하다가 2009년 전역한 최모(26)씨는 “군 당국의 문제라고만 볼 수는 없다. 요즘 군대 많이 편해졌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군대가 편하면 군대겠는가”라면서 “아프면 손해보는 것이 훈련병이긴 하지만 중대마다 아픈 훈련병을 챙기는 데 차이가 있다. 내가 있던 중대에서는 아픈 훈련병들을 최대한 챙기는 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개개인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챙기지 못하는 군의 시스템에는 변화가 필요하겠지만 빠른 시간에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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