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적 옮긴' 정치인 현주소

2016.07.11 13:19:44 호수 0호

둥지 떠난 철새들 잘 먹고 잘 산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철새 정치인들이 국회에 무혈 입성했다. 뿐만 아니라 당과 국회에서 요직까지 챙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을 위하는 정치를 하겠다며 매번 같은 변명을 대지만 정작 행보를 살펴보면 사리사욕을 챙기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철새 정치인'은 정강과 신념보다는 당장의 이익과 권력을 좇아 쉽게 당적을 바꾸는 정치인을 말한다. 주로 야당으로 활동하다가 집권당으로 당적을 옮기거나 선거기간 동안 집권이 유력한 정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을 일컫는다.

회유? 자발?

우리나라에서는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집권당 측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야당 의원들을 회유해 빼내는 일이 많았다. 이때 여당으로 갈아타는 인사들이 생기면서 처음 철새 정치인이란 말이 생겨났다. 2000년대로 접어들어서는 집권당에 입당하는 야당 정치인들 뿐 아니라 여당을 탈당해 집권이 유력한 야당으로 입당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20대 국회도 다르지 않았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당적을 옮긴 이들을 살펴보면 당 지도부와의 갈등이나 공천탈락 등을 이유로 들 수 있다. 우선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은 17대 국회의원을 시작으로 19대까지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간판으로 부산 사하구에서 줄곧 당선됐다.

2004년 17대 국회 때 처음 입성했던 조 의원은 여의도 정가에서는 신인이지만 8년간 부산 지역구를 누볐던 만큼 주변에서는 ‘대기만성형’이라고 불렀다. 그는 2000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에 먼저 공천을 신청했다. 그 후로 한나라당 공천서 탈락한 그는 민주당서 공천을 받는 데 성공했고 이적하면서 2004년 총선에서 ‘철새’라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조 의원은 2004년 당선 직후 정치에 입문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돈도 배경도 없는 젊은이가 ‘정치를 하겠다고’ 민주당 부산시지부의 문을 두드렸을 때, 김정길 전 의원은 ‘기막히다는 표정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의 대결에서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재선에 성공해 지역주의 타파의 씨앗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는 부산 부시장 출신인 새누리당 안준태 후보를 꺾고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이처럼 지역주의 타파의 선봉장이자 3선의 중진의원이 된 조 의원은 지난해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이어가다 결국 당 혁신위에서 징계처리를 받게 된다.

그는 결국 지난 1월19일 더민주를 탈당해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조 의원은 입당 인사말을 통해 “이렇게 받아주셔서 감사하다”며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의원이 되겠다. 초심을 잃지 않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조 의원의 행보에 더민주 부산시당은 성명을 내고 “야당 소속으로 부산에서 내리 3선을 지내놓고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해 하루아침에 여당 품에 안기는 모습에 인간에 대한 서글픔과 연민을 느낀다”며 “당에 남아서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역할을 하겠다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꿔 탈당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비난했다.

더민주의 진영 의원(3선)도 조 의원과 유사한 행보를 보였다. 새누리당 공천서 배제돼 탈당한 진 의원은 더민주에 지난 3월20일 입당했다. 그것도 4·13총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는 시점에서 당적을 옮겼다. 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최 측근으로 통했다. 초선이던 2004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2012년 대선 때는 김종인 대표와 함께 새누리당 대선공약기구를 이끌고, 대통력직 인수위 부위원장도 맡았다.

당적 옮기고 승승장구
당·국회서 요직 꿰차

더민주로 옮긴 진 의원은 “저에게는 특정인 지시로 움직이는 파당이 아닌 참된 정당 정치가 소중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금배지 한 번 더 달려고 친정을 비난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란 비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지난 3월31일 진영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을 찾아 “진영 의원이 새누리당에 있었는데 반대당으로 가서 용산에 출마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모르는데 경쟁당, 박근혜 정권에 사사건건 발목잡고 발전을 방해했던 운동권 정당인 더민주로 출마한 건 용산주민, 새누리당,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개인적인 선택이지만, 박 대통령을 두 번이나 떠나간 정치인”이라며 “이렇게까지 당을 옮기면서 정치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진 의원은 당적을 바꾸자마자 더민주서 4·13 총선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라는 중책까지 맡았다.


당시 더민주 대변인은 “이번 선거를 경제 선거로 치러 경제민주화와 우리당의 복지공약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며 진 의원의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진 의원은 당을 옮기자마자 당의 중책을 꿰차는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한 셈이다.

앞서 당적을 옮긴 조경태 의원은 국회 기재위원장에 올랐다. 새누리당과 적대관계인 더민주에서 3선의원을 지냈고 당적을 옮긴지 불과 6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 의원이 기재위원장을 차지하기에는 무리라는 평이 파다하다.

게다가 당내 경제통으로 불리는 이혜훈·이종구 의원의 존재감도 컸다.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은 빗나갔다. 국회 의총에서 열린 기재위원장 경선에서 조 의원은 114표 중 70표를 받아 20대 국회 전반기 기재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정치권에서는 친박·비박 간 이해관계로 인해 어부지리로 당선됐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단순히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조 의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원 분들이 선수(選數)를 인정해 주신 것 같다”면서도 “정견발표 내용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었다고 본다”며 정치적 이해관계로 기재위원장에 오른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당적을 옮기는 정치인들에 대해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한국 정치판의 양당 구조가 재편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면서 "단순히 현상적으로만 보면 일관성이 없는 행보라는 시선도 나올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분들이 (진영을 옮겨 이동해서)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이들의 행보가 결국은 사욕을 채우기 위한 갈지자 행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사욕 채우기

신율 명지대 교수는 “봉사적 성격이나 시대적 소명이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정치를 채택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면 “철새들의 행보에서 국민이 열망하는 봉사정신에 입각한 정치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소위 원로라는 인사들도 쉽게 말해 일자리를 찾아 왔다갔다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혹평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피닉제' 이인제의 당적 기록


'피닉제(피닉스+이인제의 합성어) 이인제 전 의원은 13번의 당적 변경을 기록했다. 무소속을 포함하면 14번이나 자리를 옮겼다. 이 전 의원은 1988년 통일민주당 소속으로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993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에 합류했다. 1997년 대선 이후 본격적으로 당을 옮겨다니기 시작했다. 1997년 대선 당시 이 전 의원은 당내 경선에서 이회창 후보에게 패하자 민자당을 탈당하고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다.

이후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한 이 의원은 2002년 대선 경선에서 외압의혹을 제기하면서 사퇴하고 탈당까지 했다. 그는 10번 넘게 당적을 옮기고도 6선에 성공했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 전 의원을 두고 “철새가 아니라 불사조”라고 말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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