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유출' 선고공판 현장스케치

2015.10.19 10:36:00 호수 0호

눈 감은 조응천, 판사 본 박관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정윤회 문건’ 파동에 대한 재판부의 첫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게 무죄, 박관천 전 경정은 징역 7년에 추징금 4340만원, 한일 전 경위에게는 징역 1년 실형을 선고, 법정 구속했다. 당시 선고가 내려졌던 현장 속으로 <일요시사>가 찾아갔다.



재판은 지난 15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1시25분경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박관천 전 경정, 한일 전 경위 등 피고인들의 출입이 예정된 6번 법정 출입문 앞에는 사진기자들과 방송사 카메라 담당자들이 장비를 점검하고 있었다. 사건이 터졌던 지난 2014년 말에 비해 확실히 언론의 관심이 낮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오면서 농담

1시30분경 재판이 열리는 서관 509호에는 각 언론사 취재기자 20여명이 자리하고 있었다. 2시에 가까워질수록 좌석은 만원이 됐고, 총 50여명 정도로 취재인단이 늘어났다.

1시55분경 가장 먼저 조 전 비서관이 정장차림으로 변호인들과 함께 입장했다. 뒤이어 58분경 검찰이 입장했는데, 손에는 약 10cm두께의 방대한 자료가 든 사무용 파일폴더 2개가 들려있었다. 검찰이 착석한 직후 법관 3인이 입장하자 청원경찰이 “모두 자리에 일어나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공판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재판 시작 시간인 2시가 넘었음에도 피고인 박 전 경정은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최창영 재판장은 “박 전 경정이 아직 출석하지 않았다”며 “출석을 기다리겠다”고 전했다.

약 3분여의 시간이 흐르자 박 전 경정은 수행을 받으며 출석했다. 그는 수감복을 입은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는데 검찰 조사를 받던 9개월 전에 비해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방실 침입과 문서를 무단 복사한 혐의가 있던 한일 전 경위도 출석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 최 재판장은 피고인들이 앞쪽 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고 출석한 피고인 3인은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다. 뒤이어 출석을 부른 최 재판장은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다.


판결문을 듣는 피고인들의 자세는 각각 달랐다. 재판장과 가까이 착석한 박 전 경정은 시종일관 담담한 표정으로 판사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중간에 앉은 한 전 경위는 판사를 쳐다보다가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기도 하는 등 움직임이 있었다. 참관인석과 가까운 곳에 앉은 조 전 비서관은 판결문 낭독이 시작되자 줄곧 천정을 쳐다봤다. 그러다 눈을 감고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재판장 쪽으로 일절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자세를 유지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들의 행위가 과연 박지만 EG 회장에게 ‘누설’한 것인가부터 판단했다. 작성→보고→반출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을 설명한 재판부는 문서가 박 전 경정에게서 조 전 비서관까지 전달된 경위를 언급했다. 또한 문서가 어떤 식으로 보관·보고됐는지 설명했다.

판결문 내용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전자결재’ 시스템이 아닌 종이문서 형태로 보고가 이루어졌으며, ‘수기결재’ 또한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당 문건들 중 12·17번 문건은 보고용으로 쓰이지 않고 단지 참고용으로만 쓰였다고 재판부는 설명했다. 박 전 경정은 업무참고를 위해 복사한 문서를 개인파일폴더에 저장해 뒀는데, 이 문서가 반출된 것이 발단이 됐다.

선고 다가오자 ‘움찔’…티슈로 눈가 닦아
재판 끝나고 묻자 “눈물? 그냥 따가워서”


이어서 재판부는 해당 문서가 대통령 기록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를 판단했다. 만약 대통령 직무와 상관성이 있는 기록물 중 해당 문건이 공개가 제한되어야 하는 ‘지정기록물’이라면 대통령 기록물법에 따라 유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유죄 여부에 대해 대통령 기록물법 19조, 30조 등에 비추어 설명했다.

그리고 과연 박 회장 측에 전달한 것이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되는지 확인했다. 재판부는 ‘비서실장 교체설’ 관련 문건과 나머지 문건을 따로 판단했다. 이때 ‘정윤회 문건’이라는 단어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언급했다.

박 회장에게 전달된 나머지 문건에 대해서 재판부는 ‘개인의 신상기록 등이 유출될 수 있고 이로 인해 대통령 비서실이 사생활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며 공무상 기밀이 일부 포함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교체설 관련 문건에 대해서는 해당 문건이 감찰자료로 활용될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또한 해당 문건이 진실임을 판단할 자료는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진실 확인을 마치지 않고 박 회장에게 전달한 행위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재판부는 비서실의 ‘공정성’ ‘신뢰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고 공무상 기밀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문건을 박 회장에게 전달한 행위에 대해 비서실의 직무 수행이라고 보지 않았으며, 누설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다만 비서실장 교체설 관련 문건에 대해서는 직무수행이 아니고, 누설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알려진 바와 같이 조 전 비서관에 대해선 무죄, 박 전 경정에 대해선 일부 유죄, 한 전 경위는 유죄가 선고됐다. 타자치는 소리뿐이던 참고인석에서는 약간의 술렁거림이 들려왔다.

선고가 다가오자 한 자세로 일관하던 조 전 비서관이 움직였다. 티슈를 꺼내 눈가 주위를 닦는 모습이 포착되는가 하면 머리를 쓸어 넘겼다. 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짧게 “예”라고 답하기도 했다. 재판이 끝난 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것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아니다”라며 “눈이 따가워서 닦은 것이고 손수건이 아니라 근처 커피숍에서 가져온 티슈”라고 답했다.

반면 박 전 경정은 선고가 내려질 때에도 미동이 없었다. 재판부는 공직기강 점검 업무의 지위를 이용해 유흥업주로부터 골드바 6개를 제공받은 것이 인정, 징역 7년과 골드바 회수·추징금 4340만원을 내렸다. 판결문에 따르면, 시리얼 넘버가 훼손된 골드바 3개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 결정적 정황으로 작용했다. 한편 방실 침입이 확인된 한 전 경위는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영장집행에 대한 서류에 서명하던 한 전 경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심정은 ‘강설’”

무죄를 선고 받은 조 전 비서관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층으로 내려왔다. 함께 동승한 기자에게 농담을 던질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도 보였다. 포토라인에 선 조 전 비서관은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운을 뗀 그는 “나와 주변인의 고난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금 심정이 어떠냐’는 질문에 “당송 8대가 유종원의 한시 ‘강설’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강설은 작자가 개혁의 좌절로 좌천된 후 정치적 실의를 읊은 시로 유명하다. 질의를 끝낸 조 전 비서관은 3시경 변호사들과 함께 법원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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