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정치인들 단체 ‘헌정회’ 밀착해부

2010.07.27 10:10:19 호수 0호

제헌국회로부터 현재의 국회에 이르기까지 헌정사 60년을 장식해온 주역들이 모인 국가원로단체 ‘헌정회’가 도마 위에 올랐다. 헌정회는 ‘오랜 의정경험과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국가의 주요 현안이나 헌정발전에 필요한 문제들이 제기될 때마다 정파를 떠나 우국충정의 목소리와 정책대안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정작 예산이 집행될 때마다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헌정회의 주요 사업과 그 사업을 집행하는데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전직 국회의원 원로회 총 111억원 사업비 집행
생일·칠순잔치, 매달 생활비까지 혈세로 혜택



헌정회는 지난 1968년 창립된 국회의원 동우회를 시작점으로 한다. 1979년 사단법인으로 등록됐으며 1989년 사단법인 대한민국헌정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또한 1991년에 제정 공포된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에 따라 운영에 필요한 비용을 지급받고 있다.

헌정회의 목적은 ‘민주헌정을 유지·발전시키기 위한 대의제도연구와 정책개발 및 사회복지향상에 공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헌정발전을 위한 정책의 연구와 건의 ▲헌정기념에 관한 사업 ▲사회발전정책과 사회복지문제의 연구와 건의 ▲본회 기관지나 이에 준한 간행물 발간 ▲국제협력증진을 위한 사업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돈독히 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업 ▲회원 후생 및 복지에 관한 사업 ▲기타 본회 목적달성에 필요한 부대사업을 한다.

사업내용 구설에 올라

하지만 이 정치 원로들의 모임은 사업내용과 관련, 갖가지 구설수에 휘말려왔다. 그 중 하나가 지난해 11월 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제36회 밑 빠진 독’상을 받은 것이다. 시민행동이 예산 낭비를 한 기관 등에 주는 이 상에 헌정회가 연로 국회의원에게 주는 지원금이 뽑힌 것.


시민행동은 “퇴직 국회의원의 모임인 헌정회의 내부 규정에 따라 만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 중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을 한 자, 선거법 위반으로 인한 자격 박탈자, 비리 연루자 등은 모두 세금으로 지원되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점을 제기했다.

이어 “지급 대상자의 재산과 소득 수준에 따른 차등 지원 없이 동일한 금액이 지급되고 있는데 이는 전직 의원에 대한 최소한의 생활 보장과 복리 향상을 위한 지원금의 본래 목적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헌정회의 예산 집행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지난 15일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지난 2008년과 2009년 헌정회의 예산 집행내역이 낱낱이 밝혀졌다.

이 자료에 따르면 헌정회가 한 해 집행하는 예산은 100억원대에 달한다. 주요 사업내용은 헌정기념이나 정책 연구보다는 회원들의 복지 및 지원 사업에 치우쳐 있다. 회원들에 대한 복지사업은 ‘국가헌정 발전에 헌신, 기여한 회원을 위해 축하, 위로함으로써 국가 원로단체 회원으로서의 자긍심 고취와 회원의 친목을 도모하고 활성화하여 헌정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마련됐다.

2008년 한 해 동안 회원들의 자긍심 고취와 친목 도모를 위해 2억2888만원의 예산이 쓰였다. 사업내용에는 생신축하, 팔순 축수행사비, 회원경조비, 역사탐방, 병문안비, 단체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또한 65세 이상 연로회원에 대한 생계보호를 위해 마련된 연로회원지원으로는 804명이 한달에 100만원씩 총 96억4700만원을 지원받았다.

2009년에는 복지사업에 2억7886만원, 연로회원지원에 104억1700만원이 쓰였다. 회원 수는 전체 9470명, 월평균 789명으로 전년보다 다소 줄었으나 지원금이 100만원에서 110만원으로 증가, 연로회원지원 사업비를 늘리게 된 것이다.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헌정회를 방문하는 회원들에게 중식 및 다과를 제공하는 데 쓰는 예산이다. 2008년 일평균 방문회원은 46명이었으며 한 해 동안 8400만원의 예산이 쓰였다. 2009년 예산집행 세부내역에도 회원접대 비용은 9412만원을 차지했다.

헌정회는 이 밖에도 정책포럼, 성명서 발표, 헌정지 발간사업을 하고 있다.

정보공개센터측은 “우리가 내는 세금이 전직 국회의원들 생일잔치 해주고, 칠순잔치 열어주고, 밥 사주고, 심지어 매달 생계지원비에 보태는데 쓰이는 줄 몰랐다”면서 “더구나 생계지원비 같은 경우는 단 하루만 의원직을 수행했어도 지원을 받는다. 보유재산 역시 지급기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저 나이가 65세가 넘고 단 하루라도 ‘의원’이었던 적이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달 110만원을 주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센터측은 “물론 전직 국회의원 중에 어려운 처지에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생계지원비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수십, 수백억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지원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친목도모=만사형통?

또한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은 대단한 혜택을 가지고 있다. 금배지는 권력만 주는 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많은 혜택을 재임기간 뿐 아니라 평생토록 누릴 수 있다니, 세금을 내는 시민의 입장으로 이것보다 더한 예산낭비도 없는 것 같다”면서 “헌정회 자료를 보니 왜 그렇게 다들 국회의원이 못되어 안달인지, 알 것도 같다”고 냉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헌정회를 통해 제대로 된 정책연구가 되고 후배 정치인들에 대한 ‘쓴소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헌정회의 정책연구개발 목적이 대의제도 연구와 정책개발로 헌정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기대효과는 이와는 다른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것도 이러한 우려를 깊게 하고 있다. 정책 연구를 위한 헌정회의 세미나가 ‘각 분야별 저명인사를 초청해 세미나를 개최함으로써 정책개발에 기여할 것’에서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정가 일부 인사들은 “정가 원로들이 원로로서 제대로 서기 위해서는 스스로 모범이 될 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우선 아니겠냐”며 최근 “정치를 바로 잡아 달라”고 했던 헌정회의 주문을 그대로 되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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