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가시방석’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2014.07.14 11:18:51 호수 0호

한국축구를 그에게 맡겨도 될까

[일요시사=사회팀] 이광호 기자 =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결국 2014 브라질월드컵 성적부진의 책임과 크고 작은 실수로 인해 자신 사퇴를 선택했다. 월드컵 대표팀 단장을 맡았던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동반 사퇴했다. 들끓는 여론을 의식한 대한축구협회의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들이 물러난다고 해서 ‘축피아’논란이 사라질 지는 의문이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한국축구를 바라보는 팬들의 가슴이 무너지고 있다. 힘 빠진 한국축구의 오늘,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과연 어떻게 풀어나갈까.

 


홍명보 축구대표팀 감독이 여론의 뭇매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퇴했다. 홍 감독은 지난 10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 2층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책임지고 대표팀 감독자리를 떠나겠다. 앞으로 좀 더 발전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사령탑을 맡은 1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나 때문에 많은 오해도 생겼다”며 “모든 게 내가 성숙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음주가무 터지자
긴급 기자회견
 
특히 월드컵 최종명단을 확정하면서 불거진 ‘의리축구’에 대해서는 “월드컵을 준비하면서 어떤 감독도 그런 생각을 할 수는 없다. 절대 아니다”라며 “한국 축구 사령탑은 ‘독이든 성배’라는 점을 충분히 알고 시작했다. 팬들도 후임 사령탑에 많은 도움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로써 지난해 6월24일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된 홍 감독은 382일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고 쓸쓸히 퇴장하게 됐다.
 
FIFA도 홍 감독 사퇴에 대해 입을 열었다. FIFA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홍 감독의 사퇴 소식을 전하며 “홍 감독이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고 전했다. 특히 FIFA는 홍 감독의 사퇴가 박주영 등 선발기용의 실패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FIFA 측은 “홍명보 감독은 선수 선발 과정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특히 월드컵서 한 골도 넣지 못 한 박주영의 선발기용이 그의 실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애초 홍 감독은 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 1무2패의 부진한 성적을 이유로 귀국 직후 거센 비판을 받음과 동시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의 면담에서 사퇴 의사를 내비쳤다. 그런데 정 회장을 비롯한 협회 고위 관계자들은 홍 감독을 설득했다. 2015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까지 축구대표팀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정 회장은 홍명보 감독을 설득해 내년 1월 호주 아시안컵까지 유임하겠다는 입장을 지난 3일 허정무 부회장을 통해 전했다.
 
하지만 홍 감독이 지난 5월15일 대표팀의 훈련이 한창이던 시기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일대의 땅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언론에 알려지며 홍 감독을 향한 비판이 최고조에 달했다. 여기에 벨기에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가 끝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 홍명보 감독과 선수들이 현지에서 가수를 끼고 음주 가무를 곁들인 회식을 한 동영상이 퍼지면서 홍 감독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번 월드컵 성적부진으로 물러나게 된 건 홍 감독만이 아니었다. 허정무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책임을 지고 동반 사퇴했다. 홍 감독의 인터뷰가 끝난 뒤 허 부회장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월드컵 대표팀 단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홍 감독과 동반 사퇴하기로 결심했다. 모든 책임은 축구협회가 떠안겠다”라고 밝혔다.
 
이어 허 부회장은 “월드컵 부진의 모든 책임은 떠나는 나와 홍 감독에게 돌렸으면 좋겠다”며 “팬들의 많은 사랑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전했다.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이 동반 사퇴하면서 황보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워장의 사퇴설까지 거론되기도 했다. 그만큼 팬들의 분노가 컸다.

축구협회 눈치게임
뒤늦은 대국민 사과
 
앞서 한국축구대표팀 공식 서포터즈 ‘붉은악마’는 2014 브라질월드컵 성적 부진과 관련해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붉은악마는 지난 3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한 성명서에서 “4년이 아닌 평생을 준비한 선수들이 월드컵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날아든 ‘엿 세례’를 받는 것을 보며 붉은악마 역시 마음이 아팠다”며 “화살을 홍명보 감독 개인에게 돌리고 싶지는 않다. 더욱 큰 책임과 원인은 바로 대한축구협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붉은악마는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실망스러운 월드컵 성적에 대한 홍명보 감독의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며, 유임에 대한 것도 아니다”라면서 “잘못된 일에 대한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처절한 반성과 더불어 의혹이 있다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명백히 밝히고, 밝은 미래를 향한 비전을 찾는 것이 지금 이 시점에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붉은악마는 기술위원회의 책임을 강력히 요구했다.
 
홍명보 허정무 등 수뇌부 줄줄이 사퇴
월드컵 부진 후폭풍…새판짜기 골머리
 

정 회장은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의 사퇴 기자회견 뒤 직접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정 회장은 “저를 비롯한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월드컵 성적 부진에 이은 최근 일련의 사태로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드리게 돼 무척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대표팀의 월드컵 성적 부진에 대해 누구보다 책임을 통감한다. 월드컵 부진을 거울삼아 대한민국 축구는 더 큰 도약을 향한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각급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기술위원회 대폭 개편 등 쇄신책을 마련하겠다”며 “비록 실망하셨겠지만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성원을 부탁드린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들에 깊은 사과말씀을 드린다”고 거듭 사과했다. 사과문 발표 이후에는 축구협회 관계자들이 모두 나와 고개를 숙였다. 축구협회는 기술위 개편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후임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 본격적으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축구 전문가들은 새 감독 선임보다 축구협회의 기술위원회 개혁이 더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지금이 기회라고 말한다. 외국인 감독을 선임할 적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술위원회만 정상화돼도 외국인 감독 선임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회장은 기술위를 대폭 개편하고 후임 감독도 조속히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개편에 그치면 안 된다고 경고한다. ‘개혁’ 수준으로 기술위를 뜯어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기술위원회를 완전히 독립시키고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식견을 가진 전문가를 엄선해 그 자리에 앉혀 한국 축구의 로드맵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행정의 하부 조직이 아닌 기술위원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진 자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축구협회의 변화는 정 회장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축구협회의 대국민 사과는 이례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2011년 사령탑 ‘밀실경질’ 파문, 직원비리, 2012년 런던올림픽 독도 세리머니에 대한 부적절한 대응 등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고자세를 보였다. 축구협회를 수뇌부가 사유화한 까닭에 이런 현상이 계속 되풀이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완벽에 가까운 사조직 체계를 확보하고 있어 밀실논의, 불통행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악순환의 고리
물러나면 끝?
 
축구협회는 대한체육회의 가맹단체이기는 하지만 받는 국고 지원금이 협회 예산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FIFA의 회원으로서 다른 종목의 경기단체와 달리 강도 높은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협회는 상급단체인 대한체육회의 승인 없이 보고만으로 협회 헌법에 해당하는 정관을 개정할 권한을 지니고 있을 정도다.
 
FIFA는 국가나 정치권이 회원 협회의 행정에 개입하면 자격을 정지하거나 박탈해 A매치를 치를 수 없도록 제재하고 있다. 실제로 축구협회는 2012년 잇따른 비리와 부실행정으로 국정감사에 책임자들이 소환됐을 때 국고가 전체 예산의 1%밖에 되지 않아 피감기관이 아니라는 점, FIFA가 보장한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점 등을 이유로 자료제출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아집 부리던 축구협회
결국 자충수에 ‘울상’
 
그러나 협회가 10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굴리는 주된 동력은 대표팀에 대한 국민의 절대적 지지인 까닭에 적지 않은 공공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기업들의 후원, 방송 중계권료 등 협회 예산의 상당 부분이 국민의 성원으로부터 나오기에 실질적으로는 사조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날 축구협회의 대국민 사과는 수뇌부가 협회 활동의 공공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신호로 비쳐 주목을 받는다. 하지만 월드컵 부진에 대한 책임론을 피하기 위한 임기대응일 수도 있다는 우려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참패의 책임소재와 관련한 답변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사실, 한국 축구에 대한 국민의 비판적인 자유게시판을 최근 폐쇄했다는 사실 등에서는 이날 사과가 ‘악어의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의 사퇴 기자회견은 사실 예정되어 있지 않았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 스포츠매체에서 얼마 전 현지 교민에 의해 축구대표팀의 음주가무 영상을 입수했다.
 
이후 한 기자가 이 영상을 확인했다. 그리고 축구협회 측에 음주가무 내용을 보도할 것이라고 통보했고, 축구협회는 대책을 논의한 끝에 기자회견을 급하게 준비했다는 것이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홍 감독과 허 부회장이 물러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다는 후문이다.
 
지도부가 물러나고 사과한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건 아니다. 축구협회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새판을 짜야한다. 제2의 조광래, 홍명보, 최강희가 나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 우선 축구대표팀은 당장 내년 1월 아시안컵에 나서야 한다. 월드컵 못지않게 중요한 대회다.
 
새 감독은 5∼6개월 정도만을 준비한 뒤 호주로 떠나야 한다.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신임 감독에게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감독 선임과 관련된 틀이 마련되지 않으면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과연 정 회장이 약속한 쇄신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까.

한국 축구
쇄신 절실
 
정 회장은 지난해 1월 허승표, 김석한, 윤상현 후보를 꺾고 제52대 대한축구협회장에 당선됐다. 당시 축구협회 회장 선거는 사상 초유의 4파전으로 벌어지면서 스포츠계 안팎에서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국제 행정, 소통과 화합을 강조했던 정 회장의 승리했다. 정 회장은 선거 투표권을 가진 24명의 대의원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1차 투표에서 7표를 획득하며 과반을 넘기지 못했으나 결선 투표에서 15표를 획득해 당선됐다. 
 
한편, 정치가로 활동 중인 브라질 축구 전설 호마라우(48)가 브라질 축구협회장을 향해 독설을 날려 주목을 받았다. 개최국 브라질은 지난 9일 독일과의 2014 브라질월드컵 준결승전에서 1-7로 대패했다. 경기 후 호마리우는 자신의 SNS를 통해 “브라질 축구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그 이유는 축구를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회장이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들은 고급스러운 집무실에서 자기들의 배만 채우려고 한다. 축구협회 회장인 호세 마리아 마린과 2015년부터 이어받을 마르코 폴로 델 네로는 감옥에 가야 한다”며 날을 세웠다.
 
 
<khlee@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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