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강남부자’들의 소비생활

2009.09.29 10:14:48 호수 0호

필요하다 생각 들 땐 뭉칫돈도 ‘척척’

불황의 여파로 서민들은 허리띠를 날로 조이는 반면 부유층의 소비생활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히려 교육비나 자기투자 비용 등의 지출은 늘어만 가고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조사한 ‘5분위/1분위 소비지출 주요 항목별 배율’을 살펴보면 이 같은 현상은 여실히 나타난다.

식비 외에 모든 지출을 줄이는 저소득층에 비해 부자들은 필요한 것이라면 아낌없이 지갑을 열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강남 부자’들을 통해 부자들이 어디에, 어떻게 돈을 쓰는지 알아봤다.


불황여파에 서민들은 허리띠 ‘꽉’ 부유층은 지출 ‘쑥’
돈 구애받지 않고 자기투자비용 등 상류층 생활 고수


“불황이라고 다들 어렵다고 하는데 솔직히 체감되는 건 별로 없다. 물가가 오르긴 했어도 굳이 지출을 줄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서울 강남에 사는 A(45·여·주부)씨는 소위 말하는 ‘강남 부자’에 속한다.
 
고소득을 얻는 전문직에 종사하는 남편 덕에 불황이 닥쳐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상류층의 일상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한 달 생활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교육비.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는 A씨의 가정에서 한 달간 들어가는 사교육비는 대략 500만원선이다.

불황에도 치솟는 사교육비
언제나 호황인 강남학원가



사교육비 중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곳은 역시 과외다. 소득수준과 성적이 비슷한 또래 몇 명과 함께 그룹을 만들어 유명한 선생님을 초빙해 공부하는 족집게 과외비로 한 달에 300만원 정도가 지출된다고. A씨는 “한 달 300만원이라고 하면 비싸보일지 몰라도 선생님의 레벨을 따져보면 비싼 편도 아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아이의 성적을 올려줄 수만 있다면 한 달 과외비 1000만원도 아깝지 않다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유명한 과외선생님을 사이에 두고 엄마들끼리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A씨는 “스터디 모임에 끼지 못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왜 우리 애는 안 끼워주느냐’며 울고불고 싸우는 일도 숱하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수백만원에 달하는 과외비는 문제가 아니었다. 유명한 선생님의 과외그룹에 들어갈 수 있는지가 관심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

사교육비는 과외비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영어나 수학 등의 주요과목은 청담동 등의 유명학원에서 따로 수업을 받는다. 당국의 ‘사교육과의 전쟁’에도 이들의 사교육비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방학 때 어학연수를 위해 해외로 아이들을 보내는 건 필수 코스. A씨는 “딸아이가 영어권에서 살다온 친구들 때문에 주눅이 든다고 해서 이번 여름방학에 캐나다로 연수를 보냈다”며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돈 몇 푼 아끼려다 딸의 장래를 망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A씨의 말대로 고소득층의 교육비 지출은 불황과는 상관없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가 관내 2000가구 만 15세 이상 4750명을 대상으로 주거, 교통, 문화와 정보, 행정 등 각종 생활상을 설문조사해 분석한 ‘2009 사회통계조사 보고서’를 봐도 이는 여실히 나타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초·중·고 자녀를 둔 가구의 한 달 총 교육비는 평균 129만2000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사교육비는 평균 109만원. 공교육비의 5배를 넘는 수준이다. 자녀 한 명에게 쓰는 교육비는 평균 86만9000원이었다. 고소득층의 교육비 지출 수준은 저소득층과 비교해보면 더욱 큰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이 조사한 ‘5분위/1분위 소비지출 주요 항목별 배율’에 따르면 5분위 가구(월 소득수준 상위 20%)의 학생 학원교육비 지출액은 2분기에 월평균 31만2535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1분위(소득수준 하위 20%)에 비하면 7.6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 배율은 2007년 4분기 7.3배에서 작년 2분기 6.2배로 줄었지만 금융위기가 터진 작년 3분기 7.2배로 상승했고 금융위기가 정점이었던 올해 1분기에는 8.5배로 확대되기도 했다. 부자들이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또 다른 부분은 미용, 건강 등 자기투자 부분이다.

사회 일각에선 “부의 대물림 현상 우려 높다” 지적
교육비, 외모 가꾸기, 건강관리 등에 아낌없이 투자


소득 수준에 따라 서비스 비용의 차이가 큰 것 중 하나는 미용실. 같은 종류의 시술에도 10배가 넘는 가격차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 달에 네 번 정도 미용실에 간다는 B씨가 머리손질에 쓰는 돈은 대략 50만원선. 파마나 커트처럼 머리 모양을 바꾸는 데에도 돈을 쓰지만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부분은 두피와 머릿결을 관리하는 클리닉. 한 번 클리닉을 받는데 보통 10만원 정도라고 한다.

미용사에게 따로 건네는 팁도 만만치 않다. 보통 머리를 감겨주는 미용사에게 2만원 정도의 팁을 준다고 한다. B씨는 “미용실에도 팁 문화가 생활화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사람은 10만원짜리 수표 한 장 정도는 팁으로 쓴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헤어디자이너로 일하는 C씨도 10만원이 넘는 팁을 주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C씨는 “단골로 오는 사모님들의 경우 팁을 많이 주긴 하지만 머리를 하고 차를 타고 떠날 때까지 고개 숙이고 인사하며 배웅을 해야 해서 힘들 때도 많다”고 전했다. 고소득층은 손톱과 발톱을 관리받는 네일아트와 페디큐어에도 적지 않은 돈을 쓴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이모(34·여)씨는 네일아트 숍에서만 한 달에 30만원 정도를 쓴다.

3년째 같은 숍을 이용하는 회원이라 할인받은 가격이다. 피부 관리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한 번 관리를 받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원선.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고가의 특별 관리를 따로 받는다. 화장품 역시 외제 명품화장품만 고집한다. 이씨가 애용하는 화장품은 L사 제품으로 크림 하나만 70만원에 달한다.

외모가꾸기는 필수
“난 소중하니까”

다이어트 방법도 서민과는 다르다. 병원이나 관리실을 다니며 돈을 주고 살을 빼는 것이 고소득층의 살빼기 비법. 유행하는 것 중 하나는 한약과 침을 이용한 다이어트라고 한다. 식욕을 없애주는 한약과 지방을 분해해 준다는 침과 주사를 맞아 단기간에 살을 빼는 방식이다. 이씨도 모 연예인이 다녀 살을 뺀 것으로도 유명해진 한의원을 다니며 다이어트를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다이어트 비용으로 쓴 돈은 약 1000만원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치아미백, 제모 등을 꾸준히 받고 있어 자기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이 수입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씨는 “지금 관리받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아낌없이 돈을 쓰게 된다. 소득이 줄어든다고 해도 관련된 부분의 지출은 줄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부자들의 외모꾸미기 비용은 ‘5분위/1분위 소비지출 주요 항목별 배율’에도 나타난다. 1분위 계층이 월평균 1만7403원의 돈을 이·미용 서비스에 쓰는 반면 5분위 계층은 월평균 4만2906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나 2.5배정도의 돈을 더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상위계층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더욱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자동차나 장신구 등의 지출도 큰 차이를 보였다. 5분위 계층의 자동차구입비는 1분위 계층의 8.5배에 달했다. 또 시계와 장신구 지출액은 5분위 계층이 1분위 계층보다 5.9배 더 많았다. 외모꾸미기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것은 여성뿐만 아니다. 고소득층 남성들 역시 외모를 가꾸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최모(43)씨는 아내만큼이나 외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중년의 나이에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데는 회원제 헬스클럽이 한 몫을 하고 있다. 최씨는 헬스와 골프를 함께 할 수 있는 클럽에 회원으로 가입해 운동을 하고 있다. 한 달 비용은 보통 100만원선. 머리 손질에도 여자만큼이나 많은 돈을 투자한다.

요즘 최씨의 최대 관심사는 탈모예방이다. 이를 위해 두피클리닉을 다니며 머리카락이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 데 큰돈을 쓰고 있다. 주기적으로 마사지도 받는다. 단골 태국마사지 숍에서 발마사지부터 전신마사지까지 그때그때 필요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 유흥을 즐기는 방법도 특별하다. 최씨가 지인들과 술을 마시는 장소는 주로 호텔. 강남의 한 호텔에 라운지회원으로 가입한 그는 좀 더 노출되지 않는 공간에서 유흥을 즐긴다고 한다. 

미래 투자 차이로
대물림되는 빈부

이처럼 고소득층은 경제사정에 상관없이 자신들만의 소비생활을 누리고 있다. 이들 역시 불황의 한파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들에게 쓰는 교육비나 자기관리를 위한 외모관리, 건강관리에 쓰는 돈을 줄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들이 사치스런 생활로 과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최씨는 “자식들에게 들어가는 과외비나 자기관리비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국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지출”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자기관리 비용은 의식주에 쓰이는 돈처럼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생활비에 불과하다는 것.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기개발에 초점을 맞춘 소비를 하는 고소득층과 박봉에 시달리며 생활을 영위하기 급급한 저소득층의 미래에는 차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문대에 다니는 학생 중 강남에 사는 학생의 비율이 높은 것이 이를 말해 준다. 교육비의 차이가 학력의 차이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은 부의 대물림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전문가들은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뚜렷한 소비 패턴 차이는 결국 자녀들이 이어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 대물림되는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화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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