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군정보사령부 900여단(현 100여단)장을 맡았던 박민우 제2군단 부군단장(준장)이 모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직권남용·폭행 혐의를 받았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불기소됐다. 군 안팎에서는 군검찰이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하지 않았던 박 준장에 대해 보복성으로 기소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국군정보사령부는 내홍에 시달렸다. 블랙 요원 명단 유출에 사령관과 여단장 간 갈등까지 ‘점입가경’이었다. 주인공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과 당시 900여단(현 100여단)장이던 박민우 제2군단 부군단장(준장)이다. 박 준장은 문 전 사령관은 갈등을 빚으면서 서로를 고소했었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박 준장만 홀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왜 싸웠나
문 전 사령관과 박 준장은 지난해 초 대북 기획 공작 추진을 놓고 갈등을 겪었다. 박 준장이 관리하는 서울 충정로의 정보사 비밀 사무실(안가)을 정보사(정보병과) 출신으로 구성된 예비역 민간단체인 군사정보발전연구소가 최소 월 1회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 전 사령관이 뒤늦게 알게 된 게 시작이다. 문 전 사령관은 박 준장에게 “무단 사용이라는 법무실 검토가 있었으니 해당 단체를 내보내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 안가는 실제 사용되지 않았다. 특히 국방부에도 보고가 됐던 플랜이었다.
약 5개월 후인 6월7일 박 준장은 문 전 사령관에게 대면 보고를 하면서 “해당 단체는 기획 공작 업무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고, 공작 업무를 위해 영외 사무실에 여단 공작팀도 상주시켜야 한다. (사무실에서)못 뺀다”며 “다른 방법으로 승인을 받겠다. 이미 위에 보고했고 상부 지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 전 사령관은 2m 거리에 서 있던 박 준장에게 결재판을 던지면서 “보고를 안 받겠다. 나가라”고 했다.
박 준장은 “문 전 사령관이 보좌관 등을 통해 출퇴근 시간을 감시하고, 결재판을 던진 건 폭행에 해당한다”며 직권남용·폭행 등으로 국방부 조사본부에 고소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실제 군 수뇌부는 박 준장의 출퇴근 시간 및 특이사항을 제3자를 통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이 지시는 정보사 인사 파트를 통해 전달됐다.
한 정보사 관계자는 “문 전 사령관과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이 박 준장에 대한 감시를 지시했다. 군 고위층에서는 감시보다는 ‘감찰’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통상 감찰은 출퇴근 시간까지 감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박 준장이 문 전 사령관과 국방정보본부 관계자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던 고발장에도 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900여단장 출신 박민우 준장 재판행
직권남용·폭행 정황 뚜렷 문 무혐의
정보사 관계자 A씨는 지난해 6월 정보사 인사처장으로부터 “박 전 여단장이 직무배제로 인해 강남 모처 사무실로 파견 명령이 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A씨에게 “(강남 모처 사무실로) 함께 출근해서 정보사령관 등에게 직접 출퇴근 시간을 문자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박 전 여단장에게는 따로 보고하지 말라”고 했다.
같은 달 17일엔 정보사 상급부대인 국방정보본부 인사팀장 이모 중령도 A씨에게 연락했다. 이 중령은 오후 1시51분 “박 전 여단장 출퇴근 여부를 (국방정보본부) 계획운영실장 (김모 대령)에게 문자로 보고해 달라”고 했다.

같은 날 A씨는 원천희 국방정보본부장에게도 박 준장의 출퇴근 보고를 실시하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정보사 안팎에서는 12·3 내란 사태에 비협조적이었던 박 준장을 사실상 군 수뇌부가 사찰해 왔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보사 간부 중 지휘권과 내부 장악력이 강한 스타일로 알려진 박 준장을 축출하기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평가다.
내란 기획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지난해 5월 박 준장과 통화한 이후 ‘고집 세고 말 안 듣는 사람’이라고 판단한 것도 이 관측에 무게를 더 한다. 문 전 사령관과의 갈등 이후 직무배제 조치된 박 준장은 정보사 HID 지휘권을 박탈당했다.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내란 당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 군 정보기관 관계자는 “박 준장이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았다면 노 전 사령관과 문상호 전 사령관의 말을 들었겠냐”며 “계엄 계획에 차질이 생기기 직전에 제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군검찰에 미운털 박혔나
노상원 주도 축출 피해자?
박 준장은 지난 2월4일 노 전 사령관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 출석한 박 준장은 “제가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을 할 때 중요한 대북 임무를 6개월 정도 준비했다”라며 “노상원 당시 사령관은 다른 불합리한 지시도 했는데, 임무가 끝나면 우리 요원들을 제거하라고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어떻게 제거를 하냐고 물어보니 ‘폭사시켜라’라고 했다”라며 “폭사 방법은 원격 폭파조끼를 입히는 것이었다”고 했다.
김선호 전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은 박 준장의 증언에 대해 “(안규백 위원장님) 지금 증언하는 자가 군사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얘기들을 무분별하게 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준장은 “임무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 HID를 포함해 야전부대도 북한에 대한 작전 목표가 있고 북한 내륙과 서해, 동해에 대한 계획이 있다. 이건 당연한 거다”며 “작전의 성격과 내용, 시기를 말씀드린 게 아니다. 굉장히 일반적인 걸 얘기했다”고 강조했다.
이후 박 준장은 군 수뇌부로부터 미운털이 박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사령관에 대한 군 내부 평가가 좋지 않았다고 해도 ‘대북 임무’ 특성을 고려하면 국회와 같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언급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한 인사는 “그게 무슨 하면 안 되는 말이었냐. 간혹 당시 상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언만 듣고 비판하는 사람들”이라며 “노상원이 얼마나 반인륜적인 사람인지를 지적하기 위한 발언이었다. 박 준장을 편드는 게 아니다. 겨우 그런 걸로 박 준장이 기소됐다면 불법 계엄에 동조하는 세력이 움직인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군 내부에 아직 내란 세력이 남아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사찰 지시도
박 준장은 직무배제 조치로 인해 내란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결국 모욕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문 전 사령관은 직권남용 정황이 뚜렷함에도 재판에 넘겨지지 않았다. 군검찰의 보복성 기소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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