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파문' 경찰 자충수 내막

2013.04.08 16:48:15 호수 0호

일단 터트리고 수습은 나중에?

[일요시사=사회팀] 경찰 수뇌부는 건설업자 Y씨가 연루된 성폭행 사건이 서초경찰서에서 무혐의 처분될 것을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달 뒤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성접대 동영상의 존재가 경찰청 범죄정보과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과 갈등을 겪고 있던 경찰대 1기는 성접대 스캔들을 터뜨려 검찰의 목줄을 죄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검찰에 꽂은 칼은 다시 비수가 돼 경찰의 심장을 겨누고 있다.





"아마 서초경찰서에서 엎어질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조사에) 들어갈 수 있어요."

지난 1월께 경찰청 범죄정보과에서 나온 얘기다. '검사 잡는 경찰'로 불리는 범죄정보과는 몇 달 전부터 검찰을 겨냥한 '한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부러 어설픈 척?

경찰은 단순 '간통 사건'을 정국을 뒤흔드는 '거대 게이트'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경찰청 범죄정보과가 성접대 동영상을 확보한 건 지난해. 당시 이 동영상을 갖고 있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동영상을 확보했다"며 "3월 중으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경찰 외부로 전했다.

타깃도 명확했다. 새 정부 검찰총장 후보자로 물망에 오르내리던 김학의 전 대전고검장이 동영상 속 인물로 지목됐다. '김 전 고검장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추천되면 성접대 동영상을 터뜨려 검찰에 데미지를 입힌다'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시나리오였다.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법조계에는 "대한민국이 뒤집어질만한 동영상이 떠돌고 있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이 무렵 경찰은 동영상 원본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부업자 P씨와 접촉했다.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마지막 퍼즐인 동영상 원본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경찰은 원보 확보에 실패했다.

여기서 변수가 등장했다. 김 전 고검장이 검찰총장이 아닌 법무부 차관으로 내정된 것이다. '한방'을 노리던 경찰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동영상과 관련한 추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져 청와대로까지 흘러들었다. 결국 김기용 경찰청장은 사전 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옷을 벗었다.

이 지점에서 경찰은 수사를 종결할지 그대로 밀고 나갈지를 고민했던 것으로 한 관계자는 전했다. 동영상만으로는 김 전 고검장(차관직 사퇴)인지를 특정할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경찰은 수사를 강행했다.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에 따른 상당한 역풍까지 각오해야 했다. 경찰의 자충수는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현재 성접대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범죄정보과는 경찰청 정식 직제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지난 2011년 12월 범죄정보과를 신설했다.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판·검사와 국회의원 등 고위 공직자 비리 수집이 이 조직의 주 업무였다.

범죄정보과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검·경 수사권 갈등이 있다. 수사권 독립을 꾸준히 요구해 온 경찰대 1기는 범죄정보과를 만든 창립공신으로 꼽힌다. 경찰대 1기는 "경찰의 수사 역량이 검찰 못지않다"고 주장하는 경찰 내 대표적인 강경파다.

경찰대 1기가 주도한 범죄정보과가 검찰의 목을 겨누고 있는 건 당연한 일. 사상 초유의 '이중 수사' 논란이 일었던 김광준 전 부장검사의 뇌물 수수 때부터 범죄정보과는 검찰과 관련한 첩보 수집에 열을 올려왔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인 검찰에 타격을 입히면서 경찰의 수사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검찰 비리'를 건드는 것이기 때문. 이번 사건이 '제2의 김광준 사태'라 불리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경찰은 내사 과정에서 '검찰 비리'의 뇌관을 쥐고 있는 건설업자 Y씨와 관련한 인물들을 대부분 조사했다. 내사 과정에서 Y씨가 검찰 및 정부 기관을 상대로 광범위한 로비 행각을 벌인 정황도 포착했다. 그러나 문제는 로비 혐의를 입증할 증거였다. 결정적 물증이 없는 한 접대를 받은 이들 대부분은 불기소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경찰은 또다시 무리수를 뒀다. 언론에 성접대 의혹을 사실처럼 공표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들' 동영상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론의 눈과 귀는 '별장 동영상'에 쏠렸다. 이때부터 언론은 성접대 수사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기 시작했다.

엑셀을 밟은 경찰은 검찰 압박용으로 언론을 활용했다. 출국금지 요청을 통해 김 전 고검장의 실명을 간접적으로 오픈했다. 결론적으로 김 전 고검장은 내정 6일 만에 성추문 의혹으로 옷을 벗었다. 범죄정보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보였다.

검찰 목줄 잡는데 성공했지만…수사 오리무중
이대로 흐지부지 종결 되면 거센 역풍 불보듯

그러나 사건은 경찰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최초 검찰을 겨냥했던 '성접대 스캔들'이 "청와대 인사 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결과로 귀결되면서 정부의 심기를 건들게 된 것. 이번 성접대 수사를 통해 수사권 조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했던 경찰은 도리어 조직의 수장이 교체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데 확인은 안 되는 수사 패턴이 반복되면서 경찰의 수사력에 의문을 표하는 여론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 검찰이 언론을 이용해 확인되지 않은 수사 정보를 흘려 사건을 유리하게 끌고 나가던 행태를 경찰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사건을 이렇게 벌려 놓고 도대체 수습은 어떻게 할는지 의문"이라고 이번 수사에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경찰이 늦장 수사를 벌이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라며 "첫째는 마땅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고, 둘째는 뒤져도 마땅한 증거가 나오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은 내사에 착수한 지 13일 만에 Y씨의 별장을 압수수색했는데 별 다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으며, 건설업자 Y씨 자택 등에서도 혐의를 구체화할만한 자료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즉 수사가 여전히 의혹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 한 경찰 관계자는 "만약 이번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경우 수사권 독립은커녕 범죄정보과는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경찰대 1기 위기설'이 허언이 아니란 것. 경찰 내 온건파 역시 지난 'YTT 사건' 때처럼 검찰로부터 당할 역풍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권 날아가나

그러나 강경파인 범죄정보과는 지난 4일 또다시 수사 방향을 틀어 검찰을 조준하고 있다. 건설업자 Y씨가 70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봐주기 수사'를 했다는 의혹이다. 한편에서는 압수된 Y씨의 차명계좌에서 거액의 뭉칫돈이 발견됐다는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 뭉칫돈이 검찰로 흘러 들어갔는지가 혐의의 핵심이다. 수사권을 쟁취하기 위한 경찰의 진흙탕 싸움이 어느덧 2막으로 접어들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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