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채 상병 사건 수사 재개에 나섰다.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서 유의미한 자료를 확보해 분석 중이다. 공수처의 ‘정권 수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한 대목이다. 공수처 내부의 생각은 다르다. 고질적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아 대통령선거 직전까지는 핵심 인물들을 소환 조사하기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사들의 임명이 미뤄지고 있다. 현재 재직 중인 부장과 평검사는 총 12명으로 일반적 사건 수사조차 버겁다. 최근 대통령실과 국가안보실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자료를 들여다보고 있어 타 사건은 손도 댈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복수의 공수처 관계자의 설명이다.
고발장 쌓이는데…
공수처 관계자는 지난 1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 압수수색으로)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해 압수 대상물들을 분석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7일부터 이틀에 걸쳐 대통령실과 안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공수처가 해병대원 수사 외압 의혹 수사에 착수한 뒤 대통령실 강제수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추가 압수수색 가능성에 대해선 “상황은 종료됐고 더 할지는 수사팀서 판단할 문제”라고 전했다.
공수처는 압수수색을 통해 2023년 7월31일 ‘VIP 격노설’이 불거진 안보실 회의 관련 자료, 대통령실 출입 기록 등을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의에는 해병대수사단의 초동수사 결과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대상에는 ‘02-800-7070’ 번호의 가입자 명의 서버와 기록, 안보실 회의를 전후한 대통령실 출입기록 등도 포함됐다.
이 전화번호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원 순직 사건 초동수사 기록의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하기 직전 통화한 번호다. 이 전 장관은 해당 번호와의 통화 이후 국방부서 진행할 해병대수사단의 수사 결과 브리핑 취소를 결정하고 수사 기록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했다.
이제야 용산 압색…유의미한 자료 확보
‘VIP 격노설’ 확인 후 이종섭 소환 전망
또 12·3 비상계엄 사태 잔여 수사도 이어가는 한편, 필요한 경우 경찰 국가수사본부와의 협업 가능성도 열어뒀다.공수처 관계자는 “아직 공조수사본부(이하 공조본)가 정식 해산한 것은 아니라 필요한 경우 압수물이나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며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수처는 현재 일반적 사건 처리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2·3 비상계엄 수사를 포함해 고발장이 쌓이고 있지만 인력난이 발목을 잡고 있다. 공수처 검사 정원은 25명이지만 현재 인원은 14명에 불과하며, 처장과 차장을 빼면 실질적으로 수사할 수 있는 검사는 12명에 그친다.
공수처 인사추천위원회는 지난해 9월 3명, 올해 1월 4명의 신규 검사를 대통령실에 임명 제청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전 국무총리, 최상목 전 부총리 등은 잇따라 임명을 미뤘다.

공수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사건을 파기환송 판결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 혐의 고발 사건을 수사4부(부장검사 차정현)에 배당하고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또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자신을 뇌물수수 등으로 기소한 전주지검 관계자들을 직접 공수처에 고발한 사건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전 사위 채용 특혜 의혹으로 자신을 기소한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전 전주지검장), 박영진 현 전주지검장 및 수사를 담당한 전주지검 검사들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피의사실공표 등 혐의로 고발했다.
평·부장검사 12명…사건 처리 버거워
대선 결과 따라 기관 폐지·확장 기로
공수처는 또 ‘안가 회동’ 의혹 등 비상계엄서 파생된 사건들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한 전 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 재직 당시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고 이완규 법제처장을 후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건을 수사 중이다.
이 밖에도 시민단체가 심우정 검찰총장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을 심 총장 딸 외교부 특혜 채용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뇌물 등 혐의로 고발한 사건과 윤 전 대통령의 첫 형사 재판 촬영을 허가하지 않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등도 공수처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양측 진영을 향한 고소·고발전이 계속되고 있는 양상이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로 사건이 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고질적인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는 한 제대로 된 수사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내부의 판단이다.

인력난과 더불어 수사력 논란도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사건이 연달아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은 지난달 24일,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의 ‘고발 사주’ 의혹 무죄를 확정한 데 이어 전날 뇌물수수 혐의를 받던 김형준 전 부장검사에 대한 무죄를 확정했다.
손 검사장은 대검찰청서 근무하던 지난 2020년 4월 당시 총선을 앞두고 최강욱 전 의원 등에 대한 고발을 사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바 있다. 1심은 손 검사장의 일부 혐의를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지만, 2심과 대법은 손 검사장이 김웅 전 의원에게 고발장 등을 보낸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처리 하세월
공수처 ‘1호 기소’ 사건인 김 전 부장검사 뇌물수수 사건의 경우에는 혐의가 한 차례도 인정된 바 없다. 김 전 부장검사는 과거 검찰서 함께 근무했던 변호사에게 약 1000만원 상당의 뇌물 등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공수처는 김 전 부장검사가 남부지검 증권범죄 합동수사단으로 근무하던 당시 해당 변호사에게 수사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뇌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만 1·2심은 이들의 금전 거래가 뇌물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공수처의 상고를 기각했다. 공수처가 직접 기소한 사건 중 유죄 판결이 나온 사건은 윤모 전 검사 고소장 위조 사건 단 1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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