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영교 ‘조희대 회동’ 발언과 풍문 정치

2025.09.19 11:04:27 호수 0호

정치인의 발언 하나 하나는 단순한 언어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정치적 메시지이자, 공적 책임을 동반하는 행위다. 근거가 불분명한 주장을 던져 놓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슬그머니 물러서는 태도, 흔히 말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 행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회동 발언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 의원은 “회동 관련 녹취 파일은 있지만 회동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정확하지 않다’고 이실직고하면서 정작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서 의원 발언의 본질은 ‘회동 여부의 사실’보다는 ‘수사 촉구’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치인은 발언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 발언에는 반드시 사실에 대한 검증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는 오래전부터 ‘풍문 정치’가 뿌리내려오고 있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문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는 관행이다.

서 의원의 발언 역시 이런 풍토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 대법원장이 특정 정치 세력과 부적절하게 회동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 확인 전까지는 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사법부 수장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검증보다 ‘먼저 던지고 보는’ 방식이 더 익숙하다.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의혹을 제기한 뒤, 아니면 “내가 들은 바로는 그렇다”라며 발을 뺀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피로감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

정치인의 발언은 일반인의 말과 다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며, 동시에 법적 면책특권까지 보장받는다. 그만큼 공적 발언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특히 사법부를 향한 정치인의 언어는 삼중, 사중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법관은 정치로부터 독립해 재판을 해야 하며, 사법부 수장의 명예는 곧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직결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것은 정치인이 얼마나 손쉽게 ‘아니면 말고’식 태도로 발언을 휘두르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사법부의 권위를 흔들고, 사회 전반의 신뢰 구조를 붕괴시키며 아래와 같은 심각한 폐해도 불가피하다.

첫째, 공적 기관의 신뢰 훼손이다. 대법원장이 정치권과 은밀히 만났다는 뉘앙스가 퍼지는 순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법원은 이미 불신의 대상이 된다. 진실이 밝혀져도 ‘연기 없는 불은 없다’는 식의 의심이 남는다.

둘째, 국민의 피로감 증폭이다. 정치권이 근거 없는 주장과 반박으로 공방을 이어가면, 국민은 정치 전반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강화하게 된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사회를 지배하면, 민주주의는 건강한 긴장과 참여를 잃고 만다.

셋째, 언론 환경의 왜곡이다. 정치인의 발언은 언론에 빠르게 확산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기사화되고, 그 기사가 다시 여론을 형성한다. 이후 사실이 아니라는 정정 보도가 나오더라도 이미 퍼져버린 의혹은 회수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혹은 제기될 수 있으며 이는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의혹 제기에는 철저한 근거와 확인 절차가 필수다. 책임 있는 정치인은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근거에 따라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해야 한다.

최근 서 의원의 발언은 정치가 품격을 잃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실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발언이 나온 순간부터 이미 사법부는 상처를 입었고, 국민은 혼란에 빠졌다. 정치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아니면 말고’식 정치 언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풍문이나 음모론에 기대어 상대를 공격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이라는 식의 발언은 정치권의 일상어처럼 사용돼왔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정치인의 단기적 이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가 전체의 장기적 신뢰에는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앞서 지난 5월14일,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향응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김 의원은 “어떤 판사가 1인당 100~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그 판사가 돈을 낸 적이 없다는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며 “그 판사가 바로 내란 수괴 윤 전 대통령을 재판하고 있는 지 부장판사다. (접대 받은 그가 향후)어떤 조치를 취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법관에 대해서 의혹 제기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로비가 이뤄졌고 그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그런 것 없이 좌표찍기하는 것은 예전에 베네수엘라에서 법관을 압박하거나 겁박할 때 쓰던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지귀연 룸살롱 의혹’은 대선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갑자기 툭’ 불거진 것이다. ‘구체적 제보’라는 허울 아래 1차, 2차로 사진을 공개했으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진에 지 판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며 접대받을 생각도 못했다” “삼겹살이나 소주를 사주는 사람도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해당 논란은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회부됐지만 민주당에서 더 이상 증거를 제공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다.

21대 국회였던 지난 2022년 10월엔 국정감사 당시, 김의겸 민주당 의원(현 새만금개발청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한 장관이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30명과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김 의원은 자리에 함께했다는 첼리스트의 음성 녹취도 함께 공개해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그해 11월23일, 해당 첼리스트가 경찰 조사에 출석해 “남자 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했다”고 진술하면서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김 전 의원은 1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했으며, 김 의원과 해당 사실을 보도한 매체 등에 8000만원의 손해배상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 측이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한 소명자료만으로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1심 패소 판결에 김 전 의원은 지난달 18일 항소했다.


정치가 신뢰를 잃게 되면 결국 국민은 정치 자체에 무관심해지거나 혹은 강경한 포퓰리즘에 몰리는 극단적 선택에 놓이게 된다. 어느 쪽이든 민주주의에는 독이다.

이제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풍문에 기대는 정치가 아니라, 검증에 기반한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사실 확인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하고, 확인된 사실에 기반해 책임 있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차원에서 정치인의 발언 윤리에 대한 규범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면책특권이 ‘무책임의 면허증’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언론 역시 검증 없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기보다, 사실 여부를 따져 확인한 뒤 전달해야 한다. 정치와 언론이 함께 노력할 때만이 ‘아니면 말고’식 정치가 설 자리를 잃는다.

서 의원의 조희대 회동 발언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책임 없는 언어’의 관행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발언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말한 대로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는 언어로 이뤄진다. 언어가 가벼우면 정치도 가볍다. 정치가 가벼워지면, 국민의 삶은 무겁다. 이제는 정치가 언어의 책임을 회복해야 할 때다. 그 시작은 바로, 근거 없는 말 한마디를 삼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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