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엘시티 추락사고, 슈브라켓 구조적 부실 의혹

2018.03.12 09:46:35 호수 1157호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였다

[일요시사 취재2팀] 최현목 기자 = 부산 해운대 엘시티 공사현장서 안전작업구조물(SWC, Safety Working Cage)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설업계에선 SWC가 충격과 하중에 취약한 구조적 부실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요시사>는 엘시티 측 주장의 모든 것을 집중 취재했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지난 2일. 이날 오후 2시경 해운대 엘시티 공사현장 55층서 근로자들이 일하는 박스 형태의 구조물이 추락해 8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작업 구조물서 일하다 추락해 숨진 사람들은 외벽에 유리 설치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소속 근로자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대로 추락

해운대경찰서는 즉각 사고 원인을 밝히는 데 착수했다. 사고 당시 1호기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던 생존자와 57층서 유압기를 조정하면서 사고로 머리를 다친 부상자로부터 “거의 20㎝를 남겨 놓은 상태서 잠시 쉬려고 했고(유압기로 구조물을) 올리고 나서(고정장치에 걸려고) 내리는 순간 그대로 추락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지난 5일 오전 언론 브리핑을 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과 협의해 지금까지 파악한 사고 원인과 관련된 수사내용을 발표했다. 경찰은 “슈브라켓과 클라이밍콘의 연결 부위는 정상이나 클라이밍콘과 타이로드 연결에 문제가 있을 개연성이 있다”고 했다.

슈브라켓은 작업 구조물이 움직이는 레일과 건물 외벽을 연결하는 장비다. 짧은 면에는 레일을 감싸는 슈와 연결되며 넓은 면에는 클라이밍콘이 붙어 있다. 클라이밍콘은 건물 내부까지 깊숙이 박히는 형태로 설치된다. 


즉 슈브라켓과 건물이 붙어있을 수 있도록 하는 장비다. 클라이밍콘에는 철근 형태의 타이로드와 그 타이로드를 잡아주는 앵커 플레이트가 설치돼 건물 내부서 외부로 클라이밍콘이 빠지지 않도록 잡아준다.

클라이밍콘과 타이로드, 앵커 플레이트를 합쳐 앵커라 한다. 이 앵커가 건물 내부 40㎝ 깊이까지 심어진다. 슈브라켓은 앵커의 지지로 건물 외벽에 붙어 있을 수 있다.

경찰은 브리핑서 “건물 벽면 구멍 4개 모두에 타이로드가 남아 있는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건물 내부에 타이로드가 모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하중에 의해 클라이밍콘과 타이로드의 연결이 빠지면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된다.

직접적인 사고 원인은 클라이밍콘과 타이로드의 연결 부실일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클라이밍)콘이 빠지면서 나사산(나사의 골과 골 사이의 높은 부분)이 뭉개진 흔적이 보인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밝힌 작업지시서에 따르면 클라이밍콘을 타이로드에 최소 50㎜ 이상 돌려 끼워 단단히 결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만약 타이로드가 부러졌다면 건물 내부에 파단(인장력을 받아 절단되는 현상) 단면이 보여야 하는데 파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클라이밍콘과 타이로드의 연결이 빠지면서 나사산이 뭉개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경찰은 타이로드와 클라이밍콘이 제대로 연결됐는지 여부를 우선적으로 조사 중이다.

업계 경량화‧효율만능주의 심각
경찰, 관련업체 추가 압수수색

경찰과 국과수 감식팀이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건설업계 안팎에선 SWC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SWC가 안전성보다는 효율성에 중점을 둔 구조라는 것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듯 슈브라켓을 지지하는 클라이밍콘이 상단에 하나인 점을 확인할 수 있다”며 “최소한 두 개의 클라이밍콘이 지탱하는 형태였다면 클라이밍콘이 쑥 뽑혀 나오는,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쉽게 말해 벽에 선반을 다는 경우와 같다. 벽과 선반 사이를 이어주는 삼각형 모양의 지지대가 브라켓이다. 그 브라켓을 고정할 때 나사못을 한곳에만 박는 경우는 없지 않나. 같은 원리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더해 슈브라켓의 길이가 길어 하중 및 충격에 취약한 점도 구조적 문제 중 하나로 지적된다. 

건설업계 출신 한 전문가는 “슈브라켓의 길이가 길수록 건물과 슈브라켓의 연결부위에 가해지는 힘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렛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받침점서 힘점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적은 힘으로 무거운 물체를 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반대로 적용하면 된다. 건물 외벽과 슈브라켓이 만나는 지점을 받침점이라 보고 구조물이 추락해 받은 지점을 힘점이라 본다면 그 사이가 멀수록, 즉 슈브라켓이 길수록 연결부위에 가해지는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로 업계에 만연한 구조물 경량화 및 효율 만능주의를 꼽았다. 입찰에 성공하기 위해 단가를 줄이려다 보니 장비를 경량화하는 풍토가 업계에 만연해있다는 것이다.

또 안전보다 작업 효율을 우선시하는 업계의 풍토는 슈브라켓의 설치‧해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클라이밍콘 숫자를 최소화하고, 슈브라켓의 길이를 늘이는 지금과 같은 형태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슈브라켓이 길어지면 건물 외벽과 작업 구조물 사이 공간이 넓어져 외장 공사를 하기에 훨씬 용이해진다.

경찰 측은 이러한 주장들을 현장에 적용하면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번 사고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해운대경찰서 관계자는 “그런 식으로 하면 안전성이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면서도 “국과수 결과에 따르면 클라이밍콘이 하나라도 설치만 제대로 돼있으면 하중을 견디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나온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구조적 문제라기 보단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안전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현장서 변칙적으로 행해지는 요인에 의해 사고가 일어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상자 8명

경찰은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6일 시공사인 해운대 포스코건설 부산지사와 현장사무소, 하청업체 등 6개소에 수사관을 보내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어 지난 8일 추락한 구조물 설치·관리 전문업체의 서울 본사 사무실 등 2곳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벌였다. SWC를 취급하는 업체는 국내에 4곳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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