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골라받는 병원들 백태

2016.07.11 11:48:24 호수 0호

“냄새가 너무 나서 진료 못해!”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서울의 한 대학병원이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기초생활 수급 환자의 입원을 거부한 사례가 밝혀져 논란을 빚고 있다. 실명까지 공개돼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는 해당 대학병원은 알려진 사실과는 다르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진료거부로 인해 사망하는 사례도 여러 번 있었다. 진료거부로 인한 모든 비난의 화살은 병원을 향하고 있지만 병원 나름대로의 사정도 있는 듯하다.

 



환자단체가 밝힌 사건의 정황에 따르면,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인해 3급 장애인 판정을 받은 이모씨는 지난 5월23일 인근 대학병원을 방문해 류마티스내과에서 진료와 검사를 받았다. 그 후로 일주일 뒤인 5월30일 두 번째 외래진료에서 담당 의사가 입원 치료를 권유해 원무과에서 입원 절차를 밟으려 했다. 그러나 이씨는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입원 절차를 밟지 못했다.

3곳서 거부

담당 의사로부터 입원 권유를 받고 간호사가 작성해 준 ‘진료 후 절차 안내문’의 지시에 따라 원무과에 가서 입원 절차를 밟으려 했지만, 해당 병원의 원무과 의료급여 담당 직원은 “보호자가 없으면 입원이 안 되니 아무나 한 명 보호자를 지정해 입원약정서 작성 후 입원하라”며 입원을 거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다른 병원 직원까지 가세해 모욕적인 말을 들은 이씨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112에 신고했고, 경찰마저도 병원 편을 들자 어쩔 수 없이 귀가했다. 이씨는 지난달 22일, 환자단체연합회가 개최한 ‘환자샤우팅카페’에도 참석해 자신이 겪은 사례를 소개하며 의료급여환자에 대한 병원의 차별적 행위에 분노를 토했다.

병원 관계자는 “해당 사건이 발생한 후 입원 절차를 위해 이모 환자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아 사후 어떤 대처도 하지 못했다”며 “환자 발언 하나로 병원은 굉장히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며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실제로 주변의 상급 병원들은 ‘환자 거부’는 있을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 소재 A 대학병원 관계자는 “입원 시 보호자의 서명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진료를 보러 오신 환자기 때문에 최대한 입원을 하도록 도와드리고 진행한다”고 밝혔다. 서울 소재 B 상급 병원 관계자 역시 “병원이 환자를 거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특히 상급 병원의 경우 주변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큰 소란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단 환자를 무조건 받아들인다”고 전했다.

지난해 초에는 응급치료가 필요한 노숙자가 여러 병원의 진료 거부로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 중에는 행려자 지정 병원도 있어 논란이 일었다. 당시 30대 노숙자 신모씨는 머리를 다쳐 쓰러진 후 119 구급대를 통해 인근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보호자 없다” 가난 이유로 입원 거부
무연고자·노숙자도 기피 대상 논란

그러나 해당 병원 관계자는 “(노숙자들이) 여기 있으면 응급실 전체에 냄새가 나 환자들이 막 XX를 하는데 진료해 주기 힘들다. (행려자 진료 시설) 같은 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했다. 구급대는 밤사이 신씨를 태우고 다른 병원을 찾았지만 찾는 병원마다 모두 환자 인수를 거부했다. 결국 신씨는 오전 5시경 가까스로 처음 찾았던 행려자 지정 병원에 입원했지만 당일 낮 12시경 숨지고 말았다.

당시 신씨를 이송했던 소방서 관계자는 “구급대원은 신씨의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노숙자 쉼터부터 병원까지 몇 군데 다녔지만 거부됐다”며 “여기저기 다니다가 5시간 동안 방치된 셈”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의사 선생님께서 환자가 아니라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진료를 거부한 거니까 뭐라 할 수가 없다”라고 덧붙였다.
 

여론은 신씨가 만취 상태였지만 처음 도착한 병원에서 적절한 조치를 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진료를 거부한 병원들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면 신씨의 진료를 거부한 의사는 책임이 있을까. 한 변호사는 사실관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아 위법 여부를 명확히 가리기는 어렵다고 전제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특히 원무과 직원 등 ‘의료기관 종사자’에 의한 진료 거부도 의료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판단해 의료계의 반발이 예상된다. 복지부는 최근 병원들에 ‘진료거부 금지’에 대한 협조요청 공문을 발송했다.

복지부는 공문에서 “현행 의료법 제15조 제1항은 의료인은 진료나 조산 요청을 받으면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특히 의료인은 의료기관 종사자의 의료기관 내 업무수행을 지휘·감독해야 할 의무가 있어 의료기관 종사자가 진료를 거부했더라도 그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분명히 했다.

복지부는 또 “최근 일부 의료기관에서 의료급여 수급권자인 환자 등에게 입원 시 보호자와 보증인을 요구하고, 보호자나 보증인이 없는 경우 입원을 거부하는 사례가 보건복지부에 접수되고 있다”면서 “환자의 진료권 보장을 위해 엄격히 시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한국 환자단체연합은 지난 5일, 성명을 내고 정부와 국회는 일부 병원의 보호자 없는 의료급여 환자의 입원 거부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보건복지부는 관할 보건소를 통해 전국의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대상으로 보호자 또는 입원 보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입원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실태조사 후 적극적인 행정지도를 해야 한다”며 “이번에 문제가 된 해당 대학병원에 대해서도 엄중한 행정처분을 해 일벌백계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처벌 대상 맞다”

아울러 입원 거부의 주체를 단순히 ‘의료인’만으로 규정하고 있는 의료법 제15조를 개정해 원무과 직원 등의 ‘의료기관 종사자’도 포함하고, 국민건강보험법시행령 제22조 2항 및 의료급여법 제11조의 4를 개정해 환자에게 비용 부담 청구가 금지되는 유형으로 입원보증금 이외에 입원보증인도 추가할 것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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