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위조수표 사건 전말

2016.07.12 08:26:03 호수 0호

“박연차 비자금 세탁 좀 합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500억 위조수표'의 첫 여정은 울산에서부터 시작됐다. 울산에 있는 한 농협에서 도난당한 자기앞수표 일반권(금액이 기재되지 않은 수표)이 거액의 위조수표로 둔갑해 서울 강남 한복판에 등장했다. 꽤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이 수표의 존재가 최근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서울 강남에서 500억원대 위조수표를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려던 50대 후반의 남성이 경찰에 구속됐다. 검거된 남성은 자신이 가진 수표가 정치권 비자금의 일부라고 말하면서, 이를 담보로 5억원 상당을 대출받으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은 경찰 조사에서 수표의 출처에 대해 모호한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2005년 공기총 든
2인조 강도에 털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남에 있는 대부업체 직원 A씨는 500억원대 수표가 찍힌 사진 한 장을 문자로 전송받았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사업상 알고 지내던 J(59)씨. A씨에 의하면 J씨는 사진 속 수표를 담보로 6000만원을 대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J씨의 요구에 의심이 생긴 A씨는 은행에 수표 번호 조회를 요청했다. 그 결과 수표가 위조된 것 같다는 은행의 답변이 돌아왔다.

얘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사건은 진행되지 않았겠지만, A씨는 이후 다른 피해자가 생기면 안된다는 생각에 기지를 발휘했다. J씨에게 대출을 해줄 것처럼 말하면서 일단 사무실로 오라고 답신을 한 것이다. J씨는 A씨의 부름에 의심없이 사무실을 찾아갔다.

A씨는 “(J씨가) 양복을 잘 차려입고 있었다”면서 “신분증 4개, 휴대전화를 4대나 갖고 있어 놀랐다”고 당시 J씨의 행색을 묘사했다. J씨는 A씨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것처럼 보이자 대출 금액을 5억원으로 높이기까지 했다.


J씨는 은행에 가서 수표를 돈으로 바꾸지 않고 왜 담보를 걸고 대출을 받느냐는 A씨의 질문에 “사실 이 수표는 박연차 비자금 중 일부다. 통용되지 않는 비자금이라서 은행에서 못 바꾼다”고 답했다고 한다.

J씨는 A씨가 의심하는 기색을 보이자 작은 가스라이터만한 전기 스틱을 꺼내 수표 용지를 긁으면서 이 방식이 수표가 진짜임을 확인하는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이 서울중앙지검에 근무한다는 둥, 필요하면 수표를 발행한 은행의 지점장을 2시간 안에 불러오겠다는 둥의 말을 늘어놨다.

울산 농협서 도난당한 일반수표
2014년 이어 두 번째 수면 위로

그 사이 A씨는 경찰에 신고했고, J씨는 사무실로 들이닥친 서울 강남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에 현행범으로 검거됐다. J씨는 검거되는 과정에서 30여분간 소리를 지르는 등 격렬하게 저항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J씨는 당시 보호관찰법 위반으로 부과된 벌금을 내지 않아 수배 중에 있었으며, 사기 등 전과가 20범에 이르는 화려한 범죄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찰은 J씨가 가지고 있던 수표의 출처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그 결과 J씨가 가지고 있던 수표는 2005년 울산 두북농협 봉계지점에서 도난당한 자기앞수표 일반권 가운데 1매인 것으로 드러났다.
 

울산 두북농협 봉계지점은 2005년 12월20일 공기총을 들고 침입한 2인조 강도에게 현금과 수표 등 7000만원 상당을 빼앗긴 적이 있다.

당시 사건은 은행에 직접 침입한 2명 외에도 이들을 돕거나 범인들이 입금하기로 한 돈을 찾기 위해 다른 은행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총 8명이 범죄에 연루돼 있어 충격을 줬다. 그 중 7명은 같은해 12월 경찰에 검거됐고, 한 사람은 중국으로 달아났지만 다음 해인 2006년 경북 경주에서 잡혔다.

이 과정에서 자기앞수표 일반권도 없어졌는데, 그 중 1매가 J씨의 범행과 연관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번 사건의 경우는 컬러복사기 등을 이용해 수표 자체를 위조한 게 아니라, 용지 자체는 진짜이고 그 위에 금액만 위조해 기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J씨는 위조된 수표를 최 사장이라는 사람에게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J씨에 따르면 최 사장은 위조수표를 J씨에게 건네면서 “이걸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5억원을 빌려오라”고 말했다. J씨는 검거되기 전까지 수표가 가짜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J씨에게 수표를 건넸다는 최 사장에 대해 캐묻자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라고 말해 수사진을 당혹케 했다.


강남경찰서 유명균 지능범죄 수사과 팀장은 “500억원대 수표 위조 사건은 경찰 생활 동안 본 것 중 가장 큰 액수”라고 했다. 현재 J씨는 사기미수, 위조 유가증권 행사 등의 혐의로 구속돼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울산 두북농협 은행 강도 사건에서 도난당한 자기앞수표가 세상에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서울 동작경찰서는 1000억원 상당의 수표를 위조해 정권 비자금이라고 속여 유통시킨 남성을 검거했던 적이 있다.

대부업체서 돈 빌리려다 덜미
“최 사장이 줬다” 그의 정체는?

당시 60대 후반이었던 류모씨는 정권 비자금으로 발행한 수표가 있는데 이것을 대기업에서 환전하면 15%의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대형식당 업주인 장모씨를 속여 사전작업비 명목으로 15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후 장씨가 돈을 갚을 것을 요구하자 위조한 수표를 건넨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동작경찰서가 언론사에 제공한 사진을 보면 류씨가 범행에 사용했던 수표에는 ‘두북농협 봉계지점’이라는 지점명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동작경찰서에 따르면 검거된 류씨는 2013년 서울 광진구에서 구모(사망)씨로부터 울산 농협이 발행한 백지 자기앞수표 20매를 1000만원에 구입했다고 한다. 이 중 2매를 위조해 범행에 사용했으니 18매가 남은 셈인데, 경찰은 이를 수거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J씨가 이번 사건에서 사용한 수표는 당시 수거하지 못한 18매 중 1매일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류씨와 J씨가 돈의 출처에 대해 말한 부분도 눈여겨볼만 하다. 류씨는 장씨에게 수표를 넘기는 과정에서 출처를 ‘DJ정권 정치자금으로 발행한 것’이라고 했다 한다. J씨가 범행에 사용하려던 위조수표를 박연차 비자금의 일부라고 말한 것처럼 두 사람 모두 위조된 수표를 유통시키고, 유통시키려는 과정에서 정치권과 관련된 비자금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정치자금 용도”
진짜 누가 있나?

류씨 사건 당시 경찰 관계자는 정권 비자금 등을 운운하며 고액의 약속 어음이나 수표를 담보로 제공할 경우 해당 은행에 위조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강남경찰서 유 팀장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17매의 자기앞수표에 대해 “누군가 또 다시 수표를 이용하기 전까지는 그것들을 회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영화 <기술자들> 실사 2013년 100억 수표 위조사건 전말

31명이 한장에 매달렸다

위조수표를 이용한 사기 범죄는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다. 수표를 돈으로 바꿀 때는 은행에서 번호를 확인하고 잔고가 있을 때만 현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은행은 위조수표 범죄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많지 않다. 위조수표로 인해 피해를 본다면 개인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2013년 6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100억원 수표 위조사건’은 가담자만 31명에 이르는 등 그 규모뿐만 아니라 치밀한 계획과 대담성 때문에 희대의 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치밀한 계획에 대담무쌍
희대의 사건으로 유명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13년 6월12일 경기도 수원 정자동의 한 은행에 100억원대 자기앞수표를 든 남성이 찾아왔다. 남성이 맡긴 돈은 두 개의 법인 계좌로 나뉘어 이체됐는데, 꼭 사흘 만에 명동 주변 은행에서 3억원은 현금으로, 97억원은 외화로 인출됐다. 문제는 이 수표가 정교하게 위조된 가짜였다는 점이다.

범행의 총책이었던 나모씨는 알고 지내던 김모씨 등과 함께 한장의 위조수표로 100억원을 만든다는 계획을 세우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사채업자, 은행 현직 간부 등 다양한 사람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경찰에 의해 꼬리가 잡히면서 이들의 사기 행각도 막을 내렸다. 나씨는 검거 당시에도 1000억원대 추가 범행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세간을 놀라게 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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