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후원금 시즌 “도와주오” 후원금 청하는 메일 봇물
청목회 때문에 ‘후원금 가뭄’…“십시일반도 힘들어졌다”
청목회 입법로비가 여의도에 한파를 몰고 왔다. 검찰의 사정태풍에 이어 연말 후원금 시즌에도 적잖은 파장을 안기고 있는 것. 소득공제를 앞두고 소액 후원금들이 몰릴 시기지만 청목회 사건으로 후원금 모금이 꽁꽁 얼어붙었다. ‘후원금 쪼개기’가 문제가 되면서 십시일반 도움을 줬던 단체나 기업도 후원금 내기를 꺼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정치후원금 모금이 힘든 의원들 사이에서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청목회 입법로비를 계기로 정치 후원금에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정치인들이 한 해 얼마의 후원금을, 어떤 식으로 받고 쓰는지 궁금해 하고 있는 것. 하지만 정치후원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 반해 정치후원금을 내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무슨 사정일까.
정치인이 받을 수 있는 정치자금은 후원금, 기탁금, 보조금과 정당의 지원금 등이다. 이중 친족의 기부금과 개인자산을 제외하면 국고보조금과 기탁금 등 대부분의 정치자금은 선거관리위원회와 정당을 거쳐 의원에게 지원금 형식으로 전해진다.
지지자들이 내는 후원금은 후원회 명의의 통장을 통해 의원에게 전해진다. 즉, 후원회가 의원들이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3억까지 모을 수 있는데…
한 해 받을 수 있는 후원금의 법정모금한도액은 1억5000만원이다. 다만 선거가 있는 해는 평년의 2배인 3억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해당 금액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후원금을 모을 수 없으며, 회계년도가 새롭게 시작되는 다음해 1월1일 이후 다시 모금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개인이 국회의원 한 명에게 낼 수 있는 정치 후원금은 연간 500만원까지다. 여러 의원에게 후원금을 내는 경우도 연간 2000만원을 초과할 수 없다. 기업이나 단체는 후원이 불가능하다. 지난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이른바 ‘오세훈법’이라고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제공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대신 개인이 내는 10만원 이하의 후원금에 대해서는 세액공제 혜택을 줘 ‘깨끗한 소액 다수의 정치자금’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다.
법이 바뀐 후 연말은 정치권에서 흔히 ‘소액 후원금 모금 시즌’으로 불리게 됐다. 정치후원금을 내고 소득공제까지 노리는 직장인들의 후원금이 집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의원들도 이메일이나 문자 등으로 후원금 모금에 박차를 가하는 바람에 연말 여의도 주변에서는 시시때때로 ‘정치 후원금’을 거론하는 메시지로 골머리를 앓는 이들이 생길 정도다.
하지만 올해는 ‘마른 땅에 단비 같은’ 연말 후원금을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으로 후원금 모금이 얼어붙은 것.
박근혜 전 대표나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 ‘이름’있는 정치인들 중에는 이미 법정모금한도액을 채우고 후원금 모금을 마감한 이들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의원들은 ‘연말 후원금 모금 시즌’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빈 말이 아니다.
때문에 공개석상에서까지 ‘후원금 모금이 힘들어졌다’는 토로를 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이종걸 민주당 의원은 지난 8일 국회 기획재정위에서 “10만원 소액 후원은 구차스러워 말을 못하겠지만 올해 후원금 한도가 3억원인데 1억원도 모금이 안돼 비상이 걸렸다”고 하소연했다.
강창일 의원도 의원총회에서 “이쯤 되면 아는 사람에게 후원해 달라고 부탁하는 자체가 범죄라며 어떻게 약자편에 서서 예산과 법안 심의를 하겠냐”고 울분을 토했다.
청목회 입법로비에서 ‘후원금 쪼개기’가 문제가 되면서 ‘십시일반’으로 돕던 단체나 기업의 후원도 뚝 끊겼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정치 후원금에도 ‘빈인빅 부익부’가 존재한다”며 “의원들 사이에서도 정치적 영향력과 상임위 등에 따라 후원금이 넘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바닥을 드러내는 곳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올해는 선거가 있어 3억원까지 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데 ‘청목회 효과’로 인해 연말 후원금 시즌까지 물 건너가게 생겼다”면서 “여기저기서 정치자금이 부족하다는 앓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국회 분위기를 전했다.
소액 후원금에 많은 부분을 기댔던 소수정당 소속 의원들은 타격이 더 크다. 민주노동당은 지난해 소액후원금의 힘으로 권영길·홍희덕·강기갑·이정희 의원 등 당 소속 의원 4명이 후원금 모금액 상위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런 만큼 올해는 후원금 모집의 직격탄을 맞게 됐다. 민노당 한 관계자는 “민노당의 경우 ‘소액’ 후원금을 ‘다수’ 후원자에게 받아 남부럽지 않을 만큼 후원금을 모았다”며 “정치후원금 99%가 10만원 이하 후원금일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예년보다 후원금이 많이 줄었다”며 “‘후원금 보릿고개’를 겪고 있는 만큼 허리를 바짝 졸라맬 각오를 하고 있는 의원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내 돈쓰고 말란다”
상황이 이러니 아예 정치후원금을 포기하고 ‘개인자산’으로 시선을 돌리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친족의 기부금과 개인자산은 정치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한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용내역을 선관위에 신고해야 하지만 그 내용이 공개되지도 않는다. ‘능력’만 있으면 정치자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이미 재산이 많다고 소문난 의원들은 후원금 모금이 적은 모습을 보여 왔다. 선관위가 발표한 지난해 후원금 모금내역에 따르면 국회의원 중 재산 순위 1위인 정몽준 전 대표는 지난해 9618만원의 후원금을 받았고, 2위인 김세연 한나라당 의원은 9343만원의 후원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