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 서혜림·현실 박근혜, 다른 듯 닮아있어
비극적 운명, 카리스마, 촌철살인 어법 ‘똑같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그려낸 드라마가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을 주고 있다.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 정치와 맞닿아 있다는 이유에서다. 드라마가 ‘현실’과 무관하지 않게 전개됨에 따라 ‘여성 대통령’을 밀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차기 대권을 노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와의 관련성이 주목받고 있다.
“닮았다. 닮지 않았다.”
드라마 <대물>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는 서혜림(고현정 분)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가 아리송하다.
아나운서 출신인 서혜림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로, ‘퍼스트레이디’의 삶을 살았던 박 전 대표는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서혜림은 종군기자였던 남편을 잃었고, 박 전 대표는 부모님을 비명에 보낸 비극적인 과거를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치를 하게 된 계기도 미묘하게 닮아 있다. 서혜림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취재를 떠났다 피랍된 남편을 잃고 “우린 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하냐. 내 아이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이 나라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며 울분을 토해낸다. 그리고 이는 그가 ‘이 나라의 국민들을 살리기 위해 대통령이 되는’ 첫 시작점이다.
찾는 족족 ‘닮은꼴’
박 전 대표는 육영수 여사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다 육영재단 이사장, 대구 영남대 이사장이 됐다. 하지만 IMF 이후 기업들의 줄도산과 가정 붕괴를 보면서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쓰러질 수 있느냐”고 생각한 것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하게 됐다.
결국 서혜림과 박 전 대표 모두 ‘비극적인 과거’를 정치 활동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둘 사이가 묘하게 겹쳐지는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이들이 정계에 들어선 후 보이는 말 한마디, 움직임 하나하나는 ‘서혜림’을 박 전 대표와 연결시킨다. 부드러운 듯 강한 카리스마를 보인다는 점이나 촌철살인의 어법이 그것이다.
서혜림이 선거 중 납치를 당해 린치를 당한 후 병상에서 깨어나자마자 “유세장은요?”라고 물은 것은 박 전 대표가 지난 2006년 지방선거 지원 유세 중 테러를 당하고 “대전은요?”라고 물었던 일을 연상시킨다.
서혜림은 몸이 아픈 상태에서도 유세를 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워, 결국 마지막 유세에서 감동적인 연설로 극적인 역전을 이뤘다. 박 전 대표의 ‘한마디’도 선거의 방향을 트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당시 대전은 최고의 접전지 중 하나였고 박 전 대표의 발언은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게 된 결정적 요인이었다.
지난달 27일 방송된 국가재정법 개정안 강행 처리 과정에서도 서혜림의 태도는 박 전 대표를 연상시켰다.
<대물>에서 여당은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키로 결정했다. 이어 본회의장 점거, 야당 의원들과의 몸싸움 끝에 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서혜림은 소신껏 당론과 다른 반대표를 던졌다. 그리고 이는 지난해 7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와 당시 박 전 대표가 반대 의사를 표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같은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서혜림과 박 전 대표의 행보는 ‘드라마의 현실성’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 서혜림이라는 캐릭터에 현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여러 여성 정치인들의 면모를 한데 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물>은 단순히 드라마에 현실성을 부여한다는 것을 넘어, 실제 일어났던 정치적 사건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이상의 해석’이 나오고 있다
<대물>은 첫 회에서 잠수함 좌초, 대통령 탄핵, 아프간 피랍을 그려냈다. 이는 각각 천안함 사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고(故) 김선일 씨 사건 등 아프간 피랍 사건을 연상시킨다는 것. 이 때문에 <대물>이 ‘첫 여성 대통령’으로 박 전 대표를 띄우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드라마 제작진과 박 전 대표 측 모두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손을 내젓고 있다. 박 전 대표의 대변인 격인 이정현 의원은 “정치 드라마는 정치적 상상력이 풍부할수록 좋은 것”이라며 “박 전 대표 말고 나경원 의원이나 박영선 의원을 대입해도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 ‘아나운서 출신 정치인’이라는 점으로 봤을 때는 한나라당 전여옥, 민주당 박영선,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여성 대통령’이라는 핵심 키워드에 다가가면 여전히 ‘서혜림’은 박 전 대표와 가까워진다.
박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대선후보 자리를 두고 승부를 겨뤘다. 유시민 참여정책연구원장의 말에 따르면 “이기고도 이상한 규칙 때문에 진 것”이었다. 지난 대선 이후로는 꾸준히 차기 대선주자 중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대통령’ 자리에 오른 서혜림의 영향력도 커져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는 서혜림과 닮은꼴로 꼽히는 이들에게도 파급을 미칠 수 있는 요소다.
<대물>과 함께 지지율 급등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민심’이다. 박 전 대표는 이 대통령과의 8·21 회동 후 지지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는 계파를 넘나드는 광폭행보도 한 몫을 했다. 이로 인해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지난달 초 5개월만에 30%대를 회복했다.
하지만 이후 특별한 정치적 이슈가 없었음에도 꾸준히 30%대 지지율을 유지한 가운데 소폭 상승하고 있는 데는 <대물>의 힘이 있었다는 게 정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때문에 정치권은 <대물>이 앞으로 어떤 ‘여성 대통령’의 모습을 그려낼지, 그것이 박 전 대표와 얼마나 닮아있을지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