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성적표 받아든 보좌진들 “남느냐 떠나느냐”
입법 보좌·취재기자 뛰어도 남는 건 비정규직 계약서
해마다 이맘때 여의도 정가는 술렁인다. 국정감사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국정감사 성적표를 받아 든 국회의원 보좌진들 사이에 희비가 교차한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 사이에도 만감이 교차한다. 남아 있는 사람도 한솥밥을 같이 먹은 동료의 떠나는 뒷모습에 ‘동병상련’을 느낀다. 국회에서 보좌진의 삶을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겪어본 일이기 때문이다.
보좌진들은 가을의 초입에서부터 계절을 잊고 산다. 정신없이 바쁜 국정감사 준비와 국정감사가 끝남과 동시에 예산심의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산더미같이 쌓인 피감기관의 관련 서류와 씨름하다보면 과로가 겹쳐 병원신세를 지는 이들도 속출한다.
보좌진들은 의원의 소속상임위와 당직 유무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유사한 일정을 소화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나마 선거가 없는 해에는 잠시나마 ‘한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올해처럼 선거가 끼어 있으면 업무 스트레스는 하늘을 치솟는다.
보좌진 인생 2모작
K의원실에 근무하고 있는 H비서관의 올해 계획표에는 보좌진들의 한해살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2월 임시회와 각종 특강을 준비하는 것을 시작으로 3월부터 6월까지는 지방선거를 지원해야 한다. 그 와중에 4월 즈음엔 의정보고서를 작성·배포해야 하고 6월엔 대정부질문이 버티고 있다.
7월에는 전당대회, 8월에는 교육관련 의정보고회, 9월에는 예결위 결산, 10월에는 국정감사, 11월에는 대정부질문, 의정보고회, 예결위 예산 등 숨 쉴 틈 없이 일정이 몰아친다.
그중에서도 국감은 보좌진들에게는 ‘변신’의 시기다. 국감시즌이 다가옴과 동시에 불어 닥치는 취재 열풍에 몸을 맡겨 변신을 꾀해야 하는 것. 의원사무실에 앉아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하고 받는 것만이 국감준비의 전부는 아니다. 필요하다면 직접 카메라를 둘러메고 현장을 누비며 ‘특종’을 찾는 일도 예사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의 1년 농사 결실을 맺는 ‘의정활동의 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시는 분의 ‘존재감’을 가장 효과적으로 대외에 알릴 수 있는 장이기 때문이다.
해마다 국정감사를 마무리 짓는 시기에 ‘국정감사 무용론’이 떠돈다. 실질적인 정책국감은 온데 간데 자취를 감추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의식한 국회의원들의 질문공세에 피감기관들은 진땀을 뺀다. 2010년도 국정감사에서는 구렁이가 회의석상에 등장하는 등 ‘튀기 위한’ 행태도 천차만별이다. 국민들의 시름을 대변하는 속이 꽉 찬 국정감사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각종 ‘시민단체’나 ‘언론사’에서 시상하는 ‘국정감사우수위원’ 시상은 지역구 활동에 홍보물로 이용되기도 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관심 순위에 포함된다. 이러한 요인들은 정책국감을 뿌리내리는데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국회보좌진의 인사권은 전적으로 자신이 모시고 있는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다. 때문에 언제든지 의원에 뜻에 따라 ‘백수’가 될 수 있는 것도 보좌진이다. 친인척 보좌관의 채용이 가능한 것은 보좌진의 채용 및 해고가 국회의원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보좌진을 내정하고 국회 사무총장에게 임용요청서를 제출하면 전과 경력 등 공무원으로서 결정적인 흠결이 없는 경우 채용을 허가해주고 있다.
국회의원실 중 ‘블랙홀’로 알려진 곳도 비선을 통해 소문으로 돌고 있다. 주기적으로 보좌진을 교체하는 의원들도 존재하기 때문에 보좌진들 사이에서 이런 의원실과 손잡기를 매우 꺼려하기 때문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2010년 6월15일)자료에 따르면 지난 18대 국회가 출범하고 나서 총 3461명의 보좌직원들이 재직하거나 교체됐다. 현재 299명의 국회의원들의 보좌직 재직현황을 보면 1907명이다. 그리고 2년 동안 1554명의 보좌직원들이 면직되었다. 모 의원은 보좌직원을 22명이나 교체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보좌직원은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자리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정을 잘 살피고,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보좌하는 것이 보좌직원들의 역할이다. 임용된 지 한 달도 안 돼 교체되는 보좌직원들이 그런 역할에 대한 사명감을 가질 수 있는지, 또 보좌직원을 수시로 바꾸는 의원들의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 의심된다.
국정감사 성적표가 나오고 예산심의가 마무리되면 ‘보따리’를 들고 국회를 떠나는 보좌진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들은 다음해 2월 부활을 꿈꾸며 동료들과 아쉬움을 나눈다.
요즘 국회는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채용해 논란을 빚고 있다.
한편, 미국의 경우도 친인척 보좌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미 의회는 의원들의 급료지불명부를 공개해 친인척 여부를 가려내는가 하면, 법으로 아예 친인척 보좌진 임용을 금지시켜왔다. 1932년 미 의회는 하원 사무국에서 급료지불 명부를 일반에 공개하도록 했다.
보좌진은 일용직근로자?
당시 친인척을 고용해 보좌진 수당을 지불한 93명의 의원 이름이 전격 공개됐다. 우리나라도 유럽 등 다른 선진국 의회에서처럼 일정 자격을 가진 보좌진들을 상임위별로 선별해 ‘인력 풀제’로 운영하고 필요한 의원이 뽑아 쓰는 방식으로 제도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또한 보좌진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교육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국회 보좌직원들의 전문성과 자질이 확보된다면 그로인해 파생되는 이익은 ‘입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