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전통성 상실한 인사동을 가다

2010.10.26 10:26:51 호수 0호

“여기가 인사동? 명동이라고 해도 믿겠네!”


노점상과 브랜드 매장 ‘우후죽순’ 들어서 외국인 천국
전통문화 어디로… 화장품·옷 판매 늘어 ‘제2의 명동?’

서울 인사동이 전통성을 상실하고 있다. 한국 전통문화 1번지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국적 불명인 공예품이 판치는가 하면 최근에는 화장품, 옷, 신발 판매점 등 전통과 동떨어진 상점들이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한글 간판으로 그나마 명맥은 유지하려는 듯 보이지만 외래어를 한글로 바꿨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 중 하나지만 전통성이 없는 인사동은 쇼핑 관광명소인 명동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 19일 인사동을 직접 찾았다.



서울에 올라온 지 4년차인 기자는 딱 한 번 인사동에 가봤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4년동안 서울에 살면서 인사동을 떠올린 적이 그리 많지 않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인사동에 대한 첫 인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좁은 인도와 좁은 인도를 더 좁게 만드는 노점상과 국적이 다른 많은 사람들…. 북적거리는 곳을 좋아하는 기자지만 과거와 현재, 한국과 외국의 공존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3년만에 인사동을 다시 찾았다.

잔잔했던 과거 냄새

종로3가에서 안국역 방면으로 인사동을 가로질렀다. 인형, 분식, 악세서리 등 각종 노점상은 여전히 인사동을 차지하고 있었다. 각종 브랜드 업소로 이어진 길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쉴 새 없이 보인다.

화장품 브랜드 매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영문 상호를 한글로 바꾼 간판 말고는 명동과 다르지 않다. 인사동의 명물로 자리잡은 꿀호떡과 꿀타래 가게에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명쾌한 입담을 자랑하는 꿀타래 장수에 외국인들은 속수무책이다.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쌈지길을 지나면 남대문을 옮겨 놓은 듯한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있다. 한류스타들의 사진을 파는 가게부터 각종 기념품을 파는 가게 앞에는 한국을 담기 위해 분주한 외국인들이 존재한다. 번쩍이는 조명의 신축 업소 사이사이 인사동 터줏대감이었을 화랑과 표구점 등은 기가 죽은 모습이 역력하다.

인사동에서 20년간 하회탈, 장승, 현판 등을 판매하고 있는 김모씨는 “인사동은 전통 예술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거리"라며 “하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시장화되더니 결국 여성 화장품 가게가 대거 들어왔다"고 아쉬워했다.

실제 인사동에는 언제 저렇게 많이 생겨났나 싶을 만큼 많은 브랜드 화장품 매장이 존재한다. ‘아리따움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더 페이스샵 ‘네이처 리퍼블릭 ‘미샤 ‘토니모리 등 다양한 종류의 화장품 매장이 인사동 주요 거리를 따라 분포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이들 매장들이 기존 브랜드숍이 갖고 있는 이미지는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간판만 한글 상호로 바꿔 달았다는 사실이다.

과거 스타벅스가 인사동에 들어올 당시, 전통문화의 상징인 인사동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었고, 이에 코리아 스타벅스 측은 한번도 하지 않았던 한글간판을 인사동에 최초로 도입해 눈길을 끈 적이 있다. 이 때문인지 인사동에는 화장품을 비롯해 유독 한글 간판이 많다.
문제는 또 있다. 이들 화장품 매장들이 상호명을 한글로 바꾸기는 했지만 대부분 깔끔하고 현대적인 디자인을 채용하고 있어, 전통문화의 거리인 인사동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인사동에 한글 간판만 달고 들어와 그것만으로 한국적인 문화 감수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면서 “고유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물론 한글의 아름다움도 살리지 못한 한글간판은 단지 한글 남용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인사동에서 영어로 된 간판을 쓰지 않고 한글을 사용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되지만 인사동과 어울리지 않는 가게들이 생겨나는 점은 안타까운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통 상점의 수익성이 낮은 것이 인사동 전통거리가 쇠락하는 이유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지난해 조사 결과 인사동에는 1500개 상점이 영업 중이지만 자가는 이 중 5%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인사동 땅값이 오르면서 임대료도 같이 올라 인사동 전통을 상징하는 도자기, 고미술, 공예품 등 가게들은 월세 내기도 빠듯한 실정이다.

인사동에서 전통물품을 파는 상인들은 지난 2002년을 떠올리면 지금은 죽을 맛이라고 말했다. 2002년 문화지구로 선정되고 5년 정도까지는 권장업종을 운영하는 건물주들에게 세금 감면 혜택이 주어졌기 때문에 건물주들도 양심상 전통물품 판매상인에게 임대료를 많이 못 올려 받아도 쫓아내지 못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지 5년 후인 2007년 고미술점, 표구점 등이 대거 사라졌다. 고미술점은 2002년 72개에서 2007년 41개로 급감했고 표구점과 필방 역시 46개, 21개로 각각 19%, 50% 감소했다.
반면 외국인 관광객들을 상대로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공예품 점은 96개에서 153개로 증가했다. 문제는 이 공예품들이 국산 제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모양은 한국 모양새지만 뒤집어 보면 ‘메이드 인 차이나가 대부분이다.

높은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는 상점들이 임대료 감당을 위해 중국 물건이라도 가져다 팔고 있는 것.
그렇다면 2002년 4월 지정된 인사동 ‘문화지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 당시 인사동은 ‘인사동전통문화보존회를 중심으로 인사동의 장소성과 문화환경을 유지보존하기 위한 문화특구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 같은 주장에 따라 우리나라 최초의 ‘문화지구로 지정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경우 ‘문화지구에 대한 합의된 정의나 모델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도시 내 문화 인프라, 문화활동 및 프로그램, 문화경관 등이 밀집된 특별 지역을 선정해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곳이라는 설명뿐이다.

전통은 전부 어디로?

문화적 정체성을 견고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은 분명하지만 문화적 정체성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노점상과 화장품 매장이 늘고 있는 것을 보면 실효성에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세세한 가이드라인을 작성해서라도 인사동 전통문화거리를 어떻게 가꿔 나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상인, 행정인, 인사동보존회가 앞으로 인사동에 대해 함께 노력해 나가야 한다. 어느 한 집단만의 노력으로는 인사동의 미래상을 찾을 수 없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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