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천우의 시사펀치> 한국사 최고의 코미디

2015.11.18 11:02:18 호수 0호

그동안 <일요시사>를 통해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역사 기록들이 여러 부분에서 잘못되었고 또한 역사를 바라보는 어처구니없는 시각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 그 모두를 압도하는, 정말 웃기지도 않은 일이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 왕의 직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해서다.

연산군은 엄연히 임금으로서 11년 간 보위에 앉았었고 광해군은 무려 15년 간 임금이었다. 두 사람은 반정에 의해, 연산 임금은 중종반정으로 광해 임금은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어 군으로 강등되었고 지금도 대군(大君)도 아닌 군(君)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왕의 자리에 올라보지도 못한 인물들이 왕의 시호를 받은 사례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성종의 아버지인 덕종을 필두로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 정조의 양부인 진종, 정조의 친아버지인 사도세자 즉 장조 그리고 헌종의 아버지인 익종이 그들이다.

한편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임금 자리에는 앉아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왕의 시호를 보유하고 있건만 보위에 앉아 일순간을 풍미했던 두 사람을 지금도 군으로 기록하는 일은 크나큰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지 역사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먼저 고려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의 경우다. 공양왕은 이성계에 의해 정략적으로 보위에 올랐으나 후일 조선이 건국되자 간성으로 추방되면서 공양군으로 강등된다. 이어 삼척으로 옮겨졌다가 사사되는데 역사는 그를 엄연히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조선 조 단종의 경우도 예로 들 수 있다.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영월로 귀양 가고 급기야 서인으로 전락하며 사사되지만, 후일 역사는 그를 자연스럽게 단종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굳이 연산군과 광해군은 군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그 사유에 대해 사람들은 폭군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고 특히 인륜에 어긋나는 행위, 연산군은 두 숙의 그리고 광해군은 이복동생인 영창대군을 죽였고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를 유폐시키고 죽이려했기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단순히 그런 사유 때문에 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한다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다. 비교하여 살피면 태종 이방원 그리고 수양대군 세조도 그들 못지않았기 때문이다.

태종은 2차에 걸친 왕자의 난을 거치면서 정도전, 남은 등을 위시하여 이복동생들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이후 원경왕후와의 불화가 빌미가 되어 네 명의 처남을, 또한 단순히 경계 차원에서 상왕으로 물러난 시점에도 자신의 사돈 심온(소헌왕후의 아버지) 등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수양대군 역시 계유정난과 단종 복위운동 과정에서 태종 못지않게 많은 사람을 죽였다. 김종서, 황보인, 성삼문, 박팽년 등은 물론이고 아버지 세종의 부인(혜빈 양씨), 안평과 금성대군 등 동생들 그리고 단종에 이르기 까지. 이뿐만 아니다. 영조의 경우 심지어 자신의 아들(사도세자)을 뒤주에 가두어 굶겨죽이기까지 했다.

실상이 이러한 데 연산군과 광해군의 반인륜적 행위만을 빌미로 삼는다면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정비의 소생이 아니었기에 군으로 강등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의 성군 중 한 사람으로 지칭되는 영조를 생각하면 그 역시 편파적이다. 영조의 어머니는 숙빈 최 씨로 숙종의 다섯 번째 부인이며 미천한 집안 출신이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에서 유사한 모든 기록을 살펴보았으나 연산군과 광해군이 아직도 군에서 벗어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코미디라는 이야기로 조속한 시일 내에 이 두 임금에 대해 증시(贈諡)할 일이다.




※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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