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진화하는 ‘빈집털이범’ 실태

2010.05.04 09:28:47 호수 0호

‘첨단기기’ 중무장한 대낮의 ‘양상군자’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빈집을 노리는 빈집털이범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첨단 장비로 중무장한 범인들은 벌건 대낮에도 아무렇지 않게 빈집에 들어가 싹쓸이를 한다. 이들에게는 각종 보안용품도 속수무책. CCTV정도는 가뿐히 피할 수 있는 기술력(?)을 자랑하는 탓이다. 이렇다보니 낮에는 집이 빌 수밖에 없는 맞벌이부부 등은 늘 불안감을 가지고 외출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진화하는 빈집털이범들의 수법을 살펴보자.

대낮 빈집 찾아다니며 억대 금품 챙기는 빈집털이범들
무전기, 보석감별기, 내시경 카메라 등 첨단장비 필수


서울의 한 대학가 원룸에서 살고 있는 이모(24·여)씨는 최근 황당한 일을 겪었다. 평일 오후 이씨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화근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을 퀵서비스 배달부라고 말한 뒤 “집을 잘 못 찾겠으니 집 근처 동사무소 앞으로 와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잠깐 비운 집 ‘초토화’



퀵서비스로 물건을 받을 일도 없는데다 배달일이 직업인 사람이 주소를 못 찾는 것이 미심쩍었던 이씨. 하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집 밖으로 나가 동사무소로 향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퀵서비스 배달부로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오토바이 한 대 조차 눈에 띄지 않았던 것.

이씨는 아까 걸려 온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봤다. 하지만 몇 번을 걸어 봐도 전화는 불통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장난전화에 걸려들었다고 생각했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돌아온 집 안은 나갈 때와 달랐다. 누군가가 들어와 집을 뒤진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었던 것. 옷장과 서랍장이 열려있었고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그제야 도둑이 들었단 걸 알아챈 이씨는 훔쳐간 물건이 없나 집안을 살폈다. 그 결과 노트북과 금목걸이, 식탁위에 있던 현금 몇 만원이 사라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갑작스럽게 절도를 당한 뒤라 어안이 벙벙했던 이씨.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본 이씨는 조금 전 수화기 속 남자가 범인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씨는 그 길로 경찰서로 가 피해 사실을 신고했지만 범인을 잡을 길은 묘연했다. 범인이 남긴 증거물도 없는데다 이씨의 원룸에는 CCTV도 없어 용의자를 알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탈한 마음을 안고 다시 집으로 돌아 온 이씨. 그때 이씨의 눈에 띈 것은 우편함 속에 들어 있는 우편물이었다. 범인은 우편물 속에서 이씨의 이름과 전화번호, 주소를 알아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이씨는 “요즘 인근 원룸에서 도둑이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우리 집에 빈집털이범이 들이닥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며 “택배기사나 배달부 등으로 사칭해 집을 비우게 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처럼 대낮 빈집을 활보하며 싹쓸이를 하는 ‘양상군자’들로 인해 집집마다 비상이 걸렸다. 특히 최근 활동(?)하는 빈집털이범은 첨단기계로 중무장하고 각종 기발한 수법을 총동원하는 경우가 많아 속수무책 당하는 피해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전기까지 동원해 3인 1조로 빈집을 턴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마포경찰서는 지난달 27일 대낮에 주택가 빈집만 골라 침입해 금품을 훔친 혐의(특가법상 상습절도)로 이모(36)씨 등 2명을 구속하고, 일당 한모(45)씨 등 2명의 행방을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 일당은 지난달 16일 오후 1시40분쯤 마포구 망원동 모 빌라 2층 남모(36)씨 집에 들어가 카메라 등 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치는 등 최근 한 달 간 수도권 일대 주택가에서 총 25차례에 걸쳐 4400여 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이들은 3인조로 활동하며 이씨가 잠긴 현관문을 열고 집안을 뒤지는 사이 나머지 2명은 건물 밖과 안에서 망을 보며 무전기를 이용해 바깥 상황을 알리는 등 침입조와 망조로 철저히 역할을 분담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범행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보조 자물쇠가 달리지 않은 집을 범행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하면 귀금속을 훔치기 위해 보석감별기를 들고 다니며 억대의 금품을 훔친 일당도 붙잡혔다. 청주 흥덕경찰서에 따르면 고향 선후배 사이인 서모(51)씨 등 4명은 작년 12월18일 오후 3시쯤 청주시 한 빌라에 들어가 현금과 귀금속 등 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이들은 비슷한 수법으로 작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전국 도시를 돌며 105차례에 걸쳐 4억5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절도 전과 10범 이상인 이들은 현장에서 귀금속의 진품 여부를 알아내 가짜 귀금속을 훔치는 일이 없도록 감별기를 들고 다니며 대낮에 비어 있는 빌라와 아파트 단지를 노려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만능키를 이용해 빈집의 문을 손쉽게 열어 절도행각을 벌인 범인도 잡혔다. 흥덕경찰서에 따르면 전직 열쇠 기술자인 고모(32)씨는 직접 만능키를 제작한 뒤 가지고 다니며 고급 빌라촌을 돌며 도둑질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고씨는 청주와 대전, 아산지역을 돌며 30여 차례에 걸쳐 2800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드러났다.

열쇠 하나면 ‘싹쓸이’

지난해 8월에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막대 끝에 내시경 같은 초소형 카메라를 달아놓은 기구를 이용해 빈집을 턴 일당이 덜미를 잡혔다. 김모(37)씨 등 2명은 경비가 허술한 오래된 저층 아파트를 범행대상으로 삼았다.

아파트 출입문에 있는 렌즈를 뺀 뒤 준비해 간 기구를 넣어 번호 키를 눌러 전자 잠금장치를 여는 방식으로 범행을 저질렀다. 이런 방식으로 서울 일대 아파트 37곳에 몰래 들어가 9000여 만원 어치의 금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경찰 관계자는 “최근 빈집털이범들의 행각을 보면 첨단기기의 각축장을 방불케 해 꼼짝없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늘어나 자기 집 방범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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