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수사관 A씨가 털어놓은 ‘스폰서의 세계’

2010.05.04 09:34:48 호수 0호

“스폰서에 공짜 점심이란 없다”


국민들이 뿔났다. MBC <PD 수첩> 보도로 촉발된 검사들의 향응·성접대 의혹 때문이다. 성난 네티즌들은 대검찰청과 부산지검 웹사이트에 비난성 댓글을 퍼붓고 있다. 시민단체도 스폰서 의혹에 대해 철저히 밝혀 과거처럼 유야무야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사회 곳곳에 번져있는 스폰서 문화는 잊혀질만 하면 터져 국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전직 수사관 A(48)씨를 만나 현직 당시 접했던 스폰서들의 이면에 대해 들어봤다. 

“스폰서는 곧 돈이기 때문에 잡음이 많다. 사실 스폰서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좋게 활용되면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 반면 대가를 바라고 실력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추악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지난 4월28일 오후 3시 서울역 한 찻집에서 만난 A씨의 말이다. 그는 현직에 있을 때 스폰서와 관련된 갖가지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끝은 구정물이 잔뜩 고여 있는 시궁창 같은 모습이란다. 

돈 받고 접대 받고
“무엇을 도와줄까?” 

“이번 검찰스폰서 사건의 내면도 그렇지만 스폰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청탁과 이권이다. 때문에 권력자가 로비대상이 된다. 재력가는 금품을 제공하고 법인 카드도 주고 성접대나 심지어 성상납까지 제공하면서 자신의 사업이나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다.”

A씨는 일부 권력자는 재력가로부터 금품을 받고 각종 청탁과 이권을 처리해 준다고 말했다. 또 금품이나 향응을 받고 다음날 직접 전화를 걸어 “도와줄 테니 뭐든 말해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법인 카드를 받아 챙긴 후 용돈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스폰서 관련 사건들이 표면화되면서 많이 깨끗해 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 사라졌다고 하면 오산이다. 검찰의 경우 전별금이나 떡값, 스폰서 등 고질적 관행이 이번에도 드러나지 않았나. 검찰도 돈 문제에 있어서는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스폰서는 법인카드 주고 금품제공에 향응, 여자도
재력가·실력자·대기업·변호사 등이 스폰서 주류

A씨는 현직 당시 대기업이나 변호사들 중 일부가 스폰서로 활동하는 것을 접했다고 한다. 어떤 검사는 대기업 법인 카드를 들고 룸살롱 등을 드나들면서 마음껏 향유했고, 어느 변호사는 검사들에게 잘 봐달라고 고액 상품권을 찔러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서울 강남 한 검사의 경우 단속을 미끼로 이틀에 한 번꼴로 룸살롱을 찾아와 금품과 성접대까지 받다가 감사팀 내사를 받고 있다고 귀띔했다.

스폰서를 하고 있는 업주 입장에서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지속적으로 뜯어(?) 가는 검사를 괘씸하게 여겨 동료에게 하소연했다가 내사 대상에 올라 있다고.

“사실 지금은 검찰이 돈을 받고 사건 관련 청탁을 들어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험을 든다는 생각으로 검사와 친해지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다. 게다가 일부 몰지각한 검사 중에는 혼자 잘 먹고 잘 쓰려고 스폰서를 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이 만나면 추악한 비리가 만들어진다.”

A씨는 스폰서들의 목적은 다양하고 문제가 불거질 경우 폭발력도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조계의 오랜 병폐인 ‘스폰서 문화’를 지목했다. 스폰서들은 바로 검찰의 이 같은 ‘봐주기 권리’에 기대 일종의 ‘보험’을 드는데 자신이나 지인이 수사를 받을 때를 대비해 미리 검사와 안면을 트고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

기업 법인 카드로
흥청망청 사용  

“이것은 법조인 특성상 아무나 만날 수 없기 때문에 특정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경우에서 발생한다. 예를 들어 법조인이 업자나 브로커의 청탁을 받고 사건을 담당한 판·검사 동료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속칭 ‘관선변호’ 등을 해주고 이들로부터 금품과 향응 등을 받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A씨는 자신이 겪은 사건 중 ‘관선변호’를 경험한 것은 지난 2006년 8월에 터진 법조브로커 김흥수 사건이라고 전했다.

당시 김흥수로부터 스폰서를 받았던 조모 전 서울고법 부장판사, 김모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박모 전 수원지검 부장검사, 송모 전 서울서부지검 부장검사 등이 연루됐다.


“스폰서를 자청하는 브로커들은 보통 명절과 휴가 때를 노린다. 이때 떡값이나 휴가비 명목으로 수백만원 가량을 찔러준다. 또 지속적으로 돈을 주고 골프 자리에 초대한 후 향응을 베풀다가 어느 순간 청탁을 한다. 이럴 경우 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들어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A씨는 지난 2007년 11월 말 터진 브로커 윤상림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다. 당시 검찰은 5개월의 수사 끝에 39건의 범죄 혐의를 포착하고 6차례에 걸쳐 윤씨를 기소했다. 특히 전직 검·경 고위간부와 대기업회장 1명 등이 기소됐는데 검은 스폰서의 파장을 새삼 실감했다고 전했다.

연예계에 만연한 스폰서에 대해서도 귀띔했다. A씨는 “알려진 바와 같이 스폰서 유혹은 연예계가 가장 심하다. 장자연 사건이나 아이비 폭로 사건 등에서도 나타났지 않나. 수입이 불규칙하고 씀씀이가 헤픈 연예인들이 스폰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발생해 스폰서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스폰서 찾는 청소년들
돈 몇 푼에 막장 인생

A씨는 자신이 수사했던 연예인 B양 사건을 통해 연예계 스폰서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그에 따르면 연예계 스폰서는 장타 스폰서와 단타 스폰서가 있다. 예컨대 장타 스폰서는 6개월 이상으로 최소 5억원 이상의 비용, 단타 스폰서는 3개월 정도로 3억원 안팎에서 지불된다. 톱스타는 10억원을 호가하는 반면 신인은 몇 천만원에 불과하다.

A씨는 또 장자연 사건 때 간접적으로 스폰서 사건의 단면을 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연예인과 스폰서 간 은밀한 뒷거래 현장들을 보면서 스폰서 요지경 세계에 내심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또 예전과는 스폰서를 선택하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과거 일부 연예인이 ‘품위’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뤄지던 ‘자발적’ 스폰서 관계가 외부 압력에 의한 ‘타의적’ 관계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그는 또 스폰서 관계가 뿌리 깊은 곳으로 교육계를 꼬집었다. 경험상 찬조금부터 교사 채용, 인사, 구매, 공사, 방과 후 학교, 급식, 교재, 교복, 수학여행, 졸업앨범 등 학교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스폰서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심각한 것은 스폰서 문화가 청소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특히 가출청소년들에게 스폰서 제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관련됐던 가출 여학생들이 잡혀올 때마다 분노가 치민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연예계 ‘잠자리’ 목적으로 거액 스폰서 비용 오가기도
A씨 “추악한 뇌물인 스폰서 문화는 뿌리 뽑아야”   

A씨는 가출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스폰서에 나서는 어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탄했다. 미성년자 신분으로 일자리를 얻는 것이 힘든 소녀들을 유혹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있는 어른들이다. 

“한 번은 16살 여학생을 만났는데 참담했다. 처음에는 PC방비를 제공할 테니 식사나 하자고 해서 따라 나섰더니 술을 먹이고 강제로 모텔로 데려가 2박3일간 유린한 사건이었다. 겁에 질려 동공이 풀려 있는 그 여학생을 보는데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어떤 경우 아예 정기적인 ‘스폰서’를 자청하고 나서는 남자도 있었다고 한다. 그 남자는 가출 소녀에게 한 달에 100만원을 제공하고 아예 ‘집에 들여놓고’ 매일 밤 섹스를 즐겼는데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A씨는 “검사 스폰서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때를 같이해 국가인권위에서 여성 연기자 10명중 6명이 재력가나 PD로부터 성접대 제의를 받거나 성추행을 당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며 “이 같은 의혹들이 아직 사실이라고 단정할 단계는 아니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말이 좋아 스폰서지 실상은 때가 되면 용돈 주고, 술 먹으면 술값 내주고, 골프 치면 비용 대주고, 성매매 할 때는 여자까지 붙여주는 추악한 뇌물에 불과하다”며 “이제는 대한민국에서 ‘스폰서’라는 단어는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스폰서들의 접대와 상납은 당장 뭔가 요구하는 건 아니라도 미래에 어려운 일이 생길 경우에 대비한 보험”이라고 단정하면서 “스폰서에는 공짜점심이 없는 법”이라고 못 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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