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상가 상인들 한 맺히는 사연<현장르포>

2010.01.26 09:53:51 호수 0호

“유속 빨라지니 파리만 득실… 지금은 고사직전”


지난 18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역 지하도 상가.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로 북적대야 할 시간대다. 하지만 상가에서 물건을 사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의류매장, 휴대폰매장, 화장품매장 등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기 위해 목청을 높이고 소매도 잡아보지만 헛수고다. 하나라도 팔려고 안간힘을 쏟는 상인들의 얼굴엔 시름만 깊다. ‘서서히 말라죽고 있다’는 지하도 상가를 찾았다.


중앙차로 개통과 함께 지하도 상가 유동인구 ‘뚝’
유동인구 감소하며 매출 격감 고사 위기 내몰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서울 영등포역 지하도상가는 ‘목 좋은 대형상권’으로 통했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과 5호선 영등포시장역이 자리를 잡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것이 첫 번째 이유다. 여기에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아울렛 등이 밀집해 있어 오고가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상인들도 몰려드는 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자고 나니 세상이 변했어”



실제 이곳의 일일 유동인구는 80만명이 넘는다. 점포만도 200여 개를 웃돈다. 하지만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해와는 모든 것이 달라져 상인들의 깊은 한숨소리가 떠나질 않고 있다. “유동인구만 많으면 뭐해요. 이런 매장은 그냥 지나쳐 버리는데. 버스전용중앙차로(이하 중앙차로)가 개통되면서 횡단보도가 생겨 지하도로 내려오는 사람들까지 절반으로 줄어버렸어요. 그나마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대부분 롯데백화점이나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로 쏙 들어가 버려요. 환장할 노릇이죠.”

7년째 의류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모(여)씨의 말이다. 이씨는 이동속도가 늦어야 지하에 있는 작은 매장들도 둘러볼 여유가 있는데 지하도상가가 ‘지나가는 길목’으로 전락해버려 수익은 고사하고 끼니를 걱정할 형편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씨는 “지난해 초만 해도 서로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들만 쳐다보는 게 일과가 되어 버렸어요. 경기가 회복돼 닫혔던 손님들의 지갑이 열리고 예전 북적거리던 상가가 다시 재연되길 바랄 뿐이죠”라며 허탈해 했다.

“물어보면 뭐해요. 물건 사러 들어오는 손님이 통 없는데…. 공치는 날이 가면 갈수록 많아져요. 다들 손님 없고 장사 안 된다고 아우성이죠. 게다가 손님은 없고 상인들은 너무 많아요.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둬도 할 게 없으니까 다들 장사가 안 돼도 계속 버티고 있는 거죠.” 28살에 시작해 5년째 이곳에서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박모(여)씨는 호객행위를 해도 반응이 없는 사람들을 어두운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잠시 뒤 여대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들어서자 반색하더니 이내 돌아서는 그 뒷모습을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 상인은 서울시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들의 마음엔 벼랑 끝으로 내몰고 간 서울시 행정에 대한 원성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하도 상가는 다 죽었다”며 불만을 터트리고 있다.

불만의 이면엔 서울시가 실행한 중앙차로 개통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중앙차로가 생기면서 새로 생긴 횡단보도 덕분(?)에 지하도 상가를 찾는 유동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는 것. 실제 중앙차로 횡단보도는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하철 이용 목적 외 지하도 상가를 일부러 찾는 고객을 찾아보기 힘든 지하도 풍경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자고 나니 세상이 변한 것 같아. 요즘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손님이 있어야 말이지. 공치는 날이 더 많아. 다음 달이면 자식 놈 등록금도 맞춰줘야 하는데… 답이 없어.” 10년 넘게 잡화점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기자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가 개장하면서 상가를 찾는 손님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요즘엔 점심시간 전에는 손님을 찾아볼 수 없고 최근 며칠 동안 수입이 10만원도 되지 않아 속상하다고. 손님들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떠난 손님들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 상인들은 저마다 아쉬워한다고 그들의 심정을 대변했다. 실제 지난해 9월 영등포에 개장한 복합쇼핑몰인 경방 타임스퀘어 개장으로 영등포 지역이 수도권 서남부 최대 상권으로 부상하게 됐다는 게 유통업계의 평가다.

타임스퀘어 개장으로 그동안 ‘변두리 상권’ 이미지였던 영등포 일대 상권에도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그러나 이것은 이들 상인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뿐만 아니다. 이들 상인을 옥죄는 것은 또 있다. 비싼 임대료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심심찮게 지하 매장이 매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고. 올해 임대료가 낮춰지지 않는다면 이 상가를 떠나는 상인들이 속출할지도 모른다는 게 한 매장 주인의 귀띔이다.

매출 격감 비싼 임대료 이중고

아동복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모씨는 “현재 우리는 비싼 임대료를 지난해와 동일하게 내고 있다. 매년 서울시가 감정평가 자료에 근거해 책정하는 임대료 산정기준에 중앙차로 변수를 즉시 반영하지 않은 탓이다. 매출은 줄고 임대료는 높고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라고 분통해 했다.

“중앙차로가 생기고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 개장 이후 매출 격감으로 업종을 변경한 곳이 많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신통치 않다. 심한 곳은 매출이 50%가량 줄어든 곳도 있다. 그래도 점포유지를 위해 근근이 버티고 있다”는 고씨. 그의 하소연 속에 얼음장 같은 지하도상가에 온기가 돌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임을 절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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