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29일, 대전의 한 주택가에서 30대 여성이 대낮에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피해 여성의 전 연인으로 알려진 20대 남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뒤쫓고 있다.
대전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2시8분께 대전 서구 괴정동의 한 빌라 앞에서 30대 여성 B씨가 흉기에 찔려 쓰러졌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범행을 목격한 우체국 집배원이 곧바로 119에 신고했고, 구급대가 현장에 출동해 B씨를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숨졌다.
경찰은 피해자와 말다툼을 벌이다 흉기를 휘두르고 달아난 20대 남성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범행에 사용된 흉기는 현장에서 발견됐으며, 경찰은 주변 CCTV와 탐문 수사를 통해 A씨의 도주 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남성이 여성을 흉기로 찌르고 도주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며 “사건 경위를 밝히기 위해 A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교제폭력의 일환으로 추정된다. 앞서 지난 28일에도 울산 북구의 한 병원 주차장에서 3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20대 여성을 흉기로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남성은 스토킹과 폭행으로 두 차례나 신고를 당했던 인물로, 범행 직후 도주하려다 시민들에 의해 제압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연인 간 폭력, 이른바 ‘교제 폭력’이 급증하고 있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데이트 교제 폭력 관련 범죄는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2022년 7만790건이었던 교제 폭력 신고 건수는 2023년 7만7150건, 2024년 8만8394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평균 229건의 교제 폭력 신고가 접수된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지난 26일, 경기도 의정부 소재의 한 노인보호센터에서 근무 중이던 50대 여성이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의정부 노인보호센터 50대 여성 피살 사건’은 피해 여성이 3차례나 경찰에 스토킹 신고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사건을 예방하지 못해 논란이 일었다.
피의자로 확인된 50대 남성은 이튿 날, 서울 수락산 등산로 중턱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지난 5월에는 경기도 화성 동탄에서 납치 살인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더했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였던 30대 여성은 무려 6년간 전 연인으로부터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살해당했다. ‘화성 동탄 납치 사건’으로 불렸던 이 사건은 다수의 경찰 신고 및 고소까지 진행되고 있었지만, 분리 조치 미실시 및 구속 수사하지 않은 관할 경찰의 미흡한 조치 등으로 논란은 확산됐다.
당시 담당 경찰이 사건 담당자의 휴직 등으로 인해 한 달 넘도록 구속영장을 작성하지 않으면서 비극을 막지 못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 여성이 사망하자 강은미 화성경찰서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와 함께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밖에도 경북 구미 아파트 스토킹 살인사건(지난해 11월), 대구 스토킹 살인사건(지난해 5월) 등 교제폭력 살인사건은 끊이지 않고 있다.
교제폭력의 수법은 날이 갈수록 은밀하고 교묘해지며 신체적 폭력을 넘어 정신적, 경제적, 사회적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단순히 물리적인 폭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어폭력, 정신적 학대, 스토킹, 경제적 통제, 디지털 성범죄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며 피해자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교제폭력은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가 고립되기 쉽다는 문제점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스토킹 살인사건의 예방을 위해선 경찰(112), 여성긴급전화(1366), 해바라기센터 등 교제폭력 피해자를 위한 전문기관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 기관을 통해 상담, 법률 지원, 의료 지원, 주거 지원 등 다양한 형태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 발생하는 교제폭력의 경우, 대화 내용, 메시지, 녹취록, 사진 등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추후 법적 대응 시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다. 또 개인 정보 보호에 각별히 유의하고, 상대방에게 함부로 개인 정보를 제공하거나 온라인 계정 정보를 공유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제폭력은 남성 피해자도 증가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여성에게서 피해가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강하다. 성별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양성 평등적 관점에서 교제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성인지 감수성 함양이 필수적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언론 및 교육기관은 교제폭력의 심각성을 알리고,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 사회 전반의 인식 개선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사랑은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지,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교제폭력의 그림자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사회 전체가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동참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안전하게 벗어나고, 건강한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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