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 대통령들의 재단 설립이 이어지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장학재단·육영재단을 시작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일해재단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태재단을 출범시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과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이 그 뒤를 이었다. 각각의 재단은 제각기 다른 이유로 출범했지만 대통령의 ‘재단’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켜 왔다. 때로는 어두운 소식을, 때로는 밝은 소식을 전해온 대통령들의 재단. 그 과거와 현재를 쫓았다.
이제까지 대통령이나 그 가족이 관여한 재단치고 순항을 한 곳은 많지 않다. 출발점에 섰을 때는 기대를 모으다가도 비리사건이나 내부 알력싸움으로 좌초하거나, 아예 시작부터 삐거덕 소리를 냈다.
재단을 둘러싼 논란의 대부분은 ‘돈’ 때문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든 5·16장학재단은 이 때문에 설립 과정에서부터 잡음이 일었다.
현재 ‘정수장학회’라 불리는 5·16장학재단은 1962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업과 연구를 할 수 없는 유능한 인재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5·16장학재단의 모태인 부일장학회가 포기되는 과정에서 ‘기업가의 헌납’이냐, ‘권력의 강탈’이냐는 점을 두고 오랜 기간 논란이 일었다.
결국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의 조사결과 중앙정보부와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비롯한 국가 주요기관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 하에 이뤄졌음이 규명됐다.
‘돈’ 문제에 발목
정수장학회는 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 중심으로 운영됐다. 이 과정에서 업무상 횡령, 탈세 등 비리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인 육영수 여사도 육영재단을 만들었다. 1969년 어린이 복지 증진을 위해 설립된 이 재단은 가족 간 내분으로 오랜 기간 진통을 겪었다. 1982년부터 이사장직을 맡았던 박근혜 전 대표가 동생과의 갈등으로 사임했다. 1990년부터 이사장을 맡은 근령씨도 동생 지만씨와 갈등 끝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러한 갈등 뒤에는 1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어린이회관 부지 개발 차익이 있을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견해다.
현재 정수장학회와 육영재단은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 공익재단으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출범부터 삐거덕 소리를 낸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도 마찬가지였다. 일해재단은 전 전 대통령이 1983년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들의 유족에 대한 지원 및 장학사업을 위해 설립했다.
하지만 재단 설립 과정에서 재벌들로부터 노골적으로 정치헌금을 받으면서 도마 위에 올랐다. 재단이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운영처로 사용됐던 것. 또한 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이곳을 근거지로 수렴청정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결국 각종 비리사건에 연루돼 곤혹을 치렀으며 1988년 5월 명칭을 ‘재단법인 세종연구소’로 바꿨다. 세종연구소는 외교·안보·통일 및 국제 정치·경제와 지역연구 등의 분야에 대한 연구활동을 수행하는 민간 공익 연구기관으로 연구사업과 학술행사를 벌이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4년 14대 대선 패배 후 아태재단을 설립했다. 아태재단은 동북아시아 평화와 외교안보 문제를 연구하는 순수 학술재단으로 출범했으나 김 전 대통령의 정계 복귀 후 대선 싱크탱크이자 대선 캠프로 활용됐다. 임동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 신건 국정원장, 남궁진 문광부 장관이 아태재단 출신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는 재단 관계자들이 비리에 연루됐다. 기업으로부터 이권청탁 등의 명목으로 돈을 받았던 것. 아태재단 부이사장으로 실질적 이사장 직무를 수행했던 홍업씨와 측근들의 비리 사건이 계속되자 김 전 대통령은 2003년 2월 재단 건물과 자료를 연세대에 기증했다.
아태재단은 실질적으로 문을 닫았으며 연세대 측은 기증받은 건물과 자료들로 ‘김대중 도서관’을 설립했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출범한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은 출범 직후부터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출범 기념으로 시민들과 함께하는 콘서트를 가졌다. 또한 지난달 19일에는 봉하쌀 5230kg을 사할린 영주귀국동포, 용산참사 유족, 일본군 강제위안부 할머니, 외국인 노동자, 독거노인, 한부모가정, 중증장애아, 중증치매 노인 등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
당초 재단은 후원회원들에게 봉하쌀과 노 전 대통령의 회고록을 선물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선물로 받을 쌀을 본인 대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사양하는 후원회원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 숫자가 2000명을 넘어서면서 계획을 수정했다. 일부 인사는 쌀을 기증해 재단의 활동에 동참했다.
재단 측은 “전달할 쌀을 5230kg으로 정한 것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일인 5월 23일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직접 농사 지은 것과 기증된 쌀을 모아 전했다”고 밝혔다.
노무현 재단은 ‘시민주권 아카데미’ ‘봉하캠프’ 등 교육공간을 만들고 노 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 대통령 묘역 조성, 연구·학술활동을 통해 추모사업을 계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설립된 청계재단은 조용한 출발을 했다. 공식출범식은 하지 않았지만 등기절차를 끝내고 서울 서초동 영포빌딩에 마련한 사무실에서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
이 대통령이 내놓은 재산은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영포빌딩, 양재동 빌딩 등 건물 3채, 개인 예금 8000여 만원을 합쳐 총 331억4200만원에 달한다. 재단은 서초동과 양재동 건물 3채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운영되며 연간 11억원 규모다.
불편한 과거 극복할까
송정호 이사장은 “구체적인 것은 재단이사회에서 결정하겠지만 국가유공자나 군·경 ·소방·교정 분야, 의로운 일을 하던 분들의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려 한다. 독립운동가 자손들도 포함될 수 있고 다문화 가정과 소년소녀 가장,새터민(탈북자), 환경미화원 자녀들에게도 혜택이 갈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청계재단은 올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 장학생들을 선발해 내년 1학기부터 장학금을 지급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