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뒷담화> 국감 ‘재벌 저격수’ 부진 왜?

2009.11.03 09:20:08 호수 0호

대기업·총수 행태에 직격탄 의원들 부재
자체 정보력 상실…기업 로비 결과 분석도



국정감사가 싱겁게 막을 내렸다. ‘혹시나’했던 기대는 ‘역시나’로 끝났다. 막말은 기본. 뻔한 질문에 뻔한 답변들이 오갔다. 툭 하면 지역구 민원성 발언이 나왔고 여야 간 정치공방으로 얼룩졌다. ‘국감 스타’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특히 해마다 대기업 행태에 직격탄을 날린 ‘재벌 저격수’들의 부재가 여실히 드러났다. 후끈 달아올라야 할 재계 국감장이 미지근하다 못해 서늘했던 이유를 캐봤다.

매년 국감의 단골 메뉴는 재벌이다. 그중에서도 기업 CEO 특히 재벌그룹 총수의 출석은 초미의 관심사다. 각기 다른 예민한 사안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른 기업들이 국감철인 10월만 다가오면 바짝 긴장하는 이유다.

‘폭로’ 없고 ‘이슈’ 없었다

하지만 올해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긴장은커녕 여유마저 흘렀다. 우선 지난해 국감 때와 비교해 기업인 증인이나 참고인 채택이 눈에 띄게 줄었다. 증인·참고인 명단에 간간히 재계 인사들이 끼어 있었지만 국회의 엄포를 무시한 채 아예 불출석한 경우가 허다했다. 그나마 국감장에 선 기업인들도 의원들의 딴청으로 뒷전에서 시간만 때우다 돌아가기 일쑤였다.

재계로선 국감이 흐지부지 끝나자 크게 안도하는 분위기다. 오히려 과거 숨죽여 지냈던 것과 달리 이번 국감 기간 중 “기업활력 증진과 경제활성화를 위해 지연되고 있는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하라”고 정치권에 건의하는 등 큰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번 국감 도마에 오른 기업들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 한결 홀가분했다”며 “설사 기업이나 임원들이 국감 타깃이 됐더라도 무사히 넘어가 다행”이라고 말했다.

후끈 달아올라야 할 재계 국감장이 미지근하다 못해 서늘했던 것은 ‘재벌 저격수’들의 부진이 가장 큰 이유다. 국감 때마다 화끈한 폭로와 뜨거운 이슈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의원들이 올해 유독 힘이 빠진 모습이다.

A의원은 재계에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는 ‘거포’로 유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의 좌장으로 꼽히는 A의원은 재벌그룹 중에서도 ‘○○그룹 저격수’로 통한다.

그러나 이번 국감에서 본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의아해 하는 시각이 많다. 올해 국감장에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지난해까지 수년째 정권과의 유착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는 등 ○○그룹을 집중 포화한 것과 대조된다.

B의원도 국감 때마다 재계를 벌벌 떨게 했다. 수사기관 출신답게 국회에 입성한 이후 줄곧 삐뚤어진 재벌그룹들의 행태 등을 낱낱이 파헤친 것. 지난해의 경우 모그룹의 비정상적인 경영 실태를 질타해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올해엔 재계에 대해 별다른 지적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지난해 국감에서 초선의 ‘재벌 저격수’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C의원과 D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C의원은 모 회장의 비리 의혹을, D의원은 ‘회장님’들을 싸잡아 공격해 눈길을 끌었지만 올해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다.

해당 의원들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고군분투 중인 재계의 사정상 무차별적인 ‘호출’과 ‘공격’을 가급적 자제하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입을 모으지만 정치권과 재계 일부의 의견은 다르다. ‘재벌 저격수’들이 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보력 문제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국감에선 중요한 정보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기 마련. 국감이 이른바 ‘정보전’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특히 국회에서 손꼽히는 ‘정보통’만 막강한 대기업을 건드릴 수 있다. 무심코 찔렀다간 역풍을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월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당시 낙마의 결정적 요인으로 불거진 ‘빨대 논란’ 이후 정부의 각 부처는 물론 재계로 이어지는 ‘정보라인’마저 무너졌다는 게 정치권 한 인사의 전언이다.

그나마 복병으로 떠오른 몇몇 의원들이 재벌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지만 새 정보 없이 기존의 논란거리를 재탕 삼탕 우려먹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번 국감에서 재계 최대 쟁점이었던 투기로 의심되는 효성그룹 일가의 초호화 미국 부동산 보유 건도 의원들의 개인 작품이 아닌 미국 한 교포가 폭로한 의혹들을 그대로 나열한 수준에 그쳤다.


각 기업들의 로비 결과란 분석도 있다. 의원들의 정보력 상실 현상과 반대로 재계의 로비력이 빛을 발했다는 얘기다. 실제 국감 전부터 ‘살생부’에 오르내린 기업들은 대부분 대관업무 담당자들을 국회에 상주시키는 등 일찌감치 방어 태세를 갖췄다는 후문이다. 당초 국감 증인 리스트에 올랐으나 최종 선정 과정에서 제외된 재계 인사들도 한둘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옛 저격수들의 부재가 부각됐다. 재계의 숙적인 전 의원들의 ‘빈자리’가 올해 국감에서 더 커 보인 것. 국감뿐만 아니라 임기 내내 재벌그룹들의 치부를 과감히 들춰낸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재벌그룹에 대한 국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뒷받침하는 인물들이다.

 옛 거포들 ‘빈자리’ 크다

두 의원은 지난 17대 국회 때 대기업 지배구조, 경영권 세습, 각종 비리 등을 문제 삼아 재벌그룹에 날선 비판을 퍼부었으나 지난해 4·9 총선에서 낙마한 뒤 재기를 노리고 있다.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강기갑 의원이 홀로 재벌에 맞서고 있는 형국이지만 재계보다 서민 정치에 초점을 맞추면서 ‘재벌 저격수’와는 다소 거리가 멀어진 상태다.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