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발바리’는 연쇄성폭행범을 일컫는 별칭으로 둔갑했다. 연쇄성폭행범들의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생긴 별명이다. 이 용어가 처음 쓰이게 된 것은 1996년부터 20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저지른 범인을 검거하면서부터다.
1996년, 대전 일대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혼자 사는 원룸촌에서 연달아 성폭행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의 신고도 이어졌다. 이에 경찰은 피해자들에게서 범인의 정액과 체액을 채취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그리고 유전자 감식을 통해 범인이 동일인물이란 것을 밝혀냈다.
그러나 범인검거가 쉽지 않았다. 워낙 몸놀림이 날렵해 신출귀몰하는데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치밀한 범행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경찰은 범인을 ‘발바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연쇄성폭행범을 이르는 발바리란 별칭은 이때부터 생겼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원조발바리 이모씨는 지난 2006년, 범행 10여년 만에 경찰에 체포됐다. 1999년 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이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대전지역에서만 모두 42명으로 밝혀졌다. 이씨는 주로 여성들만 혼자 사는 원룸에 침입해 성폭행을 일삼았다.
이씨는 주로 오전 4시에서 9시에 범행을 저질렀고 범행 후에는 피해 여성을 강제로 샤워시켜 경찰의 유전자 검사를 피하는 교활함을 보이는 특징을 보였다.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2004년부터는 충북 청주 등으로 주무대를 옮겨 범행을 저질렀고 결국 서울에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로써 많은 여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원조발바리의 실체가 드러났다.
이씨가 잡히지 않은 10년 동안 그에 대해 떠도는 소문도 많았다. 그 중 하나는 심한 악취가 난다는 것. 이씨에게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이 경찰조사에서 “범인에게 냄새가 심하게 났다”는 진술을 했고 이에 따라 범인이 노숙자나 환경미화원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실제로 경찰은 이를 확인하는 수사과정에서 미화원과 청소용역업체 직원 540여 명까지 조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씨를 체포한 형사들은 “악취를 느낄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해 근거 없는 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 다른 소문은 범행 시 빨간 모자를 쓴다는 것. 이 또한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른 것으로 이씨의 몽타주마다 빨간색 모자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범행당시 발바리가 쓴 모자는 대부분 흰색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이씨는 각종 루머를 만들어내며 공포의 대상임과 동시에 호기심의 대상으로 떠오르며 원조발바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현재 이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