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근무를 간다며 이른 아침 집을 나섰던 가장이 인면수심의 연쇄성폭행범으로 밝혀졌다. 무려 6년간 새벽이슬을 맞으며 범행대상을 물색했던 성폭행범은 45건에 달하는 범행을 저질렀다. 범인이 노린 것은 혼자 사는 여성들. 충북 청주 일대의 원룸촌이 범인의 주 무대였다. 아들 옆에서 자고 있는 어머니까지 성폭행해 세간을 경악케 한 ‘청주 발바리’의 6년을 추적했다.
청주 일대 돌며 45차례 범행 저지른 연쇄성폭행범 덜미
가족에게 “새벽일 나간다” 말한 뒤 원룸촌 돌며 몹쓸 짓
지난달 27일 새벽 4시20분, 충북 청주시 죽림동의 한 원룸 밀집촌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원룸에 침입하려던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을 보고 도망치다 불과 300m도 못가 덜미를 잡힌 장본인은 연쇄성폭행범 최모(45)씨. 최씨를 잡기 위해 특별전담수사팀을 꾸리고 100여 일 새벽 잠복했던 청주 흥덕경찰서 형사팀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이로써 ‘청주 발바리’ 최씨의 범행도 끝이 났다.
주도면밀한 범행으로 경찰의 눈을 따돌리며 수십명의 여성을 상대로 몹쓸 짓을 벌인 최씨는 뜻밖에도 평범한 가장이자 회사원이었다. 웨딩업체 직원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대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과 아내를 둔 40대 가장이다. 그러나 새벽시간만 되면 원룸 안으로 침입해 범행을 저지르는 연쇄성폭행범이었다.
새벽 일이 성폭행?
최씨는 성폭행을 저지르기 위해 새벽 3시쯤 집을 나설 때면 늘 “결혼식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할 일이 많다”는 말로 가족들을 안심시켰다. 그 후엔 청주 일대 원룸촌 주변을 돌며 성폭행을 저지른 뒤 아무렇지 않게 출근했다.
비슷한 범죄로 복역하다 2002년 출소한 최씨가 다시 범행을 시작한 것은 2003년 5월 청주시 가경동에서였다. 당시 최씨는 원룸 가스배관을 타고 혼자 사는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다.
완전범죄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자신감이 생긴 최씨는 그 뒤에도 새벽만 되면 집을 나섰다. 6년 동안 청주와 천안 일대에서 그가 저지른 범행은 무려 45건.
범행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원룸촌을 돌며 가스배관을 타고 혼자 사는 여성의 집에 침입해 흉기로 위협한 뒤 성폭행을 저지른 것. 지난달 22일 새벽에도 그의 범행은 계속됐다. 이날 오전 3시30분쯤 청주시 흥덕구 한 원룸 건물 2층에서 김모(26·여)씨를 성폭행했다.
범행이 반복될수록 수법은 더욱 치밀해졌다. 지문과 DNA를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과 콘돔을 준비해 성폭행을 저질렀다. 또 여성을 협박할 때 사용할 흉기는 따로 준비하지 않고 피해여성의 집에 있는 부엌칼이나 가위를 사용하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증거품을 남겨 덜미를 잡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자신만의 범행 원칙도 있었다. 먼저 CCTV가 있는 원룸은 얼씬도 하지 않았다. 범행 도중에라도 인근에서 CCTV가 발견되면 중도 포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룸을 고를 때도 신중했다. 도시가스배관이 외부로 돌출돼있는 건물만을 골랐던 것. 방범창이 설치된 1층은 되도록 피했다. 실제로 그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 가운데 1층에 사는 여성은 한 명에 불과했다. 그가 주로 노린 것은 창문을 열어놓은 2~3층이었다. 범행 후에도 침입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스배관을 타고 내려와 도주했다.
빠른 몸놀림이 성공적인 범행에 필수적이었던 만큼 평소 몸 관리도 꾸준히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볼링 등으로 몸을 만들어 가스배관을 타는데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100일 잠복 끝에 덜미
45건에 달하는 그의 범행 중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끔찍한 범행도 있었다. 지난해에는 7살짜리 아들이 옆에서 자고 있는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또 범행을 저지른 뒤 또다시 찾아가 같은 여성을 상대로 두 번이나 성폭행을 저지르는 인면수심의 범행도 있었다.
이처럼 6년간 수십명의 여성을 울린 최씨는 지난 4월부터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려들기 시작했다.
청주의 원룸촌 일대에서 20~30대 여성들이 성폭행범으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흥덕 경찰서는 한동희 경감 등 4명의 베테랑형사로 이뤄진 특별전담수사팀을 꾸렸고 교도소 출소자 중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와 주로 새벽시간대 활동하는 직업군들을 중심으로 용의자를 압축했다.
그 후 수사팀은 범인의 예상동선을 분석해 유력한 범죄예상지 4곳을 골라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 매복수사를 펼쳤다. 또 CCTV 6대를 빌려 주요지점에 설치해놓고 범인의 모습이 찍히길 기다렸다.
그리고 100일간의 수사 끝에 지난달 27일 범행을 위해 배관을 타던 최씨를 잡았다. 수사팀 관계자는 “범인이 워낙 민첩한데다 힘이 세서 제압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말했다.
홍동표 흥덕경찰서장은 “성폭행의 경우 피해자가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어려움이 있지만 추가 범행이 더 나올 것으로 보고 인근 경찰서와 공조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