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완장’만 차고 팽팽 놀아서야…

2009.06.09 10:15:13 호수 0호

긴급점검 황당한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실태

재계에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뒤숭숭한 경제 상황이 상황인 만큼 이참에 ‘털고 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일손을 놓고 있는 노조전임자에게 굳이 회사에서 월급을 줘야 하냐는 것이다. 기업의 부담이 가중될 뿐더러 노조전임자 주도의 무리한 투쟁을 불러오는가 하면 툭 하면 터지는 비리·부패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물론 노조 측 입장에선 그럴 만한 사정과 그동안 관행에 기대고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노동법에선 부당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일손 놓은’노조원 회사서 급여 지원 논란
정치권 표심 눈치만… 법규정 13년째 제자리



최근 도마 위에 오른 노조전임자(이하 전임자) 임금 지급에 대한 여론이 폐지 쪽으로 쏠리고 있다. 국민 10명 중 7명이 ‘일손 놓은’전임자에게 회사에서 임금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



국민 10명 중 7명
“임금 지급 부정적”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동조합 및 노동운동에 대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응답자의 71.0%가 회사 일을 전혀 하지 않는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임금을 받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정부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제도’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노사관계 선진화를 정부의 주요 국정목표로 세워 추진해 왔다”며 “(그중 하나인) 전임자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법 조항을 더 이상 유예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은 바 있다.
한나라당도 “법 시행을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당론을 정했다.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 여건을 축소하게 되면 기업 활동 여건을 좋아지게 함으로써 생산성 증가, 안정적인 노사 관계 유도 등 긍정적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내용을 담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개정안을 이달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재계는 두말할 나위 없이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노사 관계 선진화 차원에서 금지법이 꼭 필요하다는 게 재계의 중론. 그만큼 폐해가 적지 않다는 까닭이다.
재계는 전임자 임금 지급 폐지 이유로 ▲기업의 부담 가중  ▲전임자 지위 유지를 위한 무리한 요구 및 비합리적 투쟁 주도 ▲전임자의 특권화와 권력화에 따른 비리·부패 만연 등을 꼽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노사관계는근로자가 생산에 필요한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며 “그러나 그동안 전임자는 회사가 지급하는 급여를 받으면서도 기업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기보다 투쟁이나 상급활동만 치중해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켜왔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기업인은 “노사관계 안정과 나아가 국가경쟁력, 대외 신인도 제고를 위해 무조건 전임자 임금 지급을 폐지해야 한다”며 “당분간 진통이 수반되더라도 전임자 급여를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등 회사가 부담하는 잘못된 관행과 부당한 폐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법 개정이 지난 13년간 정치권에서 논의만 하다 줄곧 제자리였던 점에서 이번에도 흐지부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까 우려하는 눈치다.

현행 노동법에선 사용자(회사)가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사측이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다만 노동조합법 부칙 6조1항엔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조항은 2009년 12월31일까지 적용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달려있다.

노조왕국’현대차 전임자 2배 초과
협약은 98명, 실제론 214명 활동
월급에 각종 수당까지 ‘꼬박꼬박’

1997년 여야합의 개정
‘봐주고 또 봐주고…’

‘전임자는 회사로부터 급여를 지급 받아서는 안 되고, 회사도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급해서는 안 된다’는 관련 법은 이미 1997년 여야합의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개정 당시 명문화됐지만, 노사정간 첨예한 갈등 양상만 보이다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의 강력한 반발과 노조의 재정적 여건 등을 감안해 3차례의 유예 조치 끝에 최종 합의한 유보 기간이 바로 올해까지다.

정부와 정치권의 ‘표심’을 염두에 둔 뜨뜻미지근한 대처에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관행으로 굳어졌고, 많은 논란을 낳았다. 개정안 유보시 약속한 전임자수를 줄이겠다는 노동계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에서 급여를 받은 국내 전체 전임자는 1만583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전임자 1인당 조합원수는 149명. 1990년 219명, 2005년 153명보다 줄어들었다. 이는 근로자수에 비해 전임자수가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참고로 일본은 전임자 1명당 조합원수가 500∼600명, 미국은 800∼1000명, 유럽연합(EU)은 1500명 수준이다.

전임자가 받는 임금 총액도 지난해 4288억원으로, 2005년 3439억원보다 849억원(25%)이나 증가했다.
연구원 측은 “조사 대상 사업장의 83.7%가 전임자에게 평균임금(55.5%) 또는 평균임금 이상(28.2%)을 지급하고 있다”며 “기업 340개 전임자 1199명의 연간 임금 총액이 518억원이므로, 회사로부터 받는 임금이 평균 1인당 43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전임자가 존재하는 현실이 발전적인 노사관계 형성을 가로막고 각종 부당한 관행의 근원”이라며 “전임자 급여 지급으로 인해 ‘노동귀족’이 존재하고 노동운동의 ‘직업화’가 초래됐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노조 왕국’ 현대차의 경우 당초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98명을 전임자로 두기로 했다.
하지만 실제론 임시상근직 110여 명을 포함해 214명이 전임자로 활동하고 있다. 2배 이상 초과한 셈이다.
이들은 출·퇴근 면제는 기본, 일절 회사일을 제쳐두고 노조 업무에만 몰두하면서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을 꼬박꼬박 챙기고 있다. 게다가 교대로 일하는 일반 근로자가 기본급과 잔업수당만 받는 데 비해 전임자는 기본급에 고정 잔업수당, 휴일 특근 수당 등 갖가지 수당을 더 얹어 받는다. 또 핵심 전임자들은 회사로부터 차량 및 유류비를 지원받는 특혜까지 누리고 있다.반면 한국과 같이 기업별 노조 조직 형태를 취하고 있는 일본의 경우 전임자 급여를 노조의 재정으로 지급하고 있다. 현대차와 ‘라이벌’인 닛산과 도요타가 대표적인 예다.

닛산도 전임자를 두고 있지만, 그 수는 60여 명에 불과하다. 조합원수가 3만여 명인 점을 감안하면 1명당 조합원수가 500여 명꼴이다.
이들이 받는 급여와 보너스 등은 모두 노조 재정에서 지불된다.
도요타의 노조원은 6만3000여 명으로 이중 전임자는 80여 명이다. 전임자 1명당 조합원수가 790명인 셈이다.

선진국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무노동 무임금’원칙을 기본으로 하는 미국은 전임자에 대한 급여 지급을 100% 노조가 부담할 뿐만 아니라 ‘노조에 대한 경비지원’을 부당노동행위로 규정, 위반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노조가 전임자 급여 지급을 회사에 요구하는 행위는 물론 기업이 노조에 금전을 지원해도 형사법 위반으로 처벌된다.
영국도 회사가 노조에 어떠한 금전 및 물질적 지원을 하지 않는다. 노조도 회사로부터 개입을 받지 않는 독립성·자주성 유지를 위해 회사에 손을 벌리지 않는 것이 관례다.

노동계는 이번에도 강력 반발할 태세다. 전임자 임금 부분을 아예 삭제하거나 법으로 규정하기보다 노사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법 개정시 30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노조의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서도 조합원 300인 미만 노조에선 조합비보다 전임자 임금이 많았으며, 100인 이하 노조는 조합비가 전임자 임금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1인당 조합원수 149명
선진국은 500∼1500명

노동계 관계자는 “조사를 보면 조합비로 둘 수 있는 전임자 수는 조합원 50인 이하에 0.4명, 300명에 2명, 1000명에 6.4명, 5000명에 32명, 1만명에 64명, 3만명에 193명”이라며 “당장 회사의 지원이 끊기면 300인 미만 사업장 노조는 있으나 마나 한 조직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전했다.
13년을 끌어온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 제도가 원칙대로 실효될지 아니면 또 다시 정치권의 눈치보기와 노동계의 반발의 벽에 부딪힐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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