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배송 금지’ 민노총, 쿠팡 잡도리하는 속내

2025.11.13 17:32:40 호수 0호

정부·여당은 ‘방관자 모드’?
쿠팡노조 “탈퇴하자 보복”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김준혁 기자 = 최근 쿠팡 ‘새벽 배송 제한’을 놓고 노동계, 택배업계, 소상공인, 소비자 사이의 찬반 논쟁이 뜨겁다.



노동계에선 쿠팡의 직고용 배송기사 노조인 쿠팡친구 노동조합(쿠팡노조)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탈퇴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해당 제안을 제시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소상공인 단체와 만난 자리에서 “무리한 요구”라며 또다시 민노총 노조를 향해 날을 세웠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서울 영등포구 소상공인연합회 간담회에서 “이제 새벽 배송은 국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활 필수 서비스이자, 소상공인에게도 너무 중요한 서비스”라며 “노조의 무리한 목소리는 커져만 가고 정부는 민노총, 노조의 목소리를 줄일 어떠한 힘도 가진 것 같지 않아 더 답답하다”고 지적했다.

장 대표는 앞서 지난 10일 충북 청주 충북도당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민주당과 민노총의 반민생연대가 국민의 일상을 멈추려 하고 있다”며 “민노총과 민주당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정작 야간 노동으로 생계를 잇는 기사와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야당뿐만 아니라 노동계를 포함한 새벽 배송을 이용하는 소비자들마저 거세게 반발하고 나서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제 금지가 아닌 과로사 방지 기준을 만들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취했다.


‘책임의원’으로 조정을 이끌고 있는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2차 회의에서 “(새벽 배송) 전면 금지가 아닌, 총량 근로시간을 줄이거나 분리 작업을 따로 맡기는 등 과로사를 줄일 논의를 막 시작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앞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도 지난 4일, 국회 당정협의회 직후 “새벽 배송 전면 금지로 가느냐에 대해선 소비자 단체도 있고 당사자들도 있기 때문에 사회적 대화로 합리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창준 노동부 차관도 지난 12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새벽 배송 자체를 금지할 수는 없지만, 야간 노동 규제 방안은 논의해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정부와 여당이 새벽 배송 문제를 두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리적 방안 모색”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되풀이하며 사실상 논쟁의 한켠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부는 연말까지 야간 노동 규율체계 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노동계에선 “시간만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구체적 제도 설계보다 ‘정치적 부담 회피’가 우선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새벽 배송을 둘러싼 논의의 무게 중심이 이미 민노총 노조의 요구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지난달 22일 택배기사의 과로사 해결을 위해 열린 사회적 대화 기구 1차 회의에서 심야 시간인 오전 0시부터 5시까지 배송을 금지하자는 안을 냈다.

업계에 따르면 전국 새벽 배송 종사자 중 민노총 산하 노조에 가입한 인원은 수백명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회적 대화 기구 내에서 이들의 발언권은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이에 “실제 현장의 다수 의견보다 노조의 구호가 논의의 방향을 좌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작 당사자인 쿠팡노조는 새벽 배송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배제됐고, 민노총 소속이 아닌 비노조 택배연합 대표는 지난 5일 회의를 참관하려 했지만 ‘초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장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여당이 ‘신중론’을 명분 삼아 거리를 두는 태도는 사실상 정책적 공백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동계의 요구와 산업계의 현실, 국민 편익을 동시에 고려하는 ‘균형 잡힌 해법’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한 정책 전문가는 “노조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거나, 반대로 정치적으로만 공격하는 방식 모두 해법이 될 수 없다”며 “정부는 객관적 현장 데이터와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산업구조와 노동환경을 함께 개선할 종합적 접근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새벽 배송은 이미 국민의 생활 리듬과 중소 유통업계의 생존구조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따라서 단순히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권 보장’의 문제로 한정하기보다, 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노동자의 안전을 함께 도모할 정책 설계가 요구된다.

그러나 새벽 배송 금지 논란이 정치적 공방의 소재로만 소모되는 사이, 정작 현장의 택배 노동자들과 소상공인들은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맞고 있다.

쿠팡의 야간 노동환경을 둘러싼 문제 제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2020년 고 장덕준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국정감사 등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다만 당시 논의의 중심축은 쿠팡의 시스템 구조를 직접 규제하는 방향이라기보다는, 개별 사건을 둘러싼 책임 추궁과 재발 방지 요구, 이중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합의나 규율 마련 필요성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 2023년 11월, 쿠팡노조가 조합원 93%의 찬성으로 “정치적 활동이 아닌, 조합원을 위한 실질 활동에 집중하겠다”며 민노총을 탈퇴한 이후, 노동계의 공세가 한층 거세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쿠팡노조 탈퇴 직후인 그해 12월엔 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일산지회가 파주 쿠팡 캠프 앞에서 ‘사람 잡는 쿠팡’을 슬로건으로 한 규탄 기자회견을 열며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듬해엔 택배노조의 제안으로 노동계·시민단체·진보 정당 등이 함께 만든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과로사대책위)’가 국회 앞에서 “로켓 살인 끝장 내자. 국회는 지금 당장 쿠팡 청문회를 열라”는 구호를 내걸기도 했다.

당시 과로사대책위는 쿠팡 택배·물류 노동자의 과로사 문제 해결을 위한 청문회 개최, 야간 노동 구조와 시장 독과점을 규제하기 위한 이른바 ‘쿠팡 갑질 방지법’ 등 온라인 플랫폼 독점 규제 입법 등을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2일 민노총 택배노조가 택배 사회적 대화기구 회의에서 새벽 배송을 제한하자는 취지의 안건을 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쟁에 불을 당겼다.

민노총 택배노조는 입장문을 통해 “쿠팡의 새벽 배송 시스템은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하며 하루 3회전 배송, 300개가 넘는 물량을 소화하도록 만들고, 배송 마감 압박과 ‘클렌징’(사실상 해고) 위협까지 더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과로사 기준 초과”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택배기사의 과로사 방지와 최소 수면시간 보장을 취지로 새벽 배송 제한을 요구하고 있다. 김주영 민주당 의원실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자료에서도 쿠팡 배송기사들의 열악한 노동 조건이 일정 부분 확인됐다.

고용노동부가 지난해 10~11월 쿠팡CLS 새벽 배송기사와 물류시설 일용직(헬퍼) 등 268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상 중 66.1%를 차지한 특수고용직(특고) 기사의 76.8%가 ‘야간 3회전 배송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특고의 하루 평균 근로시간은 9시간38분, 주당 근무일수는 5.5일로 집계됐다. 같은 조사에서 직고용 직원의 주당 근무일수가 4.5일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특고 기사들이 더 많은 시간과 물량을 떠안고 있는 셈이다.

악천후 상황에서도 배송을 이어가는 비율 역시 특고에서 더 높았다. 폭우나 폭설 등에도 배송을 계속한다고 답한 비율은 특고가 77%에 달한 반면, 직고용은 42.3%에 그쳤다.

근무일에 새벽 배송을 하지 못했을 때 계약 해지나 배송구역 조정 등 불이익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특고는 절반에 가까운 48.6%가 ‘있다’고 답했으나, 직고용은 ‘없다’는 응답이 96.9%로 나타났다.

다만 일각에선 근로자 처우 문제만으로 이미 일상 인프라로 자리 잡은 새벽 배송 시스템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각종 실태조사를 통해 처우 개선의 필요성은 충분히 시사됐지만 새벽 배송 제한이 자칫 일자리 축소와 소득 감소로 이어질 수도 있는 만큼, 과도한 규제가 아니냐는 것이다. 생계 역시 민노총 측이 주장하는 ‘생명권’과 직결된 부분이기도 하다.

소비자단체에서도 반발이 일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심야 배송 전면 금지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반대했고, 사단법인 ‘소비자와함께’도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했다.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새벽 배송을 전면 금지하는 것에 대해선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단계적 개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불필요한 것까지 다 새벽에 배송하는 점은 시정이 필요하다”고 점진적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일각에선 정작 쿠팡노조가 반대하는 상황임에도 민노총이 규제 도입을 주도하는 것은 명분이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쿠팡노조는 지난 7일, 성명서에서 민노총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이들은 “민노총은 쿠팡노조는 물론 다른 택배기사들이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강행 의지를 밝혔다”며 “민노총이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그들 조합 내 야간 배송기사 비율이 극히 낮기 때문에, 나머지는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의미로 보일 정도”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쿠팡노조에서 새벽 배송을 진행하는 조합원 비율은 약 40% 이상에 달하며, 이들의 고용 안전을 위협하는 시도를 우리는 절대 납득할 수 없다. 일자리와 임금 보전 대책 없이 무작정 금지하려는 것은 탁상공론이자 정치적 의도가 섞인 행보일 뿐”이라고 맹폭했다.

이어 “민노총은 노동자를 위해 새벽 배송 금지가 꼭 필요한 것처럼 말하지만 쿠팡노조가 소속됐던 당시에는 한 번도 이런 주장을 한 바 없다”며 “노조가 조합원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주장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금의 새벽 배송 금지 주장은 쿠팡노조가 민노총을 탈퇴했기 때문에 가능하며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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