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연재>'분쟁조정의 달인' 임성학의 실타래를 풀어라(67)

2013.03.04 10:55:51 호수 0호

곪은 것 치료치 않으면 살 되지 않는다

컨설팅전문가인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은 자타가 공인한 ‘분쟁조정의 달인’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침서 <실타래를 풀어라>를 펴냈다. 책은 성공이 아닌 문제를 극복해 내는 과정의 13가지 에피소드를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다. 복잡하게 뒤엉키는 일로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기 위해 책을 펴냈다는 임 소장. 그의 숨은 비결을 <일요시사>가 단독 연재한다.



제품·대금 회수 방안 찾는 게 급선무
행불자 찾는데 전력소진은 어리석은 짓

“곪은 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결코 살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당장에 해결 할 방책이 없다고 하여 도망 다닌다고 해서 해결점을 찾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문제만 더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내가 HD전자회사에서 법무팀장으로 근무 할 당시, 화창한 어느 해 봄날 오후 무렵이었다. 사무실에서 파일정리를 하고 있던 중 사장으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사장실로 들어가니 임원 몇 분과 함께 뭔가 심각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사장님께서 나를 발견하곤 자리를 권하시면서 잔뜩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임 팀장! 요 근래에 부도난 강동구 소재 대리점 나철근 사장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현황 파악이 먼저

“예. 아직 영업부로부터 정식으로 사건을 이관 받지는 않았지만, 제가 듣기로는 우리 회사 외에 동종업계 등에 수십억원 상당의 부도를 내고 잠적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는 영업이사 옆 맨 끝자리에 앉으며, 참석한 임원들의 긴장된 표정을 곁눈질로 읽으면서 대답했다. 그러자 영업이사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임 팀장, 우리 회사가 당한 부도금액이 얼마인지 알고 있어요?”
“한 2억5000만원 정도라고 듣고 있습니다.”

“부도금액이 적은 금액이 아니지요. 회사의 어려운 사정으로 보아서는 금쪽같은 금액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놈은 부도직전에 물건을 왕창 빼가지고 청계천에 헐값으로 덤핑을 쳐서 돈을 챙겨 잠수한 아주 나쁜 놈이네.”
사장이 영업이사 대신 내 말을 잘라 강조하면서 고개를 돌려 영업이사를 쳐다보았다. 물론 그 말 속에는 영업부에서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물건을 내줘 당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게 분명했다. 영업이사는 입을 굳게 다물고 긴장한 채 고개만 끄덕이며 그저 송구한 패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던 사장이 영업이사를 향해 말했다.

“그건 그렇고 하루빨리 잠수한 나 사장을 붙잡아 납품한 회사 제품이나 대금을 회수할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게 급선무니까, 오늘부터라도 그 놈을 찾는데 전력을 투입 하세요.”
“알겠습니다. 즉시 사건을 이관시키도록 지시하겠습니다.”
사장의 말을 받아 영업이사가 벌레 씹은 표정으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업이사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 내 자리로 돌아왔는데, 잠시 후 영업담당 팀장이 사건 파일을 가지고 왔다. 나는 사건 이관서류에 확인사인을 한 후 파일속의 자료를 일일이 살펴보았다.


채무자의 이름은 나철근 사장이었고, 그는 강동구에서 전자대리점을 운영하다가 우리 회사에 약 2억5000만원 상당의 부도를 냈다. 같은 업종의 전자업계 부도금액을 합하면 25억원 상당의 부도를 내고 잠적한 것이다. 물론 자택을 담보로 잡아 근저당권설정을 해놓았지만, 선순위 채권자들이 있어 경매진행 시 후순위채권자인 회사로서는 배당받을 금액이 거의 없어 회수가 불가능했다.
팀원들과 잠적한 나 사장을 찾기 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 전문성이 부족한 팀원들은 방안 제시 대신 내 얼굴만 쳐다보며 막막한 표정들을 지었다. 소위 정보나 수사권을 가진 형사들도 잡기 힘들다는 기소 중지 된 자를, 우리같이 아무런 수사권한도 없는 일반인들이 어떻게 찾을 수 있겠느냐는 투였다.

그렇다고 회사에서 찾아내라고 난리를 치고 있는데, 그냥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도 없었다. 나는 평소 수많은 채무자의 거주지를 탐문해본 경험을 살려 추적한다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허나 팀 인원이 부족한 우리들로서는 쌓인 다른 일도 많은데 성공여부를 확신하지 못한 상태에서, 팀원 모두를 투입하여 행불자를 찾는데 전력을 소진할 수만은 없는 실정이었다. 그래서 필요시 다른 직원들과 공조하기로 하고, 일단 나 혼자 직접 채무자를 추적해보기로 마음먹고 탐문에 나섰다.

대화를 유도하다

먼저 행불자를 찾기 위해서는 일단 가족부터 만나 현황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가족의 소재지를 찾기 위해 관할 동사무소를 방문하여 주민등록등·초본과 구청에 들러 호적등·초본을 발급을 받았다. 물론 당시에는 지금처럼 규제가 없어, 아무나 주민등록등본이나 호적등·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었기에 그나마 추적하는데 다행이었다.
나 사장의 주민등록상에는 채무자와 그의 처와 3살짜리 자식이 같은 주소지인 강동구 소재 주택에 함께 등재되어 있었다. 그 주택은 선순위 채권자인 금융기관에서 경매를 신청한 상태였다. 나는 나 사장의 가족부터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주소 거주지로 찾아갔다.

그의 집은 평범한 일반 주택이었다. 수십억 부도낸 대리점을 운영한 사장치고는 그다지 좋은 집이 아니었다. 철 대문 우측 상단에 설치되어있는 인터폰은 고장이 났는지, 임시로 만든 초인종이 인터폰위에 달려있었다. 내가 몇 차례인가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나 사장 처로 보이는 이십대 후반의 젊은 부인이 잠든 애기를 안고 집안에서 대문으로 걸어 나오며 물었다. 나는 문틈으로 그 부인이 나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HD전자회사 직원 임 팀장입니다만, 여기가 나 철근 사장님 댁이 맞습니까?”

내가 묻자 부인이 대문 앞에서 걸음을 멈칫하며 대답했다. 
“예, 그런데요? 허나 지금 사장님은 집에 없어요.”
귀찮게 굴지 말고 돌아가라는 듯 약간의 짜증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고 작심하고 온 내가 그냥 물러날 리가 없었다.

“아, 예. 사모님이신가요?”
나는 일부러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물었다.
“어디서 오셨다고요?”
부인은 대답대신 궁금한 듯 되물었다. 자연히 대문을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대화를 하게 된 입장이었다. 내가 다시 신분을 밝히며 명함을 꺼내 대문 틈사이로 밀어 넣어주자 부인이 받았다.
<다음호에 계속>

 임성학은?

- 대한신용조사 상무이사 역임

- 화진그룹 총괄 관리이사 역임

- 임성학 멘토링컨설팅연구소 소장


- PIA 사설탐정학회·협회 부회장 겸 운영위원

- PIA 동국대·광운대 최고위과정 지도교수

 

저작권자 ©일요시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Copyright ©일요시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