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그룹의 현금성 자산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유동성 우려 등을 감안해 내부에 돈을 쌓아두는 것. 이는 대기업일수록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경영환경 속에서 믿을 만한 구석이 ‘쩐’밖에 없다는 심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야말로 ‘돈에 웃고 돈에 우는 세상’이란 말을 실감케 한다. 재벌그룹 가운데 가장 많은 ‘실탄’을 확보한 곳은 어디일까.
재벌그룹의 현금성 자산 증가는 이명박 정부의 강력한 투자 주문과 맞선다. 재계는 ‘곳간’을 쉽게 열지 않을 태세. 정부와 여당이 “기업이 돈을 쌓아놓고도 투자를 늘리지 않고 있다”고 재계를 몰아세우며 공격적인 투자를 주문하고 있지만 재계는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혹시 몰라서 …”
대기업들은 금융 불안이 단기간에 개선되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 철저한 유동성 관리에 나서고 있다. 불확실한 경제상황과 혹시 모를 경기부진 장기화를 미리 대비해 현금 확보에 혈안이다. 이는 경기 불황의 그늘을 더욱 짙게 하는 대목이다.
투자를 기피하고 현금을 쌓아두는 현상은 대기업일수록 두드러진다. 최근 발표된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의 2008년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 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10대 그룹을 중심으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현금성자산이 전년보다 크게 증가한 것.
현금성 자산은 단기간에 현금화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뜻한다. 대차대조표상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단기자금 운용 목적으로 소유하거나 기한이 1년내 도래하는 금융상품)을 더해 산출한다.
이번 자료에 따르면 10대 그룹의 현금성 자산은 35조8120억원으로 전년 대비 16.88% 늘었다.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곳은 삼성그룹. 무려 11조8074억원에 달했다. 2007년 11조8722억원에 비해 648억원(-0.55%)이 줄었지만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2위는 현대자동차로 2007년 7조1135억원에서 1조4062억원(19.77%) 증가한 8조5197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어 ▲LG그룹(6조1694억원) ▲금호아시아나그룹(3조8713억원) ▲현대중공업그룹(3조7207억원) ▲포스코(2조5282억원) ▲SK그룹(1조5625억원) ▲롯데그룹(1조4735억원) ▲한진그룹(1조3496억원) ▲GS그룹(8543억원) 등의 순이었다.
10대 그룹 현금성자산 35조 “전년비 16% 상승”
1위 삼성 11조원 보유…현대차, LG, 금호 순
이중 2007년에 비해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LG그룹으로 2조6651억원(76.05%)이 증가했다. 금호아시아나그룹(2조6362억원)은 근소한 차로 2위를 기록했지만, 증감율은 213.45% 급증해 현금성 자산 비중을 가장 많이 늘린 곳으로 꼽혔다.
LG그룹과 금호아시아나그룹을 포함해 현대자동차그룹(1조4062억원·19.77%), SK그룹(4763억원·43.84%), GS그룹(4493억원·110.96%), 포스코(3876억원·18.10%) 등 6개 그룹은 현금성 자산이 늘어났다.
반면 현대중공업그룹(-1조1846억원·-24.15%), 롯데그룹(-5447억원·-26.99%), 한진그룹(1819억원·-11.88%), 삼성그룹(-648억원·-0.55%) 등 4개 그룹은 줄었다.
삼성전자·대한통운 ‘톱’
개별기업으론 삼성전자가 5조6665억원으로 전년보다 1조2231억원(-17.75%) 감소했으나 1위를 차지했다. 2위는 현대자동차로 전년 4조3853억원에서 4075억원 증가한 4조7928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으로 ▲LG디스플레이(3조2628억원) ▲대한통운(3조748억원) ▲포스코(2조4663억원) ▲현대중공업(2조3439억원) ▲에쓰오일(2조1329억원) ▲삼성중공업(2조883억원) ▲현대미포조선(1조3768억원) ▲KT(1조3629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개별기업 가운데 1년 만에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지난해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합병(M&A)된 대한통운으로 3조457억원(1만438.33%)이나 급증했다. LG디스플레이와 LG전자의 보유 현금도 각각 1조3680억원(72.20%), 6743억원(126.65%) 늘었다.
이어 삼성물산(5763억원·97.66%), 현대모비스(4755억원·70.39%), 한국가스공사(4695억원·1329.2%), GS건설(4233억원·109.72%), 현대자동차(4075억원·9.29%), 대림산업(4045억원·895%), 삼성SDI(3602억원·89.25%) 등의 순으로 현금성 자산이 불어났다.
재계 관계자는 “각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이 늘어나는 것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경영환경 탓”이라며 “최소한의 자금으로 급한 불을 끄는 등 한번 고개를 든 경제 위기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기업마다 자금 확보가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