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대통령실이 역대 정부 최초로 특수활동비(특활비), 업무추진비(업추비), 특정업무경비(특경비) 등에 대한 집행 정보를 공개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홈페이지에 특활비, 업추비, 특경비의 집행 결과와 내역을 게시했다.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특활비 집행액은 총 4억 6422만6000원으로 외교·안보·정책 네트워크 구축 및 관리 관련 집행액이 1억5802만5000원으로 가장 컸다.
또 민심·여론 청취 및 갈등 조정·관리에 9845만2000원, 국정 현안·공직 비위·인사 등 정보 수집 및 관리에 9700만8000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업추비 집행액은 9억7838만1421원, 특경비는 1914만1980원을 썼다.
앞서 지난 7월5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부대 의견에 특활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법무부는 검찰청의 특수활동비의 경우도 검찰개혁 입법 완료 후 집행하겠다고 돼있다”며 “국회와 법무부, 검찰청 등의 의견을 고려해 향후 책임 있게 쓰고 소명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대통령비서실·법무부·감사원·경찰청 등 4개 기관의 특활비 105억원을 추경예산안에 포함시켰는데, 이번 대통령실의 공개는 첫 포문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국민의 알 권리와 민주적 통제라는 원칙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특히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재정의 집행은 철저한 감시와 투명성이 요구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최근 제기된 대통령실 특활비 공개 요구는 당연한 흐름처럼 보인다.
국민은 왜곡 없이 권력의 주머니가 어떻게 열리고 닫히는지 알 권리가 있으며, 권력은 스스로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정보 공개를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 일반 원칙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논의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실의 특활비 공개는 단순한 투명성 확보를 넘어, 국가안보·외교·정보활동과 직결되는 영역을 건드릴 수 있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된다.
특활비는 말 그대로 특정 목적의 활동에 사용되는 비용이다. 수사기관이나 정보기관, 외교·안보 관련 부처에서 주로 쓰이며, 일반 회계처럼 영수증과 세부 항목을 일일이 공개하기 어려운 성격을 지닌다. 특히 대통령실은 국가 최고 통치 기관으로서, 외교·안보·정보와 직결된 민감한 임무를 수행한다.
여기에는 타국 정상이나 외교관과의 비공식 접촉, 정보기관과의 은밀한 협조, 돌발적 국가 위기 상황에서의 긴급 자금 집행 등이 포함된다. 다시 말해 대통령실 특활비는 일반 정부 부처의 집행 비용과는 성격이 다르며, 그만큼 공개의 범위와 수준을 두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국민이 대통령실 특활비 공개를 요구하는 배경은 명확하다.
첫째, 특활비는 사용 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과거부터 지속적으로 오남용 논란에 휩싸여 왔다. 과거 정부에서도 특활비가 정치인들을 회유하거나 여론을 관리하는 데 사용됐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심지어 ‘애먼 돈’이라는 오명을 쓰며 권력형 비리의 온상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둘째, 투명성 시대의 요구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회계가 전산화되고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더 이상 불투명한 비용 집행이 용인되지 않는다. 다른 부처의 특활비가 일정 부분 공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실만 예외로 남는다면 국민적 의혹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국회와 시민단체는 대통령실 특활비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내역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개가 무조건 선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대통령실 특활비의 공개는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심각한 위험을 동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국가 안보의 잠재적 위협이다. 대통령실 특활비는 단순한 행사 비용이나 업추비가 아니다. 국내외 정보 협력, 외교 채널 가동, 긴급 상황 대응 등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공개 과정에서 항목이 지나치게 구체화된다면, 외교 협상 전략이나 정보 수집망의 일단이 노출될 수 있다.
특히 외국 정보기관이나 외교 당국이 대통령실의 자금 흐름을 분석할 경우, 우리 정부의 비공식 라인이나 전략적 접근법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
둘째는 정치적 악용 가능성으로 특활비 내역이 부분적으로 공개되더라도, 야당이나 언론이 이를 정치적 공격 소재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특정 시기에 지출된 비용이 정무적 활동과 연결된 것처럼 해석되거나, 실제와 달리 과장되거나 왜곡된 서사가 덧씌워질 수 있다. 결국 투명성을 강화한다는 명분이 오히려 정쟁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집행 위축과 행정 비효율이다. 모든 지출이 공개될 것을 전제한다면, 담당자들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게 된다. 외교 현장에서의 긴급한 접대, 정보 협력 과정에서의 즉각적 지원, 국가 위기 상황에서의 신속한 대응 등이 ‘공개될 수 있다’는 부담 때문에 지체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결국 이는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해칠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기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실 특활비를 무조건 비공개 영역에 두는 것도 문제다. 국민적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투명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여기서 고민해야 할 지점은 ‘어디까지 공개할 것인가’ ‘어떤 방식으로 통제할 것이냐’는 것이다.
우선 감사와 통제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국민에게 직접 세부 내역을 공개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독립성과 신뢰성을 갖춘 감사 기구에 보고하고 점검받아야 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감사원, 혹은 국회의 특활비 전담 소위원회 등을 통해 비공개로라도 철저한 검증을 받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민은 ‘누군가 제대로 들여다보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을 수 있다.
공개 범위의 단계적 설정도 요구된다. 모든 내역을 일괄 공개하기보다, 일정 비율의 예산 배분 현황이나 큰 틀의 지출 목적 정도를 국민에게 설명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예컨대 전체 예산 중 외교·정보·행사 관련 비율을 공개하고, 구체적인 상대방이나 시점은 비공개 처리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최소한의 투명성을 확보하면서도 보안상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다. 특활비는 그 특성상 완전한 투명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고, 대신 오남용을 막는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사용 가능한 목적을 법률이나 시행령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위반 시 처벌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간다면 불필요한 의혹을 줄이고 특활비의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대통령실 특활비 공개 문제는 민주주의가 가진 고질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한쪽에는 국민의 알 권리와 투명성 확보라는 가치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국가의 안전과 효율적 운영이라는 현실이 있다. 어느 한쪽만을 강조한다면 균형은 쉽게 무너진다. 국민의 불신이 깊어지면 권력의 정당성은 흔들리지만, 국가 기밀이 무분별하게 노출되면 안전과 국익이 위협받는다.
결국 민주주의는 이 두 가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실 특활비 공개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국민은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알고 싶어하고, 대통령실은 ‘국가 운영의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 두 요구는 상충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동시에 충족될 수 있는 영역이 존재한다.
답은 ‘절제된 공개’와 ‘강화된 통제’에 있겠다. 내역 전부를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정 부분의 큰 틀 공개와 철저한 내부 감사는 가능하다. 국민은 투명성에 대한 최소한의 만족을 얻고, 대통령실은 안보와 기밀을 유지할 수 있다.
나아가 법과 제도적 장치를 통해 특활비의 남용을 방지한다면, 특활비는 더 이상 ‘애먼 돈’이 아닌, 국가 운영을 뒷받침하는 합리적 예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실 특활비 공개 논의는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민주주의 사회에서 투명성과 보안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답은 극단이 아닌 절제와 균형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