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의 머니톡스> 엔화의 운명과 미국의 선택

  • 조용래 작가
2024.08.05 15:33:34 호수 1491호

엔화 환율이 심상치 않다. 1000원 대 100엔, 그 오래된 교환 비율이 깨진 건 벌써 지난해 일이다. 2008년 이후 가장 낮은 100엔 대 850원을 기록하고 있다.



가성비 좋아진 일본 여행 수요가 폭발한다. 그러나 우리 돈 가치가 상승하는 효과가 마냥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경제가 튼튼해졌고 원화 실질 가치가 높아진 건지 분명히 말하기 어렵다.

당장 내년 우리 원화 환율은 어떻게 될까?

엔화 가치, 가만두면 어디까지 내려갈지 모르겠다는 얘기는 일본 은행서 나온다. 1970년대 엔화는 달러 대비 270원도 넘었다.

시장가격엔 ‘영원한 고점도 영원한 저점도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면 엔화 환율의 역사적 고점까지는 아직 110엔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내년 또는 더 먼 미래에 엔화 가치가 크게 변한다면 우리의 고민은 한 가지다. 우리나라에 좋은지 나쁜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뿐이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지만, 개별 국가의 환율은 미국 달러화 가치에 종속돼있다. 270엔을 넘어갔던 엔화 환율이 100엔 아래로 곤두박질친 건 미국의 결정이었다.

미국의 결정을 일본이 수용했단 점은 분명하지만 ‘플라자 합의’란 이름처럼 정말 아름다운 합의를 이뤘던 것으로 보긴 어렵다.

“총알 세례를 받느니 한 칼 베이는 게 낫다”는 일본식 전략적 수용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일본의 선택이기도 했고 굴복이기도 했던 플라자 합의가 미국의 경제 폭력이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세계 2위 수출 대국,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으로도 미국의 강압엔 저항하지 못했다. 다행이라면 우리나라엔 그렇게 가혹한 원화 가치 절상 압력이 쏟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의 경제정책 결정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건 있다. 미국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결정을 할 뿐이란 점이다.

미국은 필요하지 않은 선택을 한 적이 없으며 필요할 땐 주저 없이 폭력을 행사한다. 달러 패권을 앞세운 경제작전이 군사력을 수반한 폭력보다 상대 국가에 덜 가혹한 적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다.

미국의 대외 군사작전 실패는 여러 번 있었지만, 경제 작전의 실패는 아직 명확히 드러난 적이 없다. 전쟁이 끝나면 종전이지만 나라가 없어지지 않은 한 그곳의 사람들이 먹고사는 경제 문제는 전쟁처럼 결말지어지지 않는다.

상황과 조건은 시시각각 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선택을 강요하고 받는다. 

대미 관계서 일본의 선택은 축복이기도 했고 재앙이기도 했다. 한국 전쟁은 영원히 농업 국가로 전락할 일본의 운명을 제조 산업 국가로 바꿔놨다.

하지만 승승장구한 일본이 세계 2위의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을 때 미국은 칼을 뽑았다. 엔화 환율을 단숨에 2배 반 넘게 쳐내는데 성공한 미국은 초기 반도체 시장의 패권자인 일본을 경쟁 생태계 밖으로 몰아냈다.


일본이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 경제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는 게 입증된 셈이다.

절대 패권 국가인 미국은 세계 2위 국가의 등장을 용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시장서 강력한 생산 경쟁력을 갖추게 된 이유와 중국이 반도체 시장서 축출돼야 하는 이유가 모두 미국의 결심에 달린 일이라는 논리다.

지금 중국 경제가 피멍 들고 있는 이유도 그런 미국 국익 우선 의사결정 결과라고 본다면 우리에게도 강 건너 불구경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국제결제시스템(SWIFT) 하에서 개별 국가 간 통화 이전은 중간 결제 은행(Intermediate Bank)을 거친다. 미국의 통제와 달러화 표시 없이 개별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통화 결제는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다.

미국이 약속하고도 진즉에 내다 버린 금과의 교환 결제(금태환 제도)는 금으로 담보되지 않는 달러를 금보다 더 강력한 화폐로 만들어놨다.

일본 엔화의 불확실한 운명을 예측해보는 심정이 편할 수 없다. 그건 일본 때문이 아니라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우리나라 경제와 원화 때문이다.

달러의 미래가 어디로 방향을 잡을지, 달러화가 언제까지 전 세계인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조용래는?]

▲전 홍콩 CFSG 파생상품 운용역
▲<또 하나의 가족>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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