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대통령의 뒷모습 ㉛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을 어찌할꼬

  • 김영권 작가
2023.05.03 09:25:45 호수 1425호

김영권의 <대통령의 뒷모습>은 실화 기반의 시사 에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을 다뤘다. 서울 해방촌 무지개 하숙집에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당시의 기억이 생생히 떠오른다. 작가는 무명작가·사이비 교주·모창가수·탈북민 등 우리 사회 낯선 일원의 입을 통해 과거 정권을 비판하고, 그 안에 현 정권의 모습까지 투영한다.



그렇다 보니, 즉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다 보니, 더욱 더 집을 우상 숭배하며 자기 인간성보다 한층 높은 고대광실 궁궐로 여긴다.

또한 그 때문에 전세방 거주자나 월세 지하방에 사는 사람을 자기보다 한 계급 낮은 천민으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집이 없으면 인간 이하로 취급받는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맘속 깊이 사무친 나머지 회심하여 집 없는 사람을 깔보는지 모른다. 

아방궁

이 좁은 땅에서라도 돈만 있으면 실제로 아방궁을 몇 채나 소유할 수 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새끼를 쳐 가격이 치솟아 오르므로 만고 땡이다.


이런 모습 또한 꼭 유럽인뿐만 아니라 움집에 사는 어느 소수민족 구성원이 봐도 지옥이리라.

인간의 몸과 마음이 편안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방 아니겠는가. 물론 각 개인의 장식 취미로 그 내밀한 공간을 아름답게 꾸민다면 꽃처럼 궁전처럼 피어나리라.

그런데 지금 한국의 도시에서는 돈이 없다면 제 아무리 고상한 이상과 인품의 소유자일지언정 어둑한 지하 셋방에서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나로서는 인격이나 인품이 고정불변의 진실이라 믿지 않고 어떤 이상향을 애써 꿈꾸며 살아오진 않았으나, 방과 나의 내면을 동일시하긴 싫었다.

아니다, 나의 내심에도 우중충한 그림자와 지저분함은 존재하기 때문에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다. 다만 타인에게 내 방을 보여 주는 건 극도로 기피했다.

그래서 예전에 어느 달동네의 셋방에 거주할 때 난 친척이든 친구든 일절 초대하지 않았었다. 

친척은 걱정하고 고향 친구는 나중에 가서 내가 하류 계층이란 소문을 퍼뜨리게 된다. 그러면 어쨌든 난 하나의 하급품 상자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진실을 추구하는 문우는 좀 다르겠지 싶어 어느 날 술 취한 김에 데려갔었는데, 희희낙락 잘 마시고 자고 나서 다음 날 술이 깨자 어딘지 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그런 지하방에 어찌 사람이 살 수 있느냔 듯. 

물론 나의 자격지심일지 모르고, 그 문우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도 ‘꾸밈없는 자연’이었는지 모른다. 저절로 나타나는 현상을 어쩌겠는가. 오히려 숨기는 게 어색한 허위이리라.

사회 풍조가 그렇게 변화돼 인간성마저 유린하고 있는 현실…. 이 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진보파와 보수파 사이에 끝내 큰 차이가 없었다. 중도파라는 자도 속내는 마찬가지였다. 


하숙은 뉘앙스가 좀 다른 편인 성싶다. 따지고 보면 월세방보다 나을 것도 없는데 사람과 동일시되진 않는다.

아마 구름처럼 곧 떠나게 될 나그네들의 둥지인지라 잠시 봐주는 건지…. 

“누추하지만 좀 들어오세요.” 

“아, 네!”

꼽추 아저씨의 말에 난 정신을 차리곤 방안으로 들어섰다. 아담하고 조용한 공간이었는데, 남자의 거처치고도 너무 꾸밈없이 휑뎅그렁해서 약간 멋쩍었다.

뭐 대단한 구경을 하리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직업이 금세공사이니만큼 아기자기하게 장식품도 몇 가지 갖춰 꾸며 놓지 않았을까 상상했던 것이다.

그런 건 전혀 없었다.

벽에 붙어 있는 남녀 배우의 화보는 누르칙칙하게 변색된 게 아마 전임자 또는 전전임 하숙인이 붙여 놓은 듯싶었다. 좀 전에 내가 기다리는 동안 슬쩍 정돈을 했는지 깔끔한 편이었다.

그래도 역시 어딘지 황량한 느낌이었다. 이불은 개어서 한구석에 놓였고 자그마한 앉은뱅이 서랍장 위엔 노트북이 얹혀 있었다. 이리저러 둘러봐도 책은 전혀 없었다. 


방과 동일시되는 내면…하급품 상자
몽상 섞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현실

그는 방바닥에 달력 한 장을 깔곤 봉지 속에서 캔맥주와 안주를 꺼내 놓았다. 각종 튀김류와 삶은 계란 그리고 구운 옥수수도 있었다. 통성명을 한 후 우리는 호젓한 하숙방에 마주 앉아 건배 없이 한 모금씩 마셨다. 

“하숙 식당 위층에서 이렇게 조용히 둘이 앉아 한잔하는 것도 꽤 낭만적이군요.” 

“소설 쓰신다고 들었는데 느낌이 다르시군요. 저는 그냥 삭막할 뿐인데요.” 

“하하,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런 식으로 몽상이라도 좀 섞지 않으면 견뎌내기 힘든 현실이니까요.”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모종의 능력이겠죠. 예술 혹은 기술이든지….” 

“누구든 조금씩이나마 그걸 활용하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요?”

“후훗, 메말라 버리면 활용할래야 활용할 수가 없죠.”

그는 알코올 음료를 들어 천천히 마셨다. 

“연금술사들도 자기 나름의 몽상을 많이 한다잖아요. 금세공도 일종의 연금술일 텐데….”

“후훗, 그렇다 하더라도 물질적인 연금술이겠죠. 물질 만능주의 속물들을 부귀로 장식해서 고상스러워 보이게 하는….” 

“하하, 자기비하 같은데요.” 

“물론 금뿐만 아니라 각종 보석의 원석을 가공해서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건 보람 있는 일이죠. 하지만 요즘 제 눈엔 금은 보석이 예술의 재료가 아니라 모두 돈으로 보여서 환장하겠어요.” 

그는 어둡고 씁쓸한 웃음을 흘렸다. 

“돈이면 거의 다 이뤄지는 세상이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이 따위로 마음이 추잡스러워져 돈에 홀려 괴로워서야 무슨 가치가 있겠어요. 차라리 콱 죽어 버리면….” 

“그러시면 안 되죠. 괴롭더라도 견뎌내서 마음과 영혼의 연금술을 이뤄내셔야죠. 요즘 대충 타협하며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많은 세상인데, 양심의 고뇌는 고통스럽지만 오히려 그래서 별빛처럼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네?”

“때때로 난 내 자신이 괴물인 듯 느껴지곤 해요. 흐흐….” 

사람과 괴물

난 좀 뜸을 들이다가 평소의 생각을 조용히 피력했다.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는데도 아직 여전히 고집을 피우고 있죠. 특히 특정 종교 단체에서 그런 아집을 부리는데 신께서 웃으실 노릇인 것 같아요. 그들이 만들어낸 신이 아닌, 진정한 우주 법칙의 주재자인 가짜 위의 참 신….”


<다음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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