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영화감독을 닮은 대통령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2022.10.11 10:59:45 호수 1396호

전 정부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은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실장이나 안보실장 및 수석비서관이 누군지 잘 알았다. 그러나 현 정부 대통령실 참모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전 정부까지의 청와대 참모는 노출이 많고 현 정부 대통령실 참모는 노출이 적어서일까? 

김정남, 이회택, 차범근, 허정무, 홍명보 등은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 이름이다. 한편, 신성일, 백일섭, 노주현, 윤여정, 김영옥 등은 1970년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 이름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축구선수는 모두 선수 생활을 마치고 국가대표 축구 감독을 역임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는 한 명도 영화감독의 반열에 서지 못했다.

축구선수는 선수 수명이 짧아 30대에 은퇴하고, 4·50대 건강한 나이에 감독직을 수행할 수 있고, 운동장에서 경기하는 11명의 포지션에 대한 이해도와 기술을 선수 경험을 통해 잘 알아 감독직을 수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기 때문에, 감독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코스다.

그러나 영화배우는 배우 수명이 길어 80대까지도 배우 활동이 가능해 감독까지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영화마다 주제와 배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유명 배우라고 해서 감독직을 수행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영화감독은 배우로 시작해서 감독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대학 때부터 전공하거나 아니면 시나리오 작가나 CF 감독이나, 뮤직비디오 감독에서 자신의 감독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화감독은 배우로서 경험이 전혀 없어도 시나리오나 촬영, 조명 등의 테크놀로지에 대해 해박한 지식만 있으면 될 수 있고, 카메라 앞의 행위자인 배우에 대한 관찰자로서 촬영 현장에서 결정만 잘 내리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윤석열 대통령은 선수 경험이 필요한 축구 감독보다 배우 경험이 없어도 가능한 영화감독을 닮은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정치 경험도 거의 없지만, 25년 동안 대한민국 검사로 근무하면서 정치권의 생태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읽었고, 특히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면서 정치의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대통령 되는 과정이 영화감독과 닮았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나라 현대사를 이끌어왔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은 풍부한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돼 축구 감독을 닮은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배우를 거치지 않고도 가능한 영화감독을 닮은 윤 대통령이기에, 우리 국민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대통령의 통치와는 다른 형태의 통치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이 축구감독이 아닌 영화감독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축구 경기팀은 ‘감독-코치-선수’로 구성돼있어 감독은 상징적인 리더로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팀 구성과 우승을 향한 큰 그림을 그리고 코치는 선수에게 기술과 전략을 가르치고, 선수는 감독과 코치의 지도를 잘 따르면 된다.

같은 맥락으로 축구 감독 스타일의 전 대통령들은 코치격인 청와대 참모가 전략을 세우게 하고, 선수격인 장관이 청와대 참모의 지도를 잘 받도록 관리하면서 국정운영을 하면 됐었다.


그러나 영화제작팀은 ‘감독-스텝-배우’로 구성돼있어, 감독이 스텝을 통해 배우를 지도하지 않고, 감독이 스텝의 도움을 받아 직접 배우가 연기를 잘 하도록 지도하면 되기 때문에, 영화감독 스타일의 윤 대통령은 영화에서 스텝격인 대통령실 참모의 도움만 받고, 배우격인 장관을 직접 지도하거나 장관 스스로 일을 잘하도록 도와주는 차원에서 국정운영을 하면 된다. 

윤 대통령이 청와대 명칭을 대통령실로 바꾸고 기구를 축소해 2실5수석으로 개편한 것과 각 분야의 전문가를 장관으로 임명해 장관이 대통령실 참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장관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영화감독을 닮은 윤 대통령에 어울리는 조치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감독이 항상 감독보다 더 인기가 있고 출연료도 높은 스타 배우를 내세우듯이, 윤 대통령이 스타 장관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 역시 영화감독을 닮은 대통령에 어울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결론적으로, 윤정부의 정체성은 ‘감독-스텝-배우’ 시스템으로 작동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대통령실 참모를 잘 모르는 것은 참모가 노출이 덜 돼서가 아니라, 윤 대통령이 영화감독을 닮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윤정부의 스타일을 보니 윤 대통령은 축구감독으로, 대통령실 참모는 코치로, 각 부처 장관은 선수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윤정부가 윤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감독-스텝-배우’ 시스템으로 작동되지 않고, 윤 대통령에게 어울리지 않는 ‘감독-코치-선수’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국정운영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대통령 지지율도 낮다.

윤정부가 지난달 13일 미국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단연코 스타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이정재였지,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만든 영화감독이나 스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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