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붉은 선

2022.05.02 11:32:44 호수 1373호

페데리코 람피니 / 갈라파고스 / 2만7000원

 

이 책은 저자가 외신 특파원으로서 전 세계를 누볐던 때로 되돌아간 듯 방대한 여행기 형식으로 서술되었다.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 대한 사적인 관점, 해외에서 지내며 쓴 일기, 취재를 통해 작성한 보고 기사와 각종 조사, 해외의 지도자를 수행한 경험, 국제 정상회담 등 수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현재 세계에 대한 날카롭고 우아한 지정학적 분석과 통찰을 벼려냈다.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지, 우리가 누구이고 우리의 국가적 운명은 무엇인지 합리화해주는 이념들을, 장소에 대한 서술을 포함한 맵핑으로 교차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대원칙에 따라 그는 우리 주변의 모든 위기, 즉 ▲지중해 난민에서 한반도의 갈등 구도까지 ▲브렉시트에서 트럼프까지 ▲이슬람 테러리즘에서 기후변화까지 ▲중국과 러시아의 독재에서 신보호주의까지 ▲유토피아를 향한 교황 프란치스코의 ‘불가능한 임무들’에서 소셜미디어의 디스토피아까지 담아내는 등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본질을 지리적 역사와 현재를 설명하고 약 서른 장의 ‘붉은 선’ 지도 위에 유려하게 펼쳐 보인다.
저자는 이상의 지정학적 붉은 선들을 수놓을 때 균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이 균형은 세계를 시간과 공간 양쪽 측면에서 폭넓게 바라보고 사유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가 당면한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심각한 문제들에 대해 그는 “결코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도 절망하거나 단언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트럼프’로 대표되는 전 세계적 우경화에 대해서도 ‘이 모든 게 다 트럼프 때문’이라고 하는 단순하고 손쉬운 함정에 빠지지 말 것을 요구한다.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문제는 그의 등장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계가 미친 것처럼 보일 때, 모든 불확실성이 확산될 때 우리는 무엇에 의지할 수 있을까?” 묻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한 가지 답은 ‘고전’이다. 이 모든 ‘미친 세계’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같은 19세기의 위대한 작품들에 이미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독서는 “이미 모든 것과 그 모든 것의 반대를 목격한, 우리보다 현명하고 명쾌한 한 증조부의 가르침을 마음 깊이 새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생각이 지나치게 나이브하거나 원론적으로 보일 우려 또한 있지만, 세계를 시간과 공간 양면에서 사유하고 미래에 대비하려는 이에게는 꼭 필요한 자세일 수 있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은 지극히 짧은 이야기로, 지구와 인간 식민주의 시대의 단 몇 초에 해당하는 극소한 부분에 해당한다”면 “즉,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일어났고, 우리는 불과 수천 분의 1나노초의 순수한 생존 논리에서 벗어나 치명적인 기술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도마뱀과 같은 대뇌피질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지금 전 세계에서 “우리의 동료들이 갈색이나 보라색 대신, 노란색이나 녹색에 투표한다고 해서 놀라워해야 할까?” 하루하루 절망을 갱신하는 우리에게 저자가 툭툭 던져놓는 질문들이다. 성마른 분노와 갈라치기에서 벗어나 멀리, 넓게 볼 때에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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