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도 웃을' 불량 호신용품 논란

2021.12.07 09:31:02 호수 1352호

스토커에 최루액 쏘니 ‘찔끔’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강력 범죄 사건이 보도될 때마다 호신용품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호신용품이 실전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도망가는 것이 최상일까.



경찰에 대한 불신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15일, 인천 흉기 난동 사건에서 한 경찰관은 범인을 확인하고도 현장을 이탈해 논란이 일었다. 같은 달 19일에는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스토킹 피해자가 스마트 워치를 작동시켰지만 정확한 위치가 전송되지 않아 피살당했다. 

판매 증가

경찰의 부실 대응은 국민들의 불안감을 키운다. 그에 따라 ‘내 몸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호신용품판매가 급증했다. 

전자상거래업체 11번가에 따르면 지난달 1일부터 25일까지 호신용 삼단봉, 경보기, 스프레이 등 호신용품 판매량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6% 증가했다. 전자 호루라기, 주먹에 끼워 상대를 가격할 수 있는 쇠붙이인 너클·가라테의 야와라스틱에서 유래된 호신용 열쇠고리 쿠보탄 등도 포함됐다.

경보기는 캐릭터나 날개 모양이라 겉보기에는 일반 액세서리 같지만, 위기 상황에서 핀을 뽑으면 100㏈ 이상의 경보음이 울린다. 호신용 스프레이도 휴대하기 간편할 정도로 작지만, 최소 3m에서 최대 5m까지 분사가 가능하다. 


다른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호신용품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후추 스프레이, 미니 가스총 등 방어용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초미니 경보기는 가방에 장착할 수 있는 열쇠고리형 경보기다. 

이런 호신용품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센스 있는’ 선물용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오픈 마켓에 등록된 한 여성용 호신 스프레이와 미국산 유명 페퍼 스프레이는 구매평이 각각 2100개, 1000개가 넘을 정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호신용품에 대한 실효성을 논란을 지적하고 있다. 위험한 상황에서 호신용품을 정확하게 사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갖고 다녀도 실상황서 무용지물
경찰 못 믿어…안 쓰니만 못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전기충격기다. ‘무기류’로 분류되는 전기충격기는 경찰에 소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제품과 그렇지 않은 제품으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강력범죄 전과자나 미성년자, 정신질환이 있을 때 허가가 제한된다. 

그렇지 않은 제품들이 주로 온라인상에서 팔리고 있으며 가격대는 20만원 내외다. 허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제품들은 일정 전압 이하이기 때문에 따로 단속이나 신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바꿔 말하면 전압이 낮기 때문에 실전용으로 쓰이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업체들은 이 같은 점을 쏙 빼놓고 ‘경찰에 허가받지 않고 써도 된다’는 점만 강조해 판매하고 있다. 

호신용 스프레이는 비바람이 거세거나 방향, 거리에 따라 사용하는 데 있어 제약을 받는다. 삼단봉이나 너클의 경우 상대방의 공격성을 더 돋구게 하거나 빼앗길 경우 오히려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시민이 제대로 된 교육이나 훈련을 받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호신용품을 소지하고 있다는 생각에 심리적인 안정감만 가져다줄 뿐 실전에 제대로 활용하기엔 무리가 있다. 

경호업계 한 관계자는 “공격(호신) 용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도 교육이 필요하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호루라기나 스마트폰에 원버튼 112신고 앱을 설치하는 게 더 효과적”라고 말했다. 

실제 호신용 스프레이를 구매한 사용자들은 “1~2m 거리까지 분사된다는 광고와는 달리 30㎝도 채 나가지 않고 내용물이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수준”이라는 후기를 남겼다.


불량품에 사용법 몰라 
방향·거리 따라 제한

매뉴얼대로라면 성추행·성폭력 등이 발생할 경우 “불이야” 등 소리를 외친 뒤 호신용 경보기를 사용해 주변에 위험 발생 상황을 알리라고 안내한다. 

통계 조사 등 가정방문 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은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여성 통계 조사자가 혼자 가구를 방문할 때 남성 조사 대상자로부터의 폭력 등으로 인한 대응이 어려운 탓이다. 대응하기엔 현실과 동떨어진 매뉴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계청도 ‘부득이한 경우’에 2인1조로 조사하도록 하지만 ‘2인1조 동행 출장 시 업무량 증가 등으로 인한 직원 부담을 고려해 실시하라’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다 보니 야간에 가구 조사를 해야 할 경우 남편과 동행하거나, 동료 조사관들과 ‘품앗이’하는 실정이다.

통계조사관에게 지급되는 안전용품도 호신용 스프레이와 경보기 정도다. ‘삑삑’ 경보음이 울리는 사실상 호루라기 대체 용품이다.

도망이 최고?

이창훈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는 “1인 가구에 대한 성범죄의 가장 큰 문제는 범죄 당시 도움 청할 방법이 없어 다른 범죄보다 피해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소위 잘사는 지역에서는 CCTV 등 치안 시스템이 잘 설치됐지만 1인 가구를 포함한 원룸 밀집 지역은 범죄 예방 인프라가 열악해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1인 가구 밀집 지역 위주로 경찰과 지자체에서 범죄 예방 단속을 수시로 진행하는 것도 근본적인 개선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9do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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