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특집⑦> 급변하는 명절 신풍속도

2019.01.30 09:51:18 호수 1203호

가족과? 나홀로∼ 제사는? 해외로∼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시대와 사회의 변천에 따라 명절문화도 변하고 있다. 고향 대신 해외여행을 떠나는가 하면 제사상에 패스트푸드가 올라오기도 한다. <일요시사>에서는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맞아 새롭게 변해가는 ‘신풍속도’에 대해 알아봤다.
 

▲ 설 차례상


매년 설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는 귀향객이 늘어나 철도와 고속도로가 몸살을 앓는 등 전통적인 방식으로 설 명절을 쇠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예전 같지 않다. 3~4일 정도의 연휴 기간에 스키, 온천을 즐기거나 가족 단위로 외국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냥 쉬는 날

특히 평소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직장인들은 설 전후로 한 휴가기간이 바로 ‘황금연휴’다. 공무원과 일반 회사원들은 설 연휴가 3일이지만 일부 직장에선 월요일이나 금요일을 끼워 휴무를 연장하기도 한다.

직장인 A씨는 올 설 연휴도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난다. 짧은 연휴 탓에 장거리 여행이 부담스러워 올해는 가까운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오는 여정을 택했다. A씨는 “이미 4∼5년 전부터 명절에 앞서 미리 찾아뵙고 연휴는 대부분 여행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격식보다는 실속을 차리는 차례 문화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예로부터 추석 차례상은 가짓수도 다양하고 양도 푸짐하게 올려야 미덕이라 여겼다. 하지만 요즘은 외형적 틀에서 벗어나 각자 형편에 맞게 상을 차려서 명절 스트레스 없이 온 가족이 즐겁게 보내자는 명절 신풍속도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직장인 B씨는 이번 명절에 주문형 차례상을 맞췄다. 주문형 차례상은 전문업체가 차례 음식을 모두 만들어 배송해주는 것으로 다양한 음식을 기호에 맞게 고를 수 있다. 주문자는 배달된 음식을 데워 차례상에 올리기만 하면 된다. 음식을 직접 준비하는 것보다 비용 면에서도 저렴하다.

B씨는 “네 식구밖에 안 되는데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것보다 시간을 아껴 가족여행을 다녀오는 게 낫겠다 싶어 지난해 설부터 주문형 차례상을 이용하고 있다”며 “과일류만 따로 준비하면 되니 너무 편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신풍속도서 더 나아가 아예 차례를 생략하는 가정도 적지 않다. 주부 C씨는 3년 전부터 남편의 제안에 따라 명절 차례는 지내지 않고 연휴 전에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성묘만 한다. 명절 당일 서울에 사는 자녀들이 오면 다 함께 외식을 하기 때문에 명절 음식을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다.

C씨는 “차례를 지내지 않으니 동서네와 모여 외식을 하고 과거 음식을 준비하던 시간에 제대로 쉴 수 있다”며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해서 조상을 섬기는 마음이 없어진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설 하면 생각나는 것이 세배다. 세배는 무사히 겨울을 넘기고 새 해를 맞은 것을 기념해 어른들에게 문안 드리는 것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인사를 찾아온 이들에게 차례음식 등을 건네며 덕담을 주고 받은 것이 현재 세뱃돈의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고향 대신 여행…주문형 차례상 인기
세뱃돈은 모바일로…펀드통장 선물도

해방 전까진 과일이나 떡 등을 싸주는 일이 많았지만 이후 복주머니에 현금을 넣어주는 풍습이 생겨났다. 세뱃돈은 주로 신권이나 지갑서 한 번 접힌 정도의 깨끗한 돈으로 주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새해 첫날 받는 돈이니 부정 타지 말고 기분 좋게 사용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최근에는 변화의 속도만큼이나 세뱃돈의 형식도 많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관련 앱을 통해 손쉽게 세뱃돈을 선물할 수 있고 종이 상품권 대신 모바일 상품권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뱃돈으로 빳빳한 신권을 주는 대신 펀드 통장을 만들어주는 광경도 그리 낯설지 않다. 세뱃돈이 당장 아이들의 군것질에 사용되지 않게 펀드 계좌를 만들어 향후 대학등록금, 혹은 결혼자금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유망한 기업에 장기 투자하면 예금에 비해 자산을 불리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투자와 목돈 마련의 개념을 동시에 정리할 수 있고 부모들은 은행 통장에 돈을 넣어두는 데 익숙했던 오랜 투자 습관과 이별하는 계기도 될 것이다.
 

▲ 어린이펀드는 최근 떠오른 설 세뱃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주니어 상품으로 어린이펀드가 있다. 시중 금융사들은 다양한 종류의 어린이 펀드를 판매하고 있다. 운용 방식은 일반 펀드와 유사하지만 보통 10년 이상 목표로 투자하는 상품인 만큼 장기적인 안목으로 운용된다. 

증권사를 비롯한 각 판매사는 상품 가입자에게 다양한 이벤트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은 펀드에 투자하면서 교육 및 여가 활동에 참여할 기회도 잡을 수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모바일 상품권의 수요가 증가한 데다 창의적인 상품이 속속 나타나면서 세뱃돈 대신 평소 필요한 것들을 꼼꼼히 체크해 선물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세뱃돈의 진짜 의미를 자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바람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평소에는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혼밥족’도 자신들만의 명절을 보낸다. 소셜다이닝 사이트에는 ‘함께 저녁 먹을 분 찾습니다’ ‘외롭지 않은 명절 보내기’ 등의 글들이 올라왔다. 

혼밥족들은 사람들이 각자 한두 가지의 음식을 갖고 와 나눠 먹는 서양식 포트럭(Pot-luck) 파티도 즐긴다. 집에서 남는 음식을 가져와 모이는 모임의 주선자 D씨는 “나는 군고구마를 준비하기로 했다. 고향 어른들은 ‘밥 잘 챙겨 먹냐’고 걱정하시지만 우리는 여기서 나눠 먹으면서 즐겁게 논다. 어른들의 따분한 질문에 영혼 없이 대답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보다 우리끼리 있는 게 훨씬 좋다”고 말했다. 

세배도 패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에 따라 변화를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갈등도 있을 수 있겠지만, 반드시 하나의 방식으로만 명절을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서서히 바뀌고 다양한 방식이 인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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