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전선 헐레벌떡‘쩐 구하기’ 왜?

2009.01.06 11:37:31 호수 0호

꽉 막힌 ‘돈맥경화’엔 현금이 약

대한전선이 ‘돈 구하기’에 바쁘다.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가중되고 있는 탓이다. 돈 가뭄에 시달리는 대한전선으로선 ‘50년 연속 흑자’기업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한시가 급한 상황.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금고를 채우는 수밖에 없다. 우선 돈 될 만한 자산들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정리하고 있다. ‘밑 빠진 독’인 비주력 자회사도 예외가 아니다. 미련 없이 내던지고 있다. 급기야 부랴부랴 둥지까지 내놨다.
 

대한전선은 최근 부동산 개발업체인 디앤디에스와 서울 중구 회현동 본사 사옥을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한전선이 이번에 매각하는 부동산은 토지 면적 5036㎡, 건물연면적 3만1284㎡ 규모다.
매각 금액은 950억원.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예상보다 낮은 액수다. 2007년까지만 해도 이 빌딩은 최소 1000억원을 호가했었다는 후문이다. 대한전선은 새 보금자리조차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둥지’를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대한전선이 돌연 사옥을 매각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한전선은 ‘50년 연속 흑자’기업으로 유명하다. 1955년 설립 이후 지난해까지 단 한 해도 적자를 내지 않았다. 그동안 1·2차 오일쇼크, IMF 등 국내 경제를 덮친 악재가 한둘이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이적인 기록이다.
대한전선은 2000년대 들어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며 몸집을 급격히 불려왔다. 기존 전선업 중심에서 해외투자, 건설, 홈네트워크, 레저 등으로 사세를 키운 것. 대한전선은 2002년 무주리조트, 2003년 트라이브랜즈(옛 쌍방울), 2005년 대한위즈홈과 대한테크렌 등을 잇달아 인수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된 지난해에도 TEC건설(옛 명지건설)과 남광토건 등을 인수하는가 하면 국내 최대의 렌탈전문기업인 한국렌탈 등을 세웠다.
문제는 대한전선의 거침없는 행보가 차입금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 주력인 전선부문을 제외한 자회사들이 부진을 면치 못해 부담을 부채질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9월말 현재 대한전선의 부채비율은 IMF 이후 정부의 부채비율 가이드라인인 200%를 훌쩍 넘어선 221.0%다. 이는 2007년 9월말 118.7%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아진 수치다.
증권가에선 대한전선의 올해 순차입금 규모를 1조3000억∼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일각에선 1조5000억원을 상회할 것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이자비용만 1000억원이 넘는 전체 순차입금 가운데 대한전선이 올해 상환해야 하는 금액은 9000억원 이상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남강토건 등 인수 과정에서 늘어난 차입금이 이자비용 증가로 이어지면서 전체적인 차입금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게다가 자회사 리스크 부담 요인까지 겹치면서 올해 목표주가도 하향조정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대한전선은 유동성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선 어떻해서든 금고를 채우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에 ‘급매물’로 사옥을 매각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산·자회사 정리 유동성 확보… 사옥도 ‘급매물’
거침없는 M&A 후유증 경계 “차입금·부채율 급증”

대한전선은 앞서 지난해 9월 안양공장을 5500억원에 매각, 부채비율을 줄인 바 있다. 이와 함께 남부터미널 부지, 트라이브랜즈, 대한벌크터미널, 대경기계 등의 매각작업도 진행 중이며, 최근 우선주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를 검토하는 등 현금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또 지역의 강력 반발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확보를 이유로 전북 무주 기업도시 조성사업을 전면 포기하는 결단을 내리기도 했다. 대한전선은 당초 무주군 안성면 공정·금평·덕산리 일대 767만㎡에 2020년까지 1조4171억원을 투입해 관광·레저형 도시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특히 대한전선은 최근 위기관리 능력을 높이기 위해 관리담당 부사장 직책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김창린 트라이브랜즈 대표이사를 선임했다. 김 신임 부사장은 서강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 MBA를 마친 뒤 장기신용은행 등을 거쳐 2004년 트라이브랜즈 CFO로 재직하다 2007년 3월부터 트라이브랜즈 대표를 맡아왔다.

사실 대한전선은 현금 보유를 최우선시해 왔다. 이는 고 설원량 회장의 경영방침에서 기인한다.
대한전선은 대내외 여건으로 여러 차례 사업을 철수한 뼈아픈 과거가 있다. 1968년 TV, 냉장고 등 가전과 반도체 사업 등에 진출했지만 삼성그룹과 LG그룹 공세에 견디지 못하고 1983년 대우그룹에 이를 매각했다. 1990년대 초엔 알루미늄 열연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쓴맛을 보고 과감하게 접었다.
설 회장은 이처럼 사업이 어려워질 때마다 은행을 비롯해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을 체험하면서 ‘평소 현금을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말 IMF 당시 국내 대기업 평균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설 때도 대한전선은 200%대를 넘지 않았다. 오히려 풍부한 현금을 바탕으로 신규사업에 진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설 회장은 전선사업이 사양화로 접어들고 있다고 판단해 그동안 비용절감 등으로 비축한 현금을 사업다각화에 쏟아 부었다”며 “2004년 9월 설 회장이 타계할 당시 유가족들이 1355억원의 상속세를 주식 처분 없이 현금으로 모두 납부한 것도 현금을 중요시하는 기업 방침이 녹아있다”고 말했다.
대한전선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현재 유동성 위기에 몰린 게 아니라 올해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선제 대응 차원이란 설명이다.

회사 관계자는 “2009년도 경제위기의 그늘이 짙게 깔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내부적으로 이를 대비하기 위해 미리 자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방침을 세웠다”며 “이에 중장기 사업계획에 맞춰 비주력 사업 부문을 정리하거나 자산매각을 통해 현금 마련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채 증가 등 유동성 위기 우려에 대해 “단순히 자금 유동성 문제 때문에 자산을 매각하는 게 아니다”라며 “안양공장 부지 유동화로 인한 현금 유입액만 1조3000억원 안팎에 달하는 등 현재 추진 중인 매각작업만 마무리돼도 시가총액의 절반에 가까운 현금으로 보유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대한전선 새 둥지는?
안양 혹은 강남


회현동 사옥을 매각한 대한전선의 새 둥지는 어디일까.
대한전선은 현재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로 알려졌다. 일단 대한전선은 본사 사무실을 이전하지 않고 그대로 현 사옥을 임대해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안양 또는 강남 이전설이 나온다. 안양공장 부지와 서초구 남부터미널 부지가 그곳이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9월 안양공장 부지를 특수목적법인인 ALD PFV에 매각했지만, 땅을 개발한 수익을 거둬들이기 위해 이 법인의 지분 47%를 보유하고 있다. 현재 안양시가 공업 용지에서 준주거지역 등으로 용도 변경을 해주지 않아 개발이 지연되고 있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오는 2011년 완공 목표로 안양공장 부지개발에 나선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계열사들이 입주할 신규 사옥도 짓는다고 밝힌 바 있다.
대한전선은 2003년 800억원에 남부터미널 부지도 매입해 복합상업시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매입 당시 대한전선 안팎에선 본사를 이 부지로 옮기는 게 아니냐는 강남 이전설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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