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컴백’손길승… 백전노장의 아주 특별한 임무

2008.12.16 09:36:06 호수 0호

‘SK 노병’이 돌아왔다. 주인공은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 4년 전 ‘검풍’에 휩쓸려 SK그룹을 떠난 그가 그룹 핵심계열사인 SK텔레콤의 명예회장으로 일선에 복귀했다. 손 명예회장은 최종현-최태원 2대에 걸쳐 때론 ‘왕의 남자’로, 때론 ‘총수 그림자’로 호흡을 맞춰온 명실공히 SK그룹의 산증인이다. 그만큼 그의 복귀는 의미가 깊다. 단순히 명예회장 타이틀이지만 존재감만으로도 충분히 SK그룹, 나아가 재계 전체가 술렁일 만하다. ‘백전노장’손 명예회장은 왜 다시 친정으로 돌아온 것일까.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에 그룹 핵심계열사 명예회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SK텔레콤은 지난 8일 손 전 회장을 SK텔레콤 명예회장으로 추대했다. 이날 손 명예회장은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대식을 겸한 조촐한 간담회를 가졌다.



이에 따라 손 명예회장의 역할론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SK그룹이 손 명예회장을 영입한 이유가 그것이다. SK그룹 측은 손 명예회장 추대에 대해 단순한 예우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손 명예회장이 그룹 발전에 기여한 공적을 높이 사 명예회복 차원에서 정중하게 추진된 사안”이라며 “앞으로 명예회장 타이틀대로 그룹 발전을 위한 경영 고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손 명예회장도 “경영에는 전혀 간섭할 뜻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손 명예회장은 “SK그룹이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을 잘 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현안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며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있는 듯 없는 듯 SK그룹과 국가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하동 출신의 손 명예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로 유명하다. 진주고,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1965년 SK그룹 첫 공채로 선경직물(현 SK네트웍스)에 입사한 이래 선경그룹 경영기획실장과 유공해운(SK해운) 사장, SK텔레콤 회장 등을 역임했다.

“경영 간섭 NO!”


유공(현 SK에너지),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등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고 최종현 전 회장의 눈에 들어왔다. 이후 손 명예회장은 ‘최종현 분신’ 또는 ‘그림자’로 불릴 정도로 최 전 회장의 믿음을 받았다. 손 명예회장은 “최 전 회장과는 서로 눈빛만 봐도 통하는 사이”라고 회상하기도 했다.

‘무한신뢰’를 주고받은 이들의 관계는 1998년 8월, 최 전 회장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38세란 젊은 나이에 ‘SK 지휘봉’을 물려받은 최태원 회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손 명예회장이 그룹 회장에 오른 것도 이때다.

재계 관계자는 “30대의 나이에 10대 그룹 총수에 오른 최 회장에 대한 의문과 우려가 적지 않았지만 아버지의 영원한 친구이자 파트너인 손 명예회장이 그를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해준 후견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최태원-손길승’오너와 전문경영인간 투톱체제는 절묘한 호흡을 자랑하며 지금의 SK그룹을 있게 했다. 이들의 파트너십은 위기 때 빛이 났다. 1990년대 후반 IMF의 혹독한 시련기를 완벽한 구조조정으로 잘 넘긴 사례가 대표적이다. 오히려 당시 SK그룹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룹 측이 이번에 손 명예회장을 위촉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원로에 대한 예우와 경영노하우 활용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복안이다.

SK그룹 관계자는 “그룹의 오늘을 만든 원로에 대한 예우와 함께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대내외 경영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서 손 명예회장의 자문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 명예회장은 2003년 3월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분식회계 사태와 계열사 부당 지원,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등에 휘말려 ‘영어의 몸’이 되면서 결국 이듬해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그는 2003년 2월 오너가 아닌 전문경영인 출신으로는 드물게 오른 전국경제인연합 회장직에서도 물러났다.

손 명예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서울구치소에서 2004년 1월부터 8개월가량 수감생활을 하다 곧바로 보석됐고, 이어 항소심에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아 석방됐다.

이후 지난 8·15 특사로 최 회장과 함께 사면을 받을 때까지 공식석상은 물론 비공식적인 자리에도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접촉하는 대내외 인사 또한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 회장과의 교감은 끊이지 않았다는 게 그룹 관계자의 전언. 손 명예회장은 사면 뒤 워커힐호텔에 집무실을 꾸렸다. 이도 최 회장이 직접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손 명예회장은 SK텔레콤에 별도의 집무 공간을 만들지 않을 예정이다. 손 전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 최 회장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린동 SK그룹 본사에 단 한 번도 출입한 적이 없다는 후문이다.


‘위기, IMF 처럼…’

이를 두고 한때 손 명예회장과 최 회장의 관계가 소원하다는 얘기가 나돌았지만 최 회장은 꾸준히 손 명예회장을 찾아 조언을 구했다. 급기야 최 회장이 손 명예회장에게 SK텔레콤 명예회장직 추대를 제안했고 손 전 회장은 여러 차례 고사 끝에 결국 수락하게 됐다.

SK그룹 관계자는 “손 명예회장이 최 회장의 경영에 누가 될까 대외행보를 전면 자제했지만 2006년 SK그룹 창립 50년 사사 발간과 지난 8월 최 전 회장 10주기 추모식의 추모위원장을 맡는 등 사실상 그룹 고문 역할을 수행해왔다”며 “다만 손 명예회장의 추대가 과거 최 회장과 쌍두마차 체제처럼 경영일선 복귀 의미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SK그룹 숨은 그림자의 복귀는 그룹의 경영전략 변화로 감지된다. 손 명예회장이 향후 SK그룹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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