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싸움 벌인 재벌가 어디?

2011.11.01 09:00:00 호수 0호

내로라하는 집안이면 빠짐없이 ‘멱살’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금호가 외에도 많은 재벌들이 ‘집안싸움’을 벌였다. 재계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이면 예외 없이 멱살을 잡았다. 현대그룹이 그 대표적인 예다. 고 정주영 창업주는 8남(몽필-몽구-몽근-몽우-몽헌-몽준-몽윤-몽일)을 뒀다.

범현대가는 2001년 정 창업주가 타계하자마자 ‘왕자의 난’과 ‘숙부의 난’ ‘시동생의 난’ 등의 분란을 잇달아 겪은 뒤 뿔뿔이 흩어졌다. 두산가도 마찬가지다. 고 박두병 초대회장은 6남(용곤-용오-용성-용현-용만-용욱)에게 ‘공동소유와 공동경영’원칙을 강조했고, 장-차-3남이 차례대로 그룹 회장을 맡는 형제경영의 전통을 이어갔다. 하지만 4남 때 브레이크가 걸렸다.

고 박용오 전 회장은 2005년 자신을 내몰려는 형제들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사건으로 두산가에서 퇴출당했고, 형제들 사이에서 ‘왕따’로 외롭게 지내다 2009년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진가 2세도 경영권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고 조중훈 창업주가 2002년 세상을 뜨자 유산배분 절차를 밟던 양호-남호-수호-정호 형제들은 장·3남과 차·4남으로 각각 편을 나눠 갈등을 겪었고, 급기야 법정다툼으로 번졌다.

한진가 형제들은 유언장 진위, 정석기업 주식 양도, 면세점 납품권, 선친 기념관 건립, 김포공항 주유소 등을 두고 소송과 항소를 반복하다 모두 일단락됐지만 단 한 건도 자의적으로 손을 잡은 적이 없다. 모두 법에 의존해야 했다.

대한전선 일가는 친자와 이복형제 간 갈등을 빚었다. 고 설경동 창업주는 4남(원식-원철-원량-원봉) 중 후처의 자녀인 3남 고 설원량 전 회장에게 그룹의 적통을 물려주자 이복형제들이 반발하면서 갈라섰다. 오래 전 법적 분쟁이 이미 종결됐지만 앙금이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대성가 3형제는 경영권 분쟁을 겪은 뒤 10년째 등을 돌리고 있다. 고 김수근 창업주의 세 아들(영대-영민-영훈)은 2001년 김 창업주의 작고 당시 지분 다툼을 벌인 이후 발길을 끊고 있다. 이들은 2006년 김 창업주의 부인 고 여귀옥씨가 타계하자 어머니의 유산상속을 놓고 또다시 갈등을 빚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형제들은 유산정리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왕래가 없다. 최근엔 ‘대성’사명을 놓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다.

달랑 형제가 둘만 있는데도 혈투를 벌인 집안도 있다. 한화가는 1981년 고 김종희 창업주의 타계 후 승연-호연 형제의 경영구도에 별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1992년 분가 과정에서 경영권 다툼이 돌출됐다. 김호연 전 빙그레 회장이 형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을 상대로 재산권 분할 소송을 제기한 것. 무려 30여 차례나 공판이 열리는 등 지루하게 흘러간 이 송사는 결국 1995년 모친의 칠순 잔치를 계기로 두 형제가 손을 잡으면서 종결됐다.

롯데가의 경우 창업세대 형제들이 맞붙었다. 신격호 회장과 그의 동생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1996년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 소유권을 놓고 한바탕 싸움을 벌였다. 형제는 조금씩 양보하는 선에서 4개월 만에 분쟁을 끝냈다. 대림가는 대림통상 경영권을 놓고 ‘배다른’삼촌과 조카 사이인 이재우 대림통상 회장과 이부용 전 대림산업 부회장이 맞붙은 ‘숙질 간 전쟁’을 벌여 그 뒤로 서로 모른 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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