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농약테러 내막

2018.04.30 11:03:13 호수 1164호

소주, 사이다 이어 고등어탕까지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경북 포항서 농약 고등어탕 사건이 일어났다. 상주의 농약 사이다, 청송의 농약 소주 사건에 이어 또다시 발생한 농약 범죄다. 일부 농약은 독성이 강해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일요시사>가 이번 포항 사건을 중심으로 그동안 일어났던 농약 관련 범죄를 재조명해봤다.
 



최근 경북 포항의 한 마을서 농약 관련 사건이 발생했다. 누군가 마을 주민이 먹을 고등어탕에 농약을 넣은 것. 고등어탕은 지난 20일 저녁 한 주민이 인근지역서 열리는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끓여놓은 것으로, 20여명이 먹을 수 있는 분량이었다.

범행은 다음날 오전 아침을 준비하던 주민 한 사람이 국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으면서 탄로 났다. 해당 주민은 고등어탕서 나는 냄새를 수상하게 어겨 맛을 본 후 구토 증세를 보이는 등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국을 삼키지 않고 뱉어내면서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대형참사 직전…

경찰은 지난 23일, 살인미수 혐의로 마을 주민 A(68)씨를 구속했다. A씨는 21일 오전 4시40분께 마을 공용시설에 끓여놓은 고등어탕에 농약 20㎖를 넣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탐문수사와 CCTV 분석을 거쳐 21일 오후 A씨를 붙잡았다.

A씨는 최근 마을 부녀회장을 그만둔 뒤 주민들이 모여 음식을 만들 때도 부르지 않자 무시당한다고 생각, 감정이 상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A씨 집에 남은 농약과 범행에 사용한 드링크 병을 확보해 분석한 결과 고등어탕에 넣은 농약과 같은 성분인 것을 확인했다.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가 주민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을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 고등어탕은 매년 호미곶면 10여개 마을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돌문어 수산물 축제를 맞아 지역 노인들에게 대접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만약 예정대로 노인들이 먹었다면 대형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

20명분 국에 살충제 넣어
미리 맛본 주민 덕에 휴∼

작은 마을서 농약을 이용해 주민들을 해하려한 사건은 포항서만 일어났던 것은 아니다. 최근 3년 동안 상주, 청송 등 경북서만 농약 관련 범죄가 세 건이나 발생했다. 이른바 농약 사이다, 농약 소주 사건이다.

2015년 7월14일 상주시 공성면의 한 마을의 마을회관서 사이다를 나눠 마신 여섯 할머니가 쓰러졌다. 사이다에 농약이 들어있던 것이다. 거품을 토하며 쓰러져 있던 할머니들을 이장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으나 두 명은 결국 숨을 거뒀다.

6명의 사상자를 낸 사건의 용의자는 사이다를 마시지 않은 P(82)할머니. 경찰은 P할머니 집 근처에서 뚜껑 없는 박카스 병을 발견한 점, 드링크제에 사이다서 발견된 성분과 같은 살충제가 나온 점 등을 증거로 범행을 추궁했다. 

또 문제의 사이다 병뚜껑으로 사용된 드링크제 뚜껑과 유효기간이 같은 드링크제가 여러 병 발견된 점도 P할머니를 용의자로 지목한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지난해 8월 P할머니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P할머니가 피해자를 살해하려고 할 만한 동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P할머니가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됐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P할머니가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조치를 충분히 할 수 있었고 범행 현장에 그 외에 달리 구호조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실제 P할머니는 사건 당시 농약 사이다를 마시고 괴로워하는 피해자들과 1시간 넘게 함께 있으면서 아무런 구호 행위를 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P할머니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서 배심원 만장일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항소했지만 2심서도 같은 형을 선고받았다. P할머니의 범행 동기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묘연했다. 다만 P할머니가 피해자들과 화투 놀이를 하던 중 다툼을 벌였다는 진술이 있었다.

2016년 3월에는 청송 마을회관서 농약이 든 소주를 마신 주민 1명이 죽고 1명이 중태에 빠진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 당시 경찰은 농약 사이다 사건과 여러모로 유사한 점을 들어 모방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당시 마을회관에는 13명의 주민이 술을 마시거나 화투를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문제의 소주는 이장인 P모씨가 꺼내왔다. P이장은 H모씨와 소주를 나눠 먹었고, 이후 사달이 났다. 

두 사람은 소주를 반병 정도 마시다가 속이 거북해져 음주를 중단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바늘로 손끝을 따는 등 자가 치료를 했으나 증세가 심해지자 병원으로 이송됐다. P이장은 결국 숨졌다.

3년새 경북서만 3건 일어나
상주 사건은 범인 무기징역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두 사람이 마시다 남은 소주와 소주잔서 고독성 농약이 검출됐다. 경찰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소주에 농약이 들어갈 수 없는 만큼 누군가가 고의로 넣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에 돌입했다. 그러나 마을회견 주변에 CCTV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그 와중에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던 마을 주민이 농약을 마시고 숨지는 일이 일어났다. 축사 옆에 쓰러져 있던 것을 그의 아내가 발견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결국 숨졌다. 이 주민은 경찰의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기로 한 상태였다.

이후 경찰은 농약 소주 사건의 피의자로 음독해 숨진 주민을 지목했다. 경찰은 그가 숨지기 전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앞두고 있던 점, 아내의 잦은 마을회관 출입에 불만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점 등을 종합해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조사해왔다. 

그러나 그가 숨진 만큼 ‘공소권 없음’으로 결론짓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소외감 문제

전문가들은 노인 농약범죄의 범행 동기로 대부분 사회적 소외와 개인적 불만을 꼽았다. 소외감과 고립감에 노출된 노년층일수록 극단적인 분노가 표출되는 경향이 크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번 농약 고등어탕 사건과 농약 사이다 사건의 경우 마을 주민들 사이서 느낀 소외감, 갈등이 동기로 지목됐다. 또 농약은 시골서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범행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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