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돈벌이’ 전단지 알바의 세계

2017.11.20 11:31:18 호수 1141호

“버려도 좋으니 받아만 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최근 지하철 출구 근처서 전단지 돌리는 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전단지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멀찍이 놓아두고 행인들에게 한 장씩 건넨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 받아가는 사람, 받아서 바로 버리는 사람 등 반응도 제각각이다. 지하철 역사 내 쓰레기통에는 전단지가 수북이 버려져 있다.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한때 10대의 전유물이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은 학생들이 제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동네에 새로 생긴 피자집이나 치킨집 등은 수능을 막 마친 학생들을 고용해 아파트 주변에 전단지를 배포했다. 수년 전만해도 오토바이를 타고 가게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날리던 20대 초반 청년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길거리 부업

최근에는 전단지를 배포하는 사람들의 연령대가 높아지는 추세다. 서울 마포역 주변에 새로 생긴 도시락 전문점 홍보 전단지를 나눠주는 박모 할머니는 올해로 예순여섯이 됐다. 배포해야 할 전단지 1000장이 든 가방을 한편에 놓아두고 박 할머니는 100장으로 된 묶음을 꺼내 행인들에게 건네기 시작했다.

오전 7시10분, 출근을 위해 발걸음을 서두르는 직장인과 등교하는 학생들 중 약 절반가량은 박 할머니를 그냥 지나쳤다. 100장을 나눠주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 하루치를 다 나눠주려면 꼬박 하루 동안 역 주변을 배회해야 한다. 박 할머니는 “주변에 부업하는 친구가 있어서 소개를 받았다”며 “날이 추워지니까 더 안 받아준다”고 말했다.

1장에 50원, 하루 5만원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직행


박 할머니는 말하는 도중에도 계속 전단지를 내밀었지만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 웅크린 사람들은 외면하기 일쑤였다. 하루를 꼬박 일해 1000장을 전부 배포하고 난 뒤 박 할머니가 받는 돈은 5만원 남짓이다. 

100장에 5000원으로 계산한 돈이다. 1장에 50원 꼴이다. “학생 이거 좀” “도시락 집 새로 생겼어요” 말을 건네며 배포한 전단지는 90% 넘게 지하철 역사 쓰레기통으로 향했다.

전단지를 받은 행인들은 읽어보지도 않은 채 바로 쓰레기통에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발길을 재촉하던 한 학생은 전단지를 받자마자 걸어가면서 손으로 접어 제일 먼저 눈에 보인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쓰레기통에는 박 할머니가 배포한 전단지로 이미 가득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미처 박 할머니를 못 보고 지나쳤던 한 직장인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면서 연신 뒤를 돌아봤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자유게시판에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는 전단지는 거절하기가 어렵다”며 “웬만하면 받아주긴 하는데 읽어보진 않는다. 내가 (전단지를) 받아야 그분들 일이 빨리 끝날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가혹하다”는 내용의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전단지, 벽에 붙은 전단지를 수거하는 고령의 알바생도 있다. 일부 지자체에선 최근 ‘불법 광고물 수거보상제’를 시행하고 있다. 
 

거리에 떨어진 광고물을 수거해 각 주민센터에 제출하면 명함형 광고물은 장당 5원, 벽보는 15∼20원, 현수막은 최대 2000원까지 보상해준다. 65세 이상 노인들과 국민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취약계층이 대상인데 노인들의 지원률이 높다.

일선서 물러난 노인들은 운동이나 소일거리로 전단지 수거 작업에 지원한다. 일부 노인들은 이를 통해 생계를 잇는 경우도 있다. 한 달 동안 지급되는 보상비는 10만원서 최대 50만원까지 상한이 정해져 있다. 

한 달을 꼬박 전단지 수거 일을 해도 벌 수 있는 돈은 최대 50만원으로 한정돼있다는 뜻이다. 일부 노인들에게는 생활비로 쓰기에 턱없이 부족한 액수다.

전단지 배포, 수거에 뛰어드는 노인이 많아진 것은 노인 빈곤 현상의 단면이라는 분석이 있다. 우리나라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최고인 것으로 집계됐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고령화가 가장 많이 진전된 국가는 일본이지만 그 속도는 우리나라가 더 빠르다. 문제는 빠른 고령화 속도를 사회가 쫓지 못한다는 데 있다.

지난 11일 OECD가 내놓은 ‘불평등한 고령화 방지’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66∼75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2.7%, 76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60.2%로 비교 대상 38개 회원국 중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로 1위다. 

66∼75세는 OECD 평균의 4배, 76세 이상은 4.2배 높은 수치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과 비교해도 각각 3배, 4.2배 높다. 

OECD는 보고서에서 “OECD 국가의 노인 빈곤율은 전체 인구의 빈곤율과 밀접하지만 호주와 스위스에선 노인빈곤율이 훨씬 높고 한국은 그 중에서도 특히 높다”고 지적했다.

떼고 줍는 알바도 성행
노인빈곤율 OECD 1위

OECD 보고서는 한국의 노인 빈곤율이 높은 이유로 “국민연금제도가 1988년에야 출범해 1950년대 출생한 경우 혜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 역시 노인빈곤율의 주원인으로 국민연금·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낮은 점을 꼽는다. OECD 평균 노인 전체소득 중 공적이전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58.7%에 달하지만 우리나라는 16.3%에 불과하다. 

대신 우리나라 노인들은 근로소득 비중이 63%로 높다. 그만큼 고령에 일하는 노인이 많다는 뜻이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운영하는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이 성인남녀 1037명을 대상으로 ‘황혼 알바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정년 이후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82.1%가 있다고 답했다. 성인남녀 10명 중 8명은 정년 이후에도 일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이 비율은 남성(78.5%)보다 여성(86.2%)에서 높게 나타났다.
 

이들이 정년 이후 생활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은 경제력 상실이었다. 즉 “생활비가 부족할까봐 걱정된다”는 응답자가 77.0%에 달했다. 

가족력으로 인한 건강악화(46.0%), 자녀에게 부양 부담을 지우는 것(27.3%), 노년의 외로움과 허전함(15.5%)이 뒤를 이었다. 

황혼 알바를 하려는 이유로는 경제력을 높이기 위한 것을 포함해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45.4%로 가장 높았다. 이어 일하는 즐거움을 위해(35.7%), 돈을 벌어야 하는데 취업은 잘 안 될 것 같아서(35.3%) 등의 응답이 높게 나타났다.

지난 8월 강연차 한국을 찾은 일본의 빈곤퇴치 운동 전문가 후지타 다카노리씨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노인 빈곤문제에 대해 “한창 일할 시기에는 모른다”며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노인) 빈곤은 반드시 찾아온다”고 경고했다. 

후지타씨는 <2020 하류노인이 온다> <과로노인> 등의 저서를 통해 노인 빈곤문제를 가까이서 들여다 봐왔다.

어려운 노후

그는 강연서 “일본은 젊은 빈곤층도 늘어나고 있어 젊은 층의 노후 준비는 물론 부모 부양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과 일본의 패턴이 비슷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나이가 드는 것을 피할 수 없는 한 노인 빈곤 문제는 국가를 떠나 모든 사람들의 문제”라며 “민간 보험은 물론 사회보장제도 확충 등 사회적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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