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도박 좋아하는 이유

2017.11.20 11:44:11 호수 1141호

한방 노리다 한방에 ‘훅’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방’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악의 경기 불황과 취업난에 좌절한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노린다. 최근에는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여기에 빠져든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분 단위로 큰 폭의 등락을 거듭하는 가상화폐의 현실을 보면서 일각에선 도박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최근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장안의 화제다. 비트코인은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회사의 개입 없이 온라인상에서 개인과 개인이 직접 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암호화한 가상화폐다. 완전히 익명으로 거래되기 때문에 컴퓨터와 인터넷만 사용할 수 있다면 누구나 계좌 개설이 가능하다. 

비트 도박판?

안정성이 아직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지만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격은 천장과 바닥을 오가고 있다.

지난 12일 비트코인캐시 시장서 환호와 곡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비트코인캐시는 지난 8월 비트코인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가상화폐다. 이달 초 500달러 수준이었던 비트코인캐시 가격은 12일, 장중 한때 2477달러까지 치솟았다. 10일 만에 5배 가까이 뛴 가격은 이튿날 투자자들이 대거 빠져나가 하루 새 1353달러로 반 토막 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2일 오후 3시30분경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캐시 가격은 283만원까지 치솟았다. 같은 시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는 비트코인 관련 단어가 점령했다. 


방송, 기사 등을 통해 비트코인캐시 가격의 실시간 상승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자가 몰렸다.

그러다 오후 4시부터 빗썸 거래소 서버가 1시간30분 동안 다운됐다. 서버가 복구된 이후 비트코인캐시 가격은 168만원으로 반 토막에 가깝게 급락했다. 매수도 매도도 할 수 없던 1시간30분 동안 투자금이 반으로 줄어든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전세금, 등록금, 대출금 등을 날린 피해 투자자들은 분노했다. 피해자들은 집단 소송 카페를 개설하고 거래소 빗썸 앞으로 달려갔다.

일각에선 이번 비트코인캐시 사태가 예견된 일이었다고 분석한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레이 달리오 최고 경영자는 “비트코인 시장은 이미 투기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역시 “비트코인 가치가 얼마나 오를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서 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거품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국내서 가상화폐는 ‘잘만하면 제대로 한몫 잡을 수 있는’ 투기·도박 시장으로 변질돼가는 모양새다. 

지난 9월24일 비트코인 관련 전문 매체 <크립토코인스 뉴스> <코인텔레그래프> 등에 따르면 같은 달 21일 비트코인의 원화 거래량은 일일 1만5408비트코인(약651억원)으로 점유율 5.55%를 기록했다. 이는 일본, 미국에 이은 세계 3위 수준이다.

가상화폐를 통해 이득을 얻은 사례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사람들을 부추기고, 손해를 본 사람들이 만회를 위해 다시 시장에 뛰어들면서 판은 계속 팽창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량 세계 3위 수준
가격 등락 변동성 커도 ‘불나방’

문제는 접근성이 높고 24시간 장이 유지되는 가상화폐 시장의 특성상 중독 확률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분 단위로 심한 등락을 거듭하는 가격 변동성은 투자자들을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 묶어놓고 있다.


황현탁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원장은 중독의 기준에 대해 “학생이면 공부, 직장인이면 직장 생활을 정상적으로 해야 하는데 도박 때문에 공부라든지 직장 일을 소홀히 하거나 또 가정 일을 제대로 못하는 그런 심각한 수준에 있는 사람을 도박중독자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또 선진국 미국, 영국, 호주의 경우 대체적으로 100명 중 2.5명 정도가 중독자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100명 중 5명 정도로 중독자 비율이 두 배가량 높다고 설명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발행한 ‘2015 도박문제관리백서’에 따르면 2015년 연령별 도박중독자 비율은 19세 미만 1.8%, 20대 30.3%, 30대 38.0%, 40대 17.3%, 50대 8.4%, 60대 3.5%, 70세 이상이 0.5%로 파악됐다. 

전체 도박중독자의 70%가량이 10∼30대에 몰려 있다. 도박중독은 특성상 사교 도박서 시작해 문제 도박, 병적 도박의 패턴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른 시기에 도박에 빠지게 되면 중독서 빠져나오는 데 개인·사회적 비용이 많이 든다.

도박에 빠져드는 연령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가상화폐 관련 사이트서도 10대 청소년들이 시장에 뛰어 들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엄마 몰래 학원비를 빼돌려서’ ‘모아둔 용돈을 넣었다가’ ‘엄마 지갑서 몇 만원 훔쳐서’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손해를 보는 사례가 심심찮게 눈에 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접근성이 높아진 불법 인터넷 도박에 빠졌다가 어린 나이에 수천만원의 빚을 진 10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경미 의원이 경찰청,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제출받은 10대 사이버 도박 피의자 현황,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연령별 이용 현황 등의 자료를 보면 10대 청소년의 도박중독 실태가 드러난다.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불법 인터넷 도박으로 입건된 10대 청소년 수는 600여명에 육박했다. 연도별로 2014년 110명, 2015년 133명, 2016년 347명으로 최근 3년새 3배 이상 급증했다.

도박중독 치료를 받는 청소년 수도 증가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도박중독으로 외래 진료를 받은 청소년은 2013년 13명서 2014년 20명, 2015년 25명, 2016년 40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SNS서 접한 도박 사이트 광고에 현혹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든 사례다. 도박 빚은 눈 깜박할 새 10대 청소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불어났다. 

본전을 찾기 위해 10대 청소년들은 중고품 사기를 치는 등 범죄에도 손대면서 청소년 도박중독은 사회 문제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연령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도박중독의 원인을 복합적이라고 판단했다. 일부 도박중독자들은 도박이 갖고 있는 재미와 쾌감을 무기로 현실의 부정적인 감정을 떨친다. 돈을 따고 잃는 지점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감정이 일상생활에선 얻기 힘든 높은 수준의 자극이어서 중독의 단계로 빠지는 일도 많다. 

이외에도 현실 도피, 적응 장애 등의 성격을 가진 경우 도박중독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도박중독자의 말로

도박중독자 10명 중 1명은 자해·자살 시도를 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관광체육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9일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도박중독자 6938명을 조사한 결과, 43.1%(2993명)가 자해와 자살을 생각해봤고 이 중 9.8%(680명)이 실제 자해와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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